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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부활한 라짜로, 그가 본 자본주의 세상은 어땠을까

[모모 큐레이터'S PICK] 영화 <행복한 라짜로>

19.07.17 13:45최종업데이트19.07.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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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라짜로> 포스터.ⓒ 슈아픽쳐스?

 
칸 영화제 철이긴 한가 보다. 매년 2월말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춰 수상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매년 5월달에 열리는 칸 영화제에 맞춰 역시 수상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수상작뿐만 아니라 노미네이트된 작품과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들도 매우 많다. 올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필두로, <로제타> <데드 돈 다이> <가버나움> <콜드 워> <아사코> <러브리스> <에어프릴의 딸> <행복한 라짜로> <해피엔드> 등 주로 작년 또는 재작년 수상작 및 진출작들이 대거 개봉했다. 의미있는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건 <가버나움> 정도다. 

와중에 이탈리아 영화 <행복한 라짜로>가 2019년 칸 영화제 버프 시즌의 거의 마지막으로 함께 했다. 2018년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으로, 알리체 로르와커라는 신예 감독의 작품이다. 그녀는 5년 전 두 번째 장편 극 영화 <더 원더스>로 2014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던 저력 있는 감독이었던 바, 세 번째 장편 극 영화 <행복한 라짜로>로 이탈리아에서 자타공인 손꼽는 감독이 되었다. 

영화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되살아난 나자로 이야기를 모티브로 마술적 리얼리즘이 가미된 시간여행과 공간여정을 내보인다. 즉, 한 편의 아름다운 우화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레고리적으로 풀어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풍성한 시골과 삭막한 도시를 비교하며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면 면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라짜로'로 수렴되는 이야기의 맥락을 짚어보고자 하는 작업이 따라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시골 마을의 만능일꾼 라짜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다
 

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슈아픽쳐스?

  
극 중 이탈리아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에서 마을 사람들은 한가족처럼 지낸다. 크나큰 마을에 집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곳에 있는 몇 개의 방에 몇 명 혹은 몇십 명이서 같이 지내는 것이다. 분명 때가 중세시대 혹은 근대 이전 시대가 아님에도 그들은 모두 알폰 시나 후작 부인의 '소작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잡일부터 몸 쓰는 일까지 두루두루 맡아 하는 '만능일꾼'이다. 후작 부인은 마을 사람들을 부려 먹고, 마을 사람들은 라짜로를 부려먹는 것이다. 후작 부인과 마을 사람들 사이엔 관리인이자 집사 니콜라가 존재한다. 

어느 날 후작 부인은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와 함께 인비올라타로 행차한다. 도시 사람 탄크레디는 별종인데, 본인을 이 착취구조에서 예외적 인물로 생각하는지 라짜로에게 접근해 착취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모자라 자신과 라짜로가 배다른 형제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순수한 선(善)의 결정체와 같은 라짜로는 그 말을 믿는다. 그날도 라짜로는 열심히 착취 당하며 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 드러누웠다가 일어나서는 탄크레디를 찾으러 나선다. 그러던 중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져 버린다. 

한편, 탄크레디의 해괴한 자작납치극 때문에 후작 부인의 '대사기극'이 탄로 나면서 마을 인비올라타는 외부에 개방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해방되어 도시로 향한다. 몇십 년이 흘러, 죽은 게 분명했던 라짜로는 다시 살아나 도시로 향한다. 늙지 않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채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 만난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라짜로는 왜 다시 살아난 것일까. 

네오 리얼리즘의 실화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우화
 

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슈아픽쳐스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현대 시대에 소작인 제도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실화'를 가져와서는 죽은 자가 죽었던 모습 그대로 몇십 년 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우화'에 입혔다. 실화는 영화 전반부에 해당하고, 우화는 영화 후반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각각 네오 리얼리즘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자장 안에 있다. 이 둘을 이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라짜로이다. 

네오 리얼리즘이라 하면 전후(戰後)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특징을 갖는데, <행복한 라짜로>의 전반부 실화가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산 넘어 물 건너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인비올라타 주민들은, 소작인 아닌 '노예'로서 후작 부인에게 빚으로 저당 잡힌 삶을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불과 몇십 년 전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모습이라고도 할 수도 있겠고, 다름 아닌 우리네 현재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2014년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신안 염전노예'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하면 20세기 혼란스러웠던 중남미의 내면을 고백하려는 특징을 갖는데, <행복한 라짜로>의 전체에 걸쳐 이와 결을 같이 한다. 현실에 두 발 딛고 서 있지만 지극히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을 소작인으로 부려 먹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죽은 자가 몇십 년 후에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말이다. 

변한 것 없는 라짜로의 과거 시골과 현재 도시 시간·공간여행은, 시골에서 소작인으로 지냈던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나와 좀도둑질이나 하면서 집도 없이 생활하고 있는 모습과 아이러니를 이룬다. 영화는 라짜로의 여행을 통해 세상과 시대와 장소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착취'가 그것이라고 말한다. 후작 부인에 의한 욕망 어린 가학적 착취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감춰진 우아한 착취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골에서 본인들만 알아채지 못했던 비참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이제 도시에서 만천하가 잘 아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종교적 색채와 실재하는 현실
 

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슈아픽쳐스

 
영화는 종교적 색채가 매우 강한 듯하다. 주인공 라짜로를 대상화하여 여러 장면들에서 기독교 성경의 부분들을 차용한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우화'로 작용하는 한편 마술적 리얼리즘적 요소를 보여줌에 있어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영화가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데가 바로 이 부분인데, 그러나 감독은 종교적 색채를 꼭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되게끔 장치를 해두었다. 

라짜로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면 종교적이지만, 라짜로 아닌 마을 사람들이 변한 면면을 들여다보면 종교의 신성함이 아니라 다분히 실재하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우린 라짜로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라짜로)을 봐도 되지만 달(마을 사람)을 봐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일부러 라짜로를 한없이 착하고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캐릭터로 만들어놨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라짜로는 우리를 인도하는 객체일 뿐 그 자신이 주체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먹먹하고 슬프다. 하지만, 라짜로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먹먹하고 슬픈 와중에도 그저 눈물 흘릴 뿐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시골에서의 순수한 선(善) 결정체가, 부활하여, 도시에서의 성자(聖者)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뒤틀림'이 보이니 성자임에도 라짜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는 다시 만난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쓸모 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데, 할 수 있는 건 성스러운 음악을 따라오게 하는 것뿐이다. 이 얼마나 쓸모 없는 성스러움인가.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쓸모'는 전부다. 돈도 못 벌어오는 쓸모 없는 성스러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변함 없는 라짜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쓸모가 이 세상의 전부라면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쓸모가 수단뿐만 아니라 목적에까지 침식해 들어갔다 하여도 말이다. 우린 라짜로를 발견해내야 한다. 또한 라짜로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려야 한다, 라짜로의 진가를 추구해야 하고, 라짜로의 쓸모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것 또한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가치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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