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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마무리하는 법 보여준 송영균씨, '웰다잉' 생각하게 하다

[TV 리뷰]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19.06.18 16:34최종업데이트19.06.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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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죽겠다'라는 표현은 이제 현대인에게 일상화된 하소연이다. 하지만 저 빈말이 진짜 현실이 되는 순간이 다가온다면 어떨까. 

지난 17일 방송된 < MBC스페셜 >에서는 지난 3월 9일 고인이 된 송영균씨의 모습을 담았다. 

1987년생 송영균씨는 그의 나이 스물 여덟이 되던 해에 화장실에서 피를 쏟았다. 자고 일어나니 침대가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진단명은 대장암 4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공익 인권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에 입학한 지 3개월만의 일이었다.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스물 여덟 살의 대장암 진단, 그리고 4년 

"대장암입니다. 간에도 전이가 되었네요. 무려 열 개의 종양이 있어요..."

이런 선고가 매일 연이어 내려졌다고 한다. 결국 송영균씨는 직장을 자르고, 간에서 폐로 전이된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수술을 했다. 그렇게 약 4년이 흘렀고, 이제 그는 더 이상 항암 치료를 받지 않는다.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두세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종양이 자랐다고 한다. 병원을 찾기 전 그는 골반 통증을 느꼈다. 검사 결과 암 수치도 올랐다. 그는 수술을 거듭하면서도 로스쿨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학기 남겨둔 로스쿨을, 어쩌면끝내지 못할 것만 같다. 

이렇게 증상과 상황을 나열하면 송영균씨는 절망적인 상황의 말기암 환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송영균씨는 그렇게 사는 것도 삶이고,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큐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최선을 다해 뚜벅뚜벅 걸어가고자 하는 송영균씨의 일상이 제작진의 시선과 송영균씨의 셀프 카메라로 소개된다.

송영균씨는 암으로 인해 자신이 꿈꿨던 로스쿨 이후의 삶을 실현할 수 없게 되면서 고민했다. 죽을 때까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고민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죽음이란 결국은 누구나 겪을 종착지다. 다만 대다수 사람들은 먼 미래일 거라는 생각에 떠올리지 않는 것 뿐이다.

송영균씨에게는 죽을 때까지 할 일을 찾는 게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책을 좋아해서 많은 책을 섭렵한 그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철학, 죽을 때까지 읽기'라는 독서모임을 만든다.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단 한 글자도 안 읽어도 책을 읽은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송영균씨는 10쪽짜리 책 소개를 10시간 넘게 작성했다. 하지만 그는 모임에 나와주는 사람들이 그저 고맙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걸 알려줄 수 있어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줘서 말이다. 그렇게 송영균씨는 삶의 끄트머리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찾아냈다.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몸이 그 지경인데 무슨 독서모임이냐'라며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을 걱정했다. 하지만 송영균씨는 호흡이 가빠지고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에게) 먼 미래는 없어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을 읽어준 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쁘다'라고 말한다.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축하받고 싶어요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암은 늘 그를 이겼다. 송영균씨는 건강해지고 싶은데, 암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곤 그의 몸의 주요한 부분을 결국 정복해 버렸다. 더는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송영균씨는 점차 죽음을 준비한다. 

송영균씨는 별다른 의도 없이 찍었던 사진이 죽음의 자리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것이 싫어, 친지와 함께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해 어릴 적 동네를 찾는다. 일상의 한 장면처럼 찍겠다는 포토그래퍼의 의도에 그는 늘 그랬듯이 환하게 웃는다. 
 
그가 태어난 지 31개월 되던 해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영균씨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자신의 짧은 삶을 회고한다. 아버지가 없어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간,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어머니를 도와야 했던 나날,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하지만 이제, 과거 두고 갈 가족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거둔다.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그리고 10년 동안 가게 문 한번 안 닫고 치열하게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함께 송영균씨는 여행을 떠난다. 그는 어머니의 기억 속에 멋들어지게 뿌듯한 아들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구두까지 챙겨 신고 한껏 멋을 부린다. 

정장을 차려입은 송영균씨는 손수 음식을 마련해서 생에 마지막 파티를 준비한다. 2018년 연말, '영균이 드리는 저녁 한 끼'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사랑했던 사람들, 그가 자신의 투병기를 올렸던 SNS의 친구들과 함께, 이제는 더는 할 수 없을 한 끼를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한 좋은 기억을 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2018 '영균 어워드'라는, 갖가지 기지 넘치는 상들이 준비된 시상식과 함께.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숨을 쉬기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영균씨는 독서 모임을 이어갔다. 입원 권유에도 휴대용 산소 마스크로 하루 하루를 버텼지만, 결국 119 구급차가 왔다. 3월 9일, 송영균씨는 4년 9개월 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암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영균씨는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주도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안락사'를 고민하기도 했다. 다만 우리의 법 실정으로 인해, 그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겠습니다'라는 서명으로 대신했다.

암과의 전쟁에서는 비록 암이 승리를 거두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끝내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송영균씨는 삶을 포기한 말기암 환자가 아니라, 삶의 끝에서 '잘 죽어갔던(well dying)' 선구자로 오래오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생전의 그가 바라던 대로 꽃피는 화려한 봄날 추도식을 마련했다. 그가 좋아하던 와인잔을 들고, 그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그가 쓴 글을 읽으며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수고했어, 영균!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다큐의 마지막 장면, 셀프 카메라에서 송영균씨는 말한다.

"너무 슬픈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전 참 열심히 살았어요. 최선을 다했어요. 되돌아 보니 즐거웠던 일도 많았네요. 잘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축하받고 싶어요."

고령화, 가족 해체와 맞물려 최근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자기 주도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웰 다잉', 지난 2009년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첫 판결 등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 MBC스페셜 >이 다룬 송영균씨의 '웰 다잉'은 의료적 존엄사를 넘어 삶의 한 과정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시간에 대한 주도성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2019년 6월 17일 방영된 < MBC스페셜 > '내가 죽는 날에는'편 중 한 장면ⓒ MBC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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