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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최초 의거 성공... 주인공은 김원봉이 아니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드라마 <이몽>

19.07.07 15:42최종업데이트19.07.0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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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몽>의 김원봉(유지태 분).ⓒ MBC

  
MBC 드라마 <이몽>의 김원봉(유지태 분)만큼 주 52시간 노동제가 절실한 독립투사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 속 김원봉은 식민지 한국과 중국을 바삐 오가며 잠시도 쉴 틈 없는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개별적인 의거 하나를 위해서도, 기획·작전과 준비에서부터 현장 지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그가 일일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방영된 조선총독부 폭파 미수는 김원봉의 과도한 역할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드라마 속의 김원봉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에 다 관여했다. 전기수리 직원을 가장해 총독부 청사에 들어가 폭탄을 설치한 그는, 폭탄이 불발되자 다시 들어가 총을 쏴서 폭파시키는 일까지 직접 처리했다.
 
이 때문에 생명을 위협하는 중상을 입었다. 함께 부상을 입은 총독부 사람들 틈에 끼여 병상에 누운 그는, 하마터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을 뻔했다. 임시정부 비밀요원이자 총독부병원 의사인 이영진(이요원 분)의 혈관 봉합 수술이 아니었다면, 병상에서 그대로 순국했을 수도 있다.
 
실제 김원봉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리더도 당연히 현장에 뛰어들 수 있다. <이몽>의 김원봉처럼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리더는 훌륭한 귀감이다. 하지만, 실제의 김원봉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우선, 그는 식민지 한국 땅에 있지도 않았다. 중국에서 활동하기에도 벅찼다. <이몽>에서처럼 일제강점기 하의 서울(경성) 종로를 동네 산책하듯이 활보할 여유가 없었다.
 
또 현장 활동 외에도 할 일이 많았다. 자금을 모으고 단원을 모으고 중국 정부와 교섭하는 일을 맡았을 뿐 아니라, 의거에 사용할 폭탄까지도 그가 직접 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독립투사들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일도 그가 담당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몽>에서처럼 일일이 현장에까지 뛰어들어 의거를 지휘할 여유가 없었다.
 
김원봉의 '현장 지휘'가 아니라 '원격 지휘' 속에서도 의열단원들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그중 하나가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이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실린 박재혁 의사의 사진.ⓒ 국가보훈처

  
박재혁은 김원봉보다 3년 앞선 1895년 5월 17일 부산 범일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1운동 이전인 1910년대 중반부터 그랬다. 박철규 명지대 초빙교수의 논문 '의열단원 박재혁의 생애와 부산경찰서 투탄'은 이렇게 설명한다.
 
"박재혁은 부산공립상업학교 재학 중에 최천택·김병태·박홍규 등과 함께 <동국역사>를 비밀리에 등사하여 배포했다. 3학년 때는 최천택·김병태·박홍규·오재영 등과 구세단(救世團)을 결성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단보를 발행하여 부산과 경상남도 일대에 배포했다."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가 2019년 2월 발행한 <항도 부산> 제37호.
 
상업학교 졸업 2년 뒤인 1917년(22세) 6월에는 무역업을 목적으로 해외로 떠났다. 주로 상하이와 싱가포르 등지에서 활동했다. 주된 취급 품목은 인삼이었다. 그는 무역 활동 중에도 독립운동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다가 3·1운동 뒤에 인연을 맺은 곳이 김원봉의 의열단이다.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던 1920년(25세) 8월, 박재혁은 전보 1통을 받았다. 중국에서 김원봉이 보낸, 상하이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상하이에서 단장을 만난 그는 부산경찰서장을 암살하고 부산경찰서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부산경찰서를 대상으로 했던 것은, 두 달 전 발생한 조선총독부 폭파 작전 때문이었다. 이 작전 실패와 함께, 의열단원 여럿이 부산경찰서에 검거돼 투옥됐다. 드라마 <이몽>에서는 김원봉이 전기 기술자로 가장해 총독부 청사에 진입한 뒤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의열단원들이 실행에 착수하기도 전에 일본 경찰이 이들을 전격 체포했다.
 
