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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검은 상자를..." 봉준호 제안, 이렇게 시작된 '기생충'

[인터뷰]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19.06.21 09:17최종업데이트19.06.2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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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제작자인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 CJ ENM

 
2013년 이 제작자는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주변 제작자들이 하나둘 새 작품 작업에 들어가는 걸 보며 올린 글이다. '나도 동네 주민들 배 아프게 만들고 응원받는 제작 하고 싶다'. 약 6년 뒤 그는 한국영화사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의 제작자가 된다.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이야기다.

한국영화 황금기와 운명을 같이 했던 영화지 <키노> 창립 멤버로 3년, 영화 홍보 마케팅과 기획 업무 약 10년, 그리고 2013년은 그가 몸담고 있던 지금의 제작사의 영화사업부 본부장에서 막 대표직을 맡게 됐을 무렵이었다. 이후 엄태화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가려진 시간>,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곽신애 대표의 필모그래피가 됐다.

검은 상자의 비밀

영화가 한창 800만을 돌파할 무렵 서울 한남동 바른손이앤에이 사옥에서 만난 곽신애 대표는 "관객분들께 참 감사하다"며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 운을 뗐다.  <마더>(2009) 제작자였던 문양권 대표(현 바른손 회장)와 중견 제작사 신씨네에서 바른손이앤에이로 적을 옮긴 곽신애 본부장을 기억한 봉준호 감독은 2015년 4월경 15장짜리 시놉시스를 들고 두 사람을 찾았다.

"감독님(봉준호)의 최근 영화에는 해외 자본이 섞여 있었고 순수 한국 자본 영화로는 <마더>가 마지막이더라. <옥자> 이후 우리와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전임 대표 분들이 회사를 떠나고 제가 그 자리에 오른 이후 홀로 막막했던 때였다. 그 어떤 서류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 회장님과 저, 봉준호 감독이 오전 10시엔가 만났다. '<데칼코마니>(<기생충>의 초기 제목)라는 작품을 바른손이 했으면 좋겠다. 함께 검은 상자를 열어보시겠어요?'라 하시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같이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봉 감독님인데(웃음)."

익히 알려진 세심함 대로 감독의 트리트먼트에 대부분의 영화적 설정이 완성돼 있었다. 이걸 기반으로 <철원기행> 등으로 잘 알려진 김대환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고, <옥자> 연출부이자 <기생충> 스크립터를 한 한진원씨가 이후 시나리오를 좀 더 다듬었다. "한진원씨가 <기생충>의 자료조사도 담당했었다"며 곽신애 대표는 "운전기사 경험자, 가사도우미분들을 만났고, 서울 골목의 특이한 풍경도 계속 찾아다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봉준호 감독이 최종적으로 약 4개월간 골격을 다듬어 최종고가 완성된 것. 2017년 12월 30일이었다. '혹시 봉준호 감독의 2기가 열리는 게 아닐까'. 시나리오를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난 후 곽 대표가 가진 생각이었다.

"감독이나 소설가의 인생이 흘러가며 작품의 경향이 바뀐다고 느끼는 건 제겐 익숙한 일이다. 예를 들면 곽경택 감독님(곽신애 대표는 곽 감독의 친동생이자, 정지우 감독의 아내기도 하다 - 기자 말)과 남편을 놓고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 봉준호 감독님의 <마더>까진 선명하게 한 덩어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기생충>에선 뭔가 감독님의 새로운 시기라는 직감이 들더라. 영화를 다루는 태도나 시야, 기세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외부 환경이나 질서에 영화를 맞추는 게 아닌 본인 내적 질서에 따라 만드는 느낌이랄까. 너무 영화 기자 출신 같은 말인가(웃음). 개인적인 생각이다."
 

