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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밖에 없다"던 지진희의 호언장담, 연기로 증명하다

[인터뷰] tvN < 60일, 지정생존자 > 박무진 권한대행 역 배우 지진희

19.09.05 11:13최종업데이트19.09.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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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배우 지진희 ⓒ 이정민

 
"한국에서 <지정생존자>가 리메이크된다면 누가 이 역할을 하면 좋을까 상상해봤다. 분위기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아 안목이 있으시구나..." 

지난 7월, 첫 방송을 앞둔 < 60일, 지정생존자> 제작발표회에서 지진희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곧 증명됐다. 지난달 종영한 한국판 <지정생존자>, < 60일, 지정생존자> 속 박무진은 곧 지진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한 < 60일, 지정생존자 >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모습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박무진으로 선택해준 감독과 작가, 함께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지진희를 보면서, 마치 함께한 청와대 스태프들과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박무진 권한대행의 퇴임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60일, 지정생존자 >는 갑작스러운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과 국가 수뇌부 대부분이 사망하고, 카이스트 박사 출신의 환경부 장관 박무진이 60일간의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게 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 60일, 지정생존자 > ⓒ tvN

 
오리지널 시리즈의 배경은 미국 백악관이다. 대담하고 신선한 상상력이지만, 지극히 미국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화 소식에 기대만큼 우려도 컸던 것이 사실. 원작의 팬이었다던 지진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가 모든 이야기를 마친 지금, 모든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게 확인됐지만. 지진희는 "대본을 받아든 순간, 모든 걱정이 불식됐다"고 했다. 

"리메이크 작품에 여러 번 출연했다. 그래서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쓰여진 이야기를 한국으로 가져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특히 <지정생존자>는 아예 다른 헌법 체계에서 출발한 상상력이지 않나. 정치적 상황도, 배경도 다르고... 현지화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그 정도 규모의 테러는 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데 대본을 읽는 순간 모든 걱정이 불식되더라. 정말 대단하다, 이 쉽지 않은 걸 어떻게 이렇게 잘 쓰셨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작품 끝나고 작가님한테 너무 감사하다고 문자도 했다."  

60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제한된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권력 의지를 갖거나 자기 정치를 하려는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권한 대행. 지난 대통령 탄핵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박무진의 성장기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지진희는 "대본을 읽고, 출연 제안을 받아들인 뒤부터는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걱정은 작가와 감독의 몫이지, 배우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궁금한 건 오로지 감독과 배우가 상상한 박무진이 어떤 모습인지였고, 내 고민은 그 박무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에 대한 것뿐이었다.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고 가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선택은 감독의 몫이다. 배우의 욕심과 생각이 과하면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 그건 전체 드라마의 완결성으로 볼 때 굉장히 좋지 않다. 

무엇보다 그런 고민과 걱정은 박무진이라는 캐릭터와도 맞지 않다. 박무진은 스스로 원해서 정치인이 된 캐릭터가 아니다. 박무진은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그저 떠밀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 모든 결정은 기존 데이터와 법의 틀 안에서 내린다."


- 그런 박무진의 모습이 잘못하면 마냥 답답하거나 무능하게 모일 수도 있었다. 
"맞다. 그 빈틈을 채워주는 역할이 함께한 참모들이었다. 드라마의 스토리로도 그랬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랬다. 모두가 다 자기 역할을 너무들 잘 해줬다. 감독님, 작가님도 밸런스를 잘 잡아주셨고." 

정치인이 아니라 매력적인 정치인, 박무진
 

tvN < 60일, 지정생존자 >의 한 장면 ⓒ tvN

 
- 시청자들은 박무진의 어떤 모습에 열광한 걸까? 
"박무진은 정치인 같지 않은 새로운 정치인이다. 때 묻지 않은 착한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 대통령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다들 있었던 거겠지. 착한 사람이 사장이었으면, 선배였으면, 하는 것처럼.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당이 우선이고, 자신의 권력 의지가 먼저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있지 않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무진은 자신의 승리가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인물에게서 희망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 박무진과 < 60일, 지정생존자 > 속 대한민국을 보며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렸다는 반응도 많다. 현실의 누군가를 모티브로 삼지는 않았나. 
"박무진은 과학자고, 세상의 없던 정치인의 모습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모티브로 삼는 순간 드라마는 다른 이야기가 됐을 거다. 박무진은 차라리 나에 가깝다.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가장 보통의 사람인 내가 갑자기 대통령 권한을 가지게 된 상황. 박무진처럼 과학자일 수도, 아니면 예술가일 수도, 기술자일 수도 있다." 

- 만약 본인에게 갑자기 그런 막중한 책임과 권한이 주어진다면 박무진처럼 해낼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어느 위치에 갔을 때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박무진은 본인의 생각과 철학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과 시스템, 데이터를 믿는 사람이다. 박무진이 정치하는 모습은 차라리 스포츠에 가깝다. 정해진 룰 안에서만 플레이해야 하니까. 나도 그렇게는 했을 것 같다. 스포츠처럼.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룰 해석에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게 룰을 어길 때도 있겠지. 하지만 정해진 규칙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전제 안에서는 행동했을 거다. 그런 규칙이 법이니까 법대로 했겠지. 잘 모르니까 찾아보면서." 