이들은 부산경찰서에 의해서도 체포됐지만, 경기경찰부의 악질 친일경찰인 김태석에 의해서도 체포됐다. 김태석과 일경들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중국 음식점에서 회합을 갖고 있던 의열단원 일부를 체포했다. 이것이 실패로 끝난 의열단 제1차 의거였다.
 
이 일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준비한 게 박재혁 의거였다. 허무하게 끝났으면서도 타격이 컸던 제1차 의거 뒤의 침울한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박재혁을 '2번 타자'로 내세웠던 것이다.

단독으로 거사를 수행한 박재혁
 
임무를 받은 박재혁은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에 관한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그 결과, 하시모토가 고서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박재혁은 고서적을 판매하는 중국 상인으로 가장해 하시모토에게 접근하는 계획을 세웠다. 드라마 <이몽> 같았으면 박재혁은 뒤로 빠지고 김원봉이 앞장섰겠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박재혁이 단독으로 거사를 수행했다.
 
박재혁은 중국 고서적상으로 가장하면서도 중국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박재혁 의거를 보도한 <부산일보> 호외판이나 <매일신보> 등에 따르면, 의거 당시 그는 조선 옷을 입고 있었다. 굳이 중국 옷을 입지 않더라도 중국인으로 위장하는 데 자신이 있었던 듯하다.
 
그가 부산경찰서에 접근한 때는 1920년 9월 14일 오후 2시 30분께다. 직경 6cm, 길이 12cm 정도 되는 원통형 폭탄은, 손수건으로 싸서 중국 고서 속에 숨겼다. 그런 상태로 목조 건물인 부산경찰서 정문에 나타났다. 위 박철규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부산경찰서는 2층의 서구식 목조 건물로, 건축된 청사는 외벽을 널빤지로 따닥따닥 포개어 이어 붙인 비늘판 붙이기로 꾸며놓았다."
 
비교적 쉽게 폭파시킬 수 있는 목조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구내에 들어가고자 박재혁은 서장에게 용무가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그런 뒤 하시모토 서장 가까이 다가갔다. 위 논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하시모토 서장의 오른쪽 가까이 접근하자, 서장이 집무를 멈추고 그쪽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 그 순간, 자신이 의열단임을 밝히고 준비해온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 투척은 애초 예상했던 효과에 미치지 못했다. 건물 일부에 부분적 손상을 입히는 데 그치고, 하시모토 서장에게도 경상을 입히는 것으로 끝났다. 박재혁 본인은 중상을 입어, 현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체포되고 말았다.
 
의열단원 최초로 의거 성공시킨 인물, 박재혁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에 있는 박재혁 동상.ⓒ 위키백과

  
부분적 성과를 내는 데 그쳤지만, 이 사건은 의열단이 총독부 폭파 미수로 인한 침울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그 후의 의거들을 자신 있게 성사시키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 누구와도 함께하지 않고 혼자 몸으로 용감하게 뛰어든 박재혁이 일궈낸 성과였다. 부분적 성공에 그치기는 했지만, 박재혁은 의열단원 최초로 의거를 성공시킨 인물이었다.
 
일제의 법정에 끌려간 박재혁은 1921년 3월 31일 3심인 경성고등법원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의거 당시의 중상과 체포 뒤의 고문으로 몸이 쇠약해지는 중에 그는 폐병까지 얻었다. 하지만 기개를 잃지는 않았다. 일제의 손에 사형을 당하는 수치를 피하고자 단식을 시작했고 단식 9일 만인 1921년 5월 27일 대구 감옥에서 만 26세를 일기로 순국에 이르렀다.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이렇게 말한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혹독한 고문과 폭탄의 상처로 몹시 신음하다가 폐병까지 생겨 고통이 심하므로 '왜적의 손에 욕보지 않고 내 손으로 죽자'고 단식하다가 형 집행 전에 옥사 순국하였다."

의열단이 대성공을 거둔 것은 단장 김원봉뿐 아니라 박재혁 같은 희생적인 단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국 순간까지도 기개를 잃지 않은 단원들이 있었기에, 의열단이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면서 한국 독립정신을 국제사회에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이몽>이 거의 김원봉 위주로만 의열단을 조명하는 것은, 박재혁처럼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스스로 밑거름이 된 독립투사들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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