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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까지 1000일의 기록... 그 순간이 인류에게 던진 질문

[넘버링 무비 155] EIDF 2019 상영작 <마지막 코뿔소>

19.08.27 14:43최종업데이트19.08.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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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EIDF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아시아에서 코뿔소 뿔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밀렵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그들로부터 코뿔소를 보호하는 일은 힘들어졌다. 코뿔소 뿔은 킬로당 7만 달러(한화 약 8500만 원)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고, 상품(上品)의 경우에는 15만 달러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흰코뿔소의 두 아종 중 하나인 북부흰코뿔소는 밀렵꾼들의 위협으로 인해 야생상태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코뿔소 종이다.

사하라 이남 동부, 중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된 북부흰코뿔소는 2014년 미국 샌디에이고의 수컷 앙갈리푸가, 2015년에는 체코 드부르 크랄로베 동물원에 살던 암컷 나비레가, 같은 해 역시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암컷 놀라가 차례로 숨지면서 단 3마리만 남게 됐다. 마지막 북부흰코뿔소 수컷인 수단과 그의 딸 나진과 손녀 파투가 바로 그들이다.

케냐에 있는 올페제타 보호구역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이 세 마리의 북부흰코뿔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플로르 판 데르 묄렌 감독의 다큐멘터리 <마지막 코뿔소>는 이 올페제타 보호구역을 중심으로 마지막 북부흰코뿔소 수컷인 수단의 최후 1000일에 대한 기록을 풀어낸 작품이다. 영화에선 그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살아있는 코뿔소를 직접 확인하고 '멸종'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자 수단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이 작품 속에는 지난 2018년 3월 19일에 죽음을 맞이한 수단과 그를 기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까지 담겨있다. 수단이라는 이름의 코뿔소가 맞이한 죽음이 단순히 어느 한 개체의 죽음이 아니라, 지구 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 자체가 멸종했다는 사실로서 말이다.
 

다큐멘터리 <마지막 코뿔소> 스틸컷ⓒ EIDF


02.

실제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는 일은 우리가 말로 보호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움이 많다.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밀렵꾼들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켜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멸종'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확립하고 그 절박함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위험한 순간에 놓인 개체들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것은 당연하다. 밀렵을 억제하기 위해 올페제타 보호구역의 가드들은 일반 테러 억제 부대와 동일한 프로토콜로 훈련을 받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멸종 순간 바로 직전인 개체들과 일반인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이들에겐 중요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올페제타 보호구역의 에닉은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통해 멸종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남긴다. 그녀 역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처우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코뿔소처럼 크고 거대한 동물의 멸종이 시작된다는 것은 다른 종에 대한 경고의 의미와도 같다고 한다. 우리의 자녀, 손자 세대가 직접 볼 수 있는 종이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지막으로 남은 수컷 수단의 죽음으로 인해 자연적인 방법으로 북부흰코뿔소의 개체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사실상 공식적인 멸종이며, 그녀의 말처럼 다음 세대는 '자연적인 방식'을 통해 탄생하는 북부흰코뿔소의 모습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03.

물론, 이들의 개체를 다른 방식을 통해 확보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북부흰코뿔소 마지막 세 마리의 표본을 만들어 액체 질소 탱크에 저장해두는 방식을 택했다. 액체 질소 탱크는 생물학적인 활동을 억제해 생체 표본을 최대 3000년까지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방식을 따르면,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미래의 적당한 시기까지 연기할 수 있다. 고도의 유전 공학이나 복제와 같은 방법들 말이다. 이는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죄책감을 표현하는 일임과 동시에 최대한의 노력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북부흰코뿔소, 그들의 잘못으로 현재의 상황을 맞이한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는 것이다.

그나마 두 마리의 암컷 나진과 파투가 건강하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된다.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난자이며, 북부흰코뿔소 개체 전체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들마저 죽음을 맞이하고 나면, 이 세상에는 북부흰코뿔소의 그림자조차 사라지게 되고 만다. 이에 케냐 정부와 관련 인력들은 수단의 정자와 남부흰코뿔소 종과의 수정 혹은 남부흰코뿔소와의 대리모 시술 등의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이 시도는 수단의 죽음 이후 약 5개월 만에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수단의 정자만으로도 시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한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 <마지막 코뿔소> 스틸컷ⓒ EIDF


04.

그렇다고 해서 이 다큐멘터리 <마지막 코뿔소>가 마지막 남겨진 개체와 종의 번식을 강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수단이 생존해 있을 당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반인들과 수단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되는 '라포'의 의미에 더욱 집중한다. 단순히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멸종'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곧 멸종을 앞둔 개체를 눈 앞에서 직접 마주함으로써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를 가슴 깊이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올페제타 보호구역에서 멸종을 앞둔 개체와 만난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으며, 그들과 수단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자처한 제임스의 말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제임스는 그들에게 이 순간의 공감적 경험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퍼뜨려 달라고 부탁한다.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감독 플로르 판 데르 묄렌은 수단의 생존 1000일을 시작으로 역순으로 시간을 배열해, 다큐멘터리의 제일 마지막에 죽음에 대한 소재를 삽입한다. 역순의 시간 순서와 사이 사이의 내용들 간에 긴밀한 연결고리는 없지만,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다른 코뿔소들의 무덤, 그 무덤의 비석의 내용을 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게 된다.

검은코뿔소 수컷 잡은 울타리 내에서 눈이 먼 채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두 뿔을 제거당했으며, 검은코뿔소 암컷 아샤는 밀렵꾼의 총에 맞아 사망하며 역시 두 뿔을 모두 제거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흰코뿔소 수컷인 맥스는 출생 때부터 뿔을 위해 사육 당했으며, 두 뿔이 잘리고 난 뒤에는 곧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마지막 코뿔소의 운명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코뿔소의 또 다른 종이라고 수단의 모습이 되지 않으라는 법이 있을까? 감독은 이렇게 묻고 있다.
 

다큐멘터리 <마지막 코뿔소> 스틸컷ⓒ EIDF


05.

그들을 보호하는 데 수많은 이들이 관여하고 있는 만큼, 그 일에는 비용 또한 적지 않게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이들을 지키고 복원하는 일이 필요한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들이 이 코뿔소의 운명을 현재의 모습으로 바꿔놓은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앞으로 더 많은 종의 멸종을 가져오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다큐멘터리의 말미에 등장하는 추모식의 사회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수단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단지 마지막 북부흰코뿔소 수컷이라서가 아니라 올 페제타 보호구역 모두에게 좋은 친구였기에 수단을 그리워할 겁니다. 우리는 세상에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현재 지구에 사는 동물의 멸종 속도는 공룡의 멸종 속도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것은 코뿔소, 그 중에서도 하나의 종일 뿐이다. 다만, 지금도 더 많은 종의 멸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다음과 다음, 그 다음과 다음에는 누가 서 있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류 역시 또한.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이후 유료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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