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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옳았다" 최무성의 한마디, 그 속에 담긴 의미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금토 드라마 <녹두꽃>

19.07.13 15:44최종업데이트19.07.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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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녹두꽃> 포스터ⓒ SBS


1894년 동학혁명을 다룬 SBS 드라마 <녹두꽃>이 48부를 끝으로 13일 막을 내린다. 최근 방송분에서 이 드라마는 충청도 공주 우금치(우금티)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전투를 보여주었다. 우금치 전투를 계기로 동학군이 조선·일본 연합군에 대패하고 지도부가 와해되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 해 연말 우금치 전투 때 조·일 연합군은 고개에서 내려다보고, 남접과 북접으로 구분된 농민군은 땅에서 올려다보며 전투했다. 신영우 충북대 교수의 논문 '북접 농민군의 공주·우금치·연산·완평·태인 전투'는 이렇게 묘사한다.
 
"남북접 농민군은 한겨울에 골짜기와 등성이를 타고 가면서 산 위를 올려다보고 공격해야 했다. 반대로, 방어는 용이하였다. 경군(京軍)과 일본군은 우금치와 능치 등 고개를 차지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국사연구회가 2011년 발행한 <한국사연구> 제154호.
 
농민군은 남북접 각각 약 1만이고, 경군(조선 중앙군)은 3200명 정도, 일본군은 200명 정도였다. 숫적으로 보면 농민군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지형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거기다가 '무기 현대화' 측면에서 농민군은 상대방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일본군의 대포와 총 앞에서 농민군은 열세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농민군은 고개 위를 향해 악착 같이 진격했다. 고개 위쪽의 대포와 총포에서 불꽃이 끊임없이 번쩍이고 앞과 옆과 뒤에서 동지들이 쓰러지는데도, 죽음을 각오하고 기어이 기어 올라갔다.
 
인즉천(人卽天)·인내천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외세의 간섭 없는 평온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그들은 그렇게 죽으러 올라갔다. 4차례의 대규모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그들은 순교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올라갔다.

비참한 실패였지만 올바른 도전이었다
 

SBS 드라마 <녹두꽃> 스틸 컷ⓒ SBS

 
남접 농민군 1만을 지휘한 전봉준에 대한 심문 결과를 담은 <전봉준 공초>에 따르면 그는 "2차 접전 후 1만여 명 군병을 점고하니 남은 자가 불과 3천여 명이고, 그 후 또 2차 접전 후 점고하니 불과 5백 명"이었다고 진술했다. 우금치에서 혁명군이 거의 궤멸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연합군의 피해 규모는 아주 경미했다. 위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금치 전투는 전투 같지 않은 전투였다.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고 수많은 총이 발사되는 싸움터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면 쌍방이 서로 총에 맞아 희생자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경군과 일본군의 전사자는 나오지 않았다.
 
경군 보고에는 경리청 좌2소대의 김명수가 왼쪽 팔, 남창오가 왼쪽 어깨, 중2소대의 김관일이 오른쪽 다리에 탄환을 맞았으며 모두 치료하였다고 한다. 일본군은 2소대 병사 스즈키 젠고로가 오른쪽 정강이 부상을 입은 것만 보고되었다."
 
이 같은 대참패 끝에 동학군은 궤멸되고 지도부는 쫓겨다니게 됐다. 지난 6일 방송된 <녹두꽃> 제44회에서는 전봉준이 전라도 순창에 은신하고 있다가 체포되는 장면이 나왔다. 근 1년간 평등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며 조선 땅을 혁명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녹두장군이 그렇게 몰락한 것이다.
 

전봉준ⓒ wikimedia commons

  
그처럼 비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그렇다고 동학혁명이 틀린 길을 갔던 것은 결코 아니다. 실패했지만, 올바른 도전이었던 것이다.
 
<녹두꽃> 44회에서 도피 중이었던 전봉준도 그런 말을 했다. 비록 드라마 대사이기는 하지만, 동학혁명의 의의를 잘 반영하는 말이었다. 깊은 산골 초가에 은신한 전봉준과 최측근 최경선(민성욱 분)이 자신들의 동지이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백이강(조정석 분)의 생사를 궁금해하면서 나눈 대화다.