'취미 부자' 지진희,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긴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배우 지진희 ⓒ 이정민


- 지진희는 취미가 많은 배우로도 유명하다. 알려진 취미만 레고, 사진, 골프, 야구, 암벽 등반, 도자기 공예 등등 열 가지가 넘는다. 
"그 모든 걸 한 번에 다 하는 게 아니다. 그때그때 하나씩 하는 건데, 이 모든 걸 한꺼번에 하는 줄 아는 분들이 많더라. 오해다. (웃음)" 

-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실행에 옮기는 데 고민을 많이 하진 않는 성격인가보다.  
"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시작한다. 돈이 많이 들 거라고 많이 생각 하시는데, 실력을 키우면 돈도 많이 안 든다. 난 장비 욕심도 없다. 내가 투자하는 건 돈보다 시간이다. 빈 시간에 즐기기도 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기도 하고. 요즘 몰두하고 있는 건 골프인데, 오늘도 인터뷰 전에 골프를 치고 왔다. 한여름의 연습장은 싸니까 이럴 때를 적극 이용한다." 

- 다양한 취미 생활이 연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우는 경험이 중요한 직업이니까. 하지만 그보다는 스트레스 관리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보통은 술로 많이 풀지만, 나는 술 대신 자연을 벗 삼아 좋은 사람들과 4~5시간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다. 일 끝내고 멍하니 쉬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무언가 찾아보고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나와 맞다." 

- 어떤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즐기기 위해 일을 한다고도 말한다. 취미 생활을 더 윤택하게 즐기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까. 다양한 취미 생활이 일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나. 
"난 할 수 없으면 안 하는 주의다. 수준에 맞는 취미를 즐기고, 무언가에 욕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내 수준에서 즐길 수 있는 만큼 즐긴다. 원동력은 취미보다는 가족이지. 가족들 때문에 일을 하는 거고, 힘도 내는 거고."
 
- 아이들이 아빠의 작품을 보나. 
"본다. 둘째(8살)는 보긴 보는데 이해를 못 한다. 보면서 계속 '왜 저러는 거야?', '무슨 말이야?' 이런다. 첫째는 중2인데 옆에서 조용히 하라고 동생 구박하면서 보고. 현실 형제다. 아내는 분석을 잘 해준다. 이 장면에선 연기 못했고, 대본은 너무 좋은데 부족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딱히 나쁘단 소리가 없었던 거 보니 괜찮았던 것 같다.(웃음)" 

"<지정생존자> 출신 스타 많이 나왔으면"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배우 지진희 ⓒ 이정민


- 스스로 평가하기엔 어땠나. 
"사실 난 후회하거나 아쉬움을 남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런 게 몸과 마음을 나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하고. 희망과 긍정을 한도 끝도 없이 느끼려는 사람이다. 과거엔 끝없이 절망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서 일부러 더 그런 감정을 피하려고 한다. 

나에 대한 평가보다는, 이 작품으로 얻은 게 너무 많은 작품이라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다. 우리 드라마는 신구의 조화가 정말 잘 좋았다고 생각한다. 허준호 선배, 최재성 선배, 배종옥 선배, 안내상 선배... 너무 다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이분들이 후배들이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활짝 열어주셨다는 거다. 선배 쪽에 속하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인지 우리 작품에 신인이 많았는데 다들 너무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잘해줬다. 

사실 신인들은 TV에서 보던 선배들과 연기하다 보면 조심하게 되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 쉽지 않다. 늘 그런 부분이 아쉬웠는데, 이번 작품은 그런 게 없었다. 본인들도 느꼈는진 모르겠지만 모두가 책임감을 가졌고, 고민도 나눠 가졌다. 그래서 모두의 만족도가 높지 않나 싶다. 후배들의 연기가 풍성해져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이 작품에서 스타가 많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들 잘 됐으면 좋겠고, 다 잘 될 거라는 데 의심이 없다." 
 

< 60일, 지정생존자 > ⓒ tvN

 
-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차기작에 대한 고민도 클 것 같다. 
"기다리고 있다. 어떤 작품을 하겠다, 하고 싶다, 이런 것보다는 고리타분하지 않은 이야기였으면 한다.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매력이 있는 드라마. 늘 이런 기준으로 작품을 택해왔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애인있어요>도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는 아니었고, <미스티>도 그랬고, < 60일, 지정생존자>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나가고... 이런 게 정말 좋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찍으면서 아내와 남자와 여자가 생각하는 사랑과 외도의 기준에 대해 정말 많은 말을 했다. 서로의 다른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고나서 아내와 정말 좋아졌다. 그 다음 단계의 사랑이라고 표현해야할까? 또 다른, 더 깊은 사랑. 우리 부부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인 일이었다. 

만약 그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깊게 이야기할 일 없었을 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도 드라마를 보면서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하고 변화하고... 그런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그런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배우 지진희 ⓒ 이정민


- < 60일, 지정생존자>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드라마로 기억되길 바라나. 
"일단 사랑해주신 시청자분들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우리 드라마를 통해 보고, 꿈꾸셨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여러분들이 사랑해주신 박무진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니까, 박무진을 돋보이게, 멋있게,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준 다른 연기자들을 모두 기억해주시고 함께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새로운 배우들을 많이 발견한 드라마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 지진희에게는 박무진과 < 60일, 지정생존자 >는 어떤 캐릭터와 작품으로 남게 될까. 
"늘 나의 꿈과 소망은, 마지막 작품이 나의 베스트 작품이길 바란다. 그런 바람으로 연기한다. 그래서 지금 내게 < 60일, 지정생존자 >와 박무진은 내 베스트 작품, 내 베스트 캐릭터다. 다음 작품에 결정되면 새로운 베스트를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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