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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끝난 뒤 나타난 남자... 전율이 느껴졌다

[리뷰] 영화 <봉오동 전투>가 관객들에게 묻고 싶은 것

19.08.20 11:37최종업데이트19.08.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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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수상한 시절이다. 일본은 갑자기 한국으로의 수출 제품을 규제하고, 한국은 시민들이 나서서 'NO 아베'를 외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안 가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양국은 최근 상대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다. 당장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림이다.
 
시국이 이렇게 돌아가자 뜻밖의 손해와 이득을 보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이들은 말도 못하고 끙끙 속앓이를 하는 반면, 예상치 않은 효과를 보는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민이 깊다. 그만큼의 사회적 책무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포스터 ⓒ 더블유픽처스

 
사실 올 봄만 하더라도 <봉오동 전투>의 흥행을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비록 흥행이 쉬운 '국뽕' 영화라고는 하지만 주연배우도 다소 약할 뿐만 아니라, 봉오동 전투 자체도 관객들에게 결코 낯익지 않기 때문이다. 국사책에서 배운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 구절이 전부이지 않은가.
 
그랬던 영화가 최근 한일 무역전쟁 시국과 맞물려 예상 밖의 흥행을 하고 있다. 그것도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추어 많은 이들이 꼭 봐야 되는 영화로 꼽히고 있다. 비록 가슴 아픈 시대지만 어쨌든 일본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투를 소재로 한만큼 영화는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본 아베 정부가 미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봉오동 전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격정적인 대한독립만세
 
영화의 내러티브는 전체적으로 너무 단순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영화 내용은 독립신문에 실렸던 몇 문장의 승전보를 스크린으로 옮긴 게 다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을 압도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결국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 관련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영화가 너무 단순하고 대놓고 찍은 '국뽕'이라며 비판적이었겠지만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과해도 괜찮았다. 이럴 때 '국뽕' 영화를 보지 언제 보겠는가.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는 관객들의 반응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후련하다'였다.
 
영화는 초반에 일본군이 얼마나 우리 선조들을 잔학하게 학살했는지, 일제 강점기가 얼마나 처참한 시대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금이야 한미일 동맹을 운운하며 일본을 우방으로 이야기하지만, 감독은 결코 그 과정이 쉽지 않음을 관객들에게 복기시킨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달리고 또 달리는 배우들 ⓒ 더블유픽처스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터 격정적일 수밖에 없다. 상영 시간 내내 험한 지형에서 달리고 또 달리는 배우들과 함께 감정을 내달리며, 유독 침을 튀기며 대사를 내뱉는 배우들의 뜨거운 감정에 동화되고 만다.
 
"여기가 마지막 조선이야", "어제는 농민이었지만 오늘은 독립군" 등 거친 호흡으로 뱉어내는 피맺힌 대사를.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대사는 역설적이게도 흔하디흔한 '대한독립만세'였다. 늘 이맘때가 되면 어렵지 않게 보고 듣던 어구였건만, 영화에서 인물들이 사용하는 맥락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레 그 문장 자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조선 사람들이 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까. 지금이야 3.1절 혹은 광복절에 일제 강점기 당시를 재현하면서 으레 외치는 문장이지만 아마도 당시 선인들은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저 말을 입에 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금기어인 동시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애타게 그리던 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작금의 시대에도 필요한 말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독립만세를 품고 사는 독립군들 ⓒ 더블유픽처스

 
영화의 클라이맥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역시나 독립군이 봉오동 계곡에서 일본군을 무찌르는 장면이다. 독립군들이 러시아로 넘어갔는지, 봉오동에 결집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일본군을 계곡으로 유인한 주인공들과 그들 턱밑까지 쫓아온 일본의 월강추격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삼면의 절벽에서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더불어 대한북로독군부, 대한신민단 등의 여러 군대들이 등장하는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와 함께 묘한 울림을 준다. 그것은 일본이라는 막강한 적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내부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 무역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가지고, 큰 규모의 경제를 운영하는 일본에 맞서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단결이다. 
 
결국 이번 사태가 일본의 아베 정권이 기존의 동북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획책한 것이라면 식민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을 깨우치게 만들고, 소위 '토착왜구'들의 이야기가 왜 잘못됐는지 널리 알려야 한다. 또한 북한과 더더욱 긴밀하게 협력하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안착시켜야 한다. 그렇게 뜻을 모아야만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며, 한반도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끝까지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 ⓒ 더블유픽처스

 
마지막으로 영화는 봉오동 전투를 끝낸 뒤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클라이맥스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바로 홍범도 장군의 등장이다. 교과서에서 단 몇 줄로 기록되어온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의 수장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모습에 관객들은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 <암살>에서 김원봉이 그랬듯, 우리는 지금까지 홍범도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그동안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이렇게 무지했을까? 그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우리의 분단구조 탓이다. 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소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지만 그곳에서도 존경받았던 홍범도 장군의 이력은 이범석 등 남한의 주류세력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그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잊힌 존재였다.
 
영화는 그런 홍범도 장군을 불러내었다. 분단을 가로질러 우리가 진정 추모해야 할 위인이 누구인지 관객들에게 묻는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를 다시 재구성하여 새롭게 세우는 일이요, 계속 격화되고 있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근본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봉오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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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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