"살아 있을 것입니다."(최경선)
"살아 있어야지. 놈은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좌니까. 우린 비록 실패했어도 틀리지는 않았어."(전봉준)


얼자(노비 첩의 아들)로 태어난 백이강은 아버지이자 전라도 고부군 이방인 백가(박혁권)의 수족이 되어 농민들을 괴롭히고 수탈하는 데 앞장섰었다. 고부군에서 그는 최고의 망나니였었다.
 
그랬던 그가 전봉준과 동학군을 알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 인즉천의 평등 세상을 깨닫고 온몸에 전율을 느낀 그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혁명전쟁에 앞장섰다. 마치 자기가 전봉준이라도 된 듯이 열과 성을 보였다. 녹두장군이 전봉준이 아니라 백이강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드라마 속의 그는 매우 열심히 싸웠다.
 
"놈은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좌다"라는 드라마 속 전봉준의 말은 그래서 나왔다. 고부군에서 알아주던 '○망나니'를 감화시킬 정도로 동학혁명이 민중에게 희망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역사의 발전 방향과도 보조를 맞추었음을 '자랑'하는 말이었다. 그런 백이강을 떠올리면서 드라마 속 전봉준은 "우린 비록 실패했어도 틀리지는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동학이라는 종교는 몰라도 동학혁명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점은 이 땅의 실제 민중들이 그 후에 보여준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동학혁명이 좌절된 뒤, 한국 민중들은 동학과 비슷한 정신을 가진 운동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내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물론 지주계급은 동학군을 진압하는 쪽에 가담했다. 하지만 지주를 제외한 민중계급 사이에서는 동학혁명에 대한 향수가 계속 남았고, 이는 민중 역량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에너지로 작용했다. 동학혁명이 추구한 최대 목표는 인간 평등이었다. 동학군이 표방한 '폐정 개혁안'에서는 노비 문서 소각, 백정 등에 대한 차별 철폐, 공평한 인재 등용, 토지 평등 분배 등이 표방됐다.
 
'동학 혁명'의 이념에 민중들이 매료된 이유
 

SBS 드라마 <녹두꽃> 스틸 컷ⓒ SBS

 
인즉천으로 상징되는 인간 평등주의에 민중들이 매료됐다는 점은, 동학혁명 직후에 등장한 독립협회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독립협회 주역들은 동학혁명 주역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독립협회 역시 만민평등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동학혁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중들이 독립협회를 열렬히 지지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주와 양반의 착취와 압제에 신물이 난 그 시대 민중들은 귓전에 울리는 평등사상에 귀를 쫑긋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핵심 메시지 측면에서 동학과 다를 게 없는 독립협회가 동학 진압 직후에 호응을 받았다는 것은, 드라마 속 전봉준의 말마따나 동학이 표방한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표라 할 수 있다.
 
한편, 임진왜란 때는 지주·양반층이 주도하는 의병운동에 적극 호응했던 서민층이 구한말의 의병운동에는 호응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계급차별을 합리화하는 조선왕조를 되살리는 일에 목숨을 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평등주의를 표방하는 동학과 독립협회가 연달아 진압되는 것을 목격한 한국 민중의 마음속에서 조선왕조가 지워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동학과 비슷한 구호를 외치지 않고는 그 시대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봉준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동학혁명 6년 뒤에 인류는 서기 20세기로 접어들었다. 20세기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정치 현상의 특징은 평등주의에 기초한 민주화운동의 확산이다. 1776년 미국 독립전쟁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확산된 민주화 물결이 20세기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결과다. 동학혁명은 이런 흐름과 보조를 맞추는 사건이었다. 그런 점에서도 '실패했지만 틀리지는 않은 일'이었다.
 
동학혁명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의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1945년 8·15 해방으로부터 몇십 년 동안에도, 동학혁명은 동학난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감히, 공개적인 곳에서 그런 표현을 쉽게 쓰지 못한다. 동학농민전쟁 아니면 동학혁명으로 불러야 한다. 또한 동학혁명을 재조명하는 <녹두꽃> 같은 드라마도 방송되고 있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투자자는 물론, 우리 시청자들의 동학혁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봉준과 농민군이 옳았다는 좀 더 결정적인 증거는, 그들이 못다 한 과제를 위해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1894년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농민·여성·어린이·장애인·성소수자 등의 지위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다. 아직도 인즉천의 세상을 향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백번·천번이라도 '동학혁명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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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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