"'함께 검은 상자를 열어보시겠어요?'라 하시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같이하자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봉 감독님인데(웃음)." ⓒ CJ ENM

 
 

지난 5월 열린 72회 칸영화제 당시, <기생충> 공식 상영 직후 모습.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 기립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 CJ ENM

 
황금종려상 영광과 흥행에 대한 기쁨만 있는 건 아니었다. 뒤늦게 화제가 된 봉준호 감독의 '표준근로계약서' 준수 발언 등은 제작자 입장에선 자칫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스태프 처우 개선에 노력해 온 다른 영화의 노고를 가리는 게 될까 민망했다"고. 곽 대표는 "표준근로계약서는 이미 2017년에 확대되고 정착된 면이 있다"며 "정착을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은 따로 있다. 우린 그대로 했을 뿐 기여한 게 없다"고 말했다.  

지면을 빌려 곽신애 대표는 관객에 대한 감사함을 언급했다. "스포일러 또한 잘 지켜주시고, 영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해석하는 흐름이 참 감사했다"며 말을 이었다. 

"사석에서 열심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적극 해석해 주시니 더 감사한 일이다. <기생충>을 보신 800만 명의 단 몇 프로라도 다른 영화를 보실 때 그렇게 해주시면 한국영화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문학도, 출판사 직원, 영화잡지 기자 등. 곽신애 대표가 영화사 입사 전 거친 과정이다. "통속 소설을 좋아했지 어릴 때부터 딱히 영화 일을 꿈 꿔 온 건 아니"라며 그는 "(<키노> 창립 멤버인) 정성일 평론가의 제안으로 영화 기자 일을 한 게 본격적인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대중 소설을 바로 쓰기엔 어려울 것 같고, 일단 취업을 해서 경험을 쌓아야지 싶었다. 그러다 영화 기사를 쓰면서 사람들과 인연도 생기고, 점차 영화 쪽에 관심이 생긴 거지. <키노> 종간호 때 제가 쓴 글이 있다. 입사 전 제 삶은 영화와 상관없는 삶이었지만 <키노>를 나올 땐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취지였다.

돌아보면 제가 기사를 썼을 때 분명 1년에 두 어 편씩 탄성을 지르게 하는 영화들이 나왔었다. 지금은 영화적 토양이 척박해진 건 맞는 것 같다. 점점 첫 작품으로 데뷔하는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봉준호 감독님도 서른 초반 데뷔했고, 정지우 감독 역시 서른한 살에 데뷔했는데 지금은 40대 신인 감독님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으로 보는 건 아니었다. 투자배급사와 극장의 독과점 구조 등으로 제작사들이 자신들의 개성을 지키며 작업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지적에 곽 대표는 "결국 자신 내부의 성향을 알고 그것대로 작품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반드시 자본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도 돈이 될 것 같아서 투자된 건 아니었다. 거꾸로 보면 독립영화, 다양성영화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관객과 소통이 전제돼야 할 것 같다. 영화는 일기가 아닌 편지라고 생각한다. 연애편지를 쓸 때 진심을 상대에게 온 힘 다해 전하려 하잖나. 그렇게 상대방을 고려하며 이야기를 쓰면, 완성도만 보장된다면 어떤 소재든 간에 배우가 출연하려 할 것이고 투자 역시 이뤄지지 않을까.

아마 이런 생각은 <키노>에서 형성된 것 같다. 당시 제가 팀원 중에 상업적인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쪽이었거든. 그때도 영화 문화라는 게 왜 필요한가 등에 대해 썼던 것 같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적극 해석하는 현상에 <기생충>이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면 보람이 클 것 같다." 


"아이템보다는 창작자에 매료되는 편". 곽신애 대표는 자신의 작업 성향을 그렇게 표현했다. "영화 작업이란 게 70% 진도가 나갔다가도 10%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며 그는 "지금까지 내놓은 두 작품 모두 제가 매혹을 당한 창작자와 작업했는데 세 번째도 그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적극 해석하는 현상에 <기생충>이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면 보람이 클 것 같다."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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