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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목도 모른채 끌려가 온갖 욕설-구타까지... 처참한 현장

[넘버링 무비 153] EIDF 2019 상영작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19.08.25 18:57최종업데이트19.08.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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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EIDF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굴라크(Gulag)는 구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이다. 국가 보안국의 한 지국으로 범죄자들의 강제 노동과 수용 및 구금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던 곳이나, 점차 강제 노동의 대명사로 쓰이게 된다. 1917년의 10월 혁명 이후, 소련 전역에 들어선 강제노동수용소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아래에는 400개가 넘는 수용소 집합체가 있었으며, 각각의 집합체는 수 백개가 넘는 수용소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굴라크 시스템(Gulag System)이란 이 모든 수용소 아래에서 자행된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이며 부당했던 모든 일들을 일컫는 말이다. 1917년에서 1957년 사이에만 이 굴라크 시스템 아래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러시아에서는 굴라크에서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이름 돌려주기'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마리안나 야로프스카야 감독의 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은 스탈린 체제 아래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굴라크 시스템의 어두운 면을 마지막 생존 여성들의 실제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는 작품이다. 1930년대 스탈린의 억압 아래 이유도 없이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던 베라 헤키르, 크세니아 추하레바, 아딜 압바스-오글리, 엘레나 포스니크, 페클라 안드게예바, 나테즈다 레비츠카야 등 6인의 인터뷰는 당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그 후유증이 현재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역시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가족, 체포와 수감, 죄수 이송, 수용소, 유산의 챕터로 구분되어 진행되는데, 이는 실제 수감의 과정을 형식적으로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스틸컷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스틸컷ⓒ EIDF


02.
스탈린에 의한 본격적인 공포 정치가 시작된 것은 1930년대부터이지만, 10월 혁명을 통해 볼셰비키 정권이 수립된 1917년 이후 러시아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다. 처음에 수용소를 채웠던 것은 재산을 몰수당한 소작농들이었다.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소비에트 정부의 기반은 아직 취약했고, 농촌에서는 아직 농민 대다수가 여전히 사회혁명당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체제로 넘어가면서부터 본격적인 굴라크 시스템이 운영되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는 스탈린 정부가 지목한 정치범 및 숙청의 대상들이 주요 대상이 된다.

문제는 고위 관리들의 비위에 맞지 않거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이들, 체제 자체의 의구심이나 불만을 갖고 있던 지식인들까지 모두 가짜 혐의를 씌워 수용소로 보내버렸다는 것인데, 이 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런 이들의 자녀 혹은 아내, 가족들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가족을 볼모로 가짜 혐의를 인정하도록 강요하고,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수용소로 끌려가는 일들은 비일비재했으며, 이들의 가족들은 그 즉시 당사자를 버리라는 요청을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받게 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연좌제에 의해 가족 모두가 수용소로 연행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를 수감하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죄를 날조하기도 했다고. 가만히 들어서는 과연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을까 싶지만, 모든 이야기는 그런 상황을 직접 겪어낸 이들의 증언 속에서 구현된다.
 

▲ 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스틸컷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스틸컷ⓒ EIDF


03.
굴라크에서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에 대해서는 수감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진다.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되는 당시의 삶은 일제 강점기 하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처참하다. 심한 욕설과 구타는 물론,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엉성한 재판 과정, 이미 사전에 결과는 만들어진 채로 절차를 위해 이루어지는 선고 등이 말이다.

어떤 재판은 1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최종 선고가 이루어졌다고 하니 그 분위기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이들의 경우에는, 고문관들의 눈을 피해 자신의 이와 머리카락을 건물 곳곳에 숨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자신은 죽고 없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 누구라도 이 유류품을 발견해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다큐멘터리의 중후반부를 지나면서는 노역을 위해 굴라크로 끌려온 이들의 증언도 나온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인부 네 명이 달라붙어도 꿈쩍하지 않는 통나무를 벌목해 직접 옮겨야 했던 벌목수용소의 생활과 채굴된 광석을 산 아래로 옮기기 위해 아무런 장비도 없이 돌산을 맨몸으로 올라야 했던 광산수용소의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벌목수용소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옷가지를 팔아서 빵을 구하려고 해야 했고, 광산수용소에는 방사능이 뒤덮인 우라늄 원석으로 인해 방사능에 피폭 당한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도 한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인 걸까. 어떤 지역에서는 매일 일정 수 이상의 수감자들을 살해해야만 하는 사형 할당제라는 것까지 있었다고 한다.
 

▲ 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스틸컷다큐멘터리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 스틸컷ⓒ EIDF


04.
이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에 동의한 6명의 여성은 이제 90세를 바라보고 있거나 이미 넘은 상태다.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놓지 못하고, 그 때 잃은 가족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이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도 했다. 세월은 반 세기도 훨씬 더 넘게 지나왔지만,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탓이다.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에는 모스크바의 한 광장에서 스탈린을 추앙하는 이들의 모습이 짧게 비쳐진다. 그들은 스탈린이 러시아를 일으켜 세운 영웅이자 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짧은 영상으로 인해 이 다큐멘터리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이 훨씬 더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같은 인물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영웅이나 위인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가족과 젊음, 삶 자체를 모두 송두리째 빼앗아간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가장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2017년 조사에 의하면 러시아인의 38퍼센트가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로 스탈린을 꼽았다. 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인 푸시킨이 34퍼센트로 공동 2위에 올랐다.

단순히, 시대의 명과 암이라고 하기에는 굴라크 수용소의 여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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