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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간의 선' 지키면 괜찮을까? '기생충'이 당신에게 묻는다

[리뷰]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우리에게 던진 질문

19.06.14 17:18최종업데이트19.06.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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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오만 생각이 다 드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기생충> 개봉 전 한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위와 같이 바람을 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를 관람하고 나온 관객들은 SNS와 유튜브에서 그야말로 '오만가지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봉 감독은 개봉 전 기자들에게 "공개된 예고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최대한 감춰 주셨으면 한다"는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봉 감독의 신작이 너무나 궁금했던 나는 스포일러가 무서워 개봉 첫날 조조로 관람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번 더 가서 보았다. 그랬더니 나중에 몇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글 역시 그런 봉 감독의 바람에 대한 응답이 될는지.

첫 소감은 무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한글 자막 없이 볼 수 있었다는 기쁨이다(지난해 일본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어느 가족>을 통해 그런 기쁨을 누렸다). 그리고 달시 파켓이 절묘하게 번역했다곤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오직 한국인만이 100% 알 수 있는 디테일들을 발견할 때의 짜릿함도 있었다.

한 외신이 호평하며 썼던 것처럼 봉준호 감독은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자신이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말하면서도 장르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묘하게 비틀며 '삑사리'를 내는 이상한 장르영화 감독.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영화 <기생충>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영화다. 이 말은 <기생충>을 개별적인 작품으로 이해하기보다 전작들과 유기적으로 연결지어 보면 더 좋을 수 있다는 뜻이다. 봉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기생충> 주인공들의 전사(前史)를 관객들은 알 수 없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현남(배두나)은 어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으로 들어갔는지, <살인의 추억>에서 두만(송강호)은 어떤 사건들을 해결해 왔는지, 또 현규(박해일)는 어떤 사연으로 혼자 살고 있었는지 관객은 속시원히 알 길이 없다. <괴물>에서 강두(송강호) 가족은 어떻게 살다 한강에서 매점을 하게 되었는지, <마더>에서 도준 엄마(김혜자)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왜 어린 도준(원빈)과 동반자살하려고 했는지, <설국열차>에서 사람들은 어쩌다 이 기차에 오르게 되었는지, <옥자>에서 왜 미자(안서현)는 부모 없이 할아버지(변희봉)와 둘만 살고 있는지. 모든 건 주인공들의 영화 속 현재 모습을 보며 추측만 해볼 따름이다.
 

▲ <기생충>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기생충>은 어떨까. 먼저 반지하방에 살고 있는 전원 백수 가족.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 박스와 동네 방역소독을 신기해하거나 기택(송강호)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이곳에 산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우(최우식)가 자신도 컵 스카우트 단원이었다고 한 얘기를 떠올리면 기택네 가족 사정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기정(박소담)도 원래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충숙(장혜진)이 전국체전 해머던지기에서 딴 은메달은 가정의 생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한편 박사장네는 어떨까. 연교(조여정)가 박사장(이선균)과의 소파 장면에서 지나가듯 말한 것처럼 분명 타본 지는 오래 되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던 듯하다. 글로벌 IT 기업 CEO로 알려진 박사장은 아마 몇몇 벤처기업의 성공담에 나올 법한 인물이다. 어쩌면 두 가족의 차이가 원래는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시점을 계기로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좁혀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우는 친구의 제안으로 기정이 위조한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가지고 박사장네 고액 과외 면접을 보러 간다. 속이기 쉬운 심플한 연교 덕에 기우는 물론이고 기정과 기택, 충숙 모두 차례로 이 집에서 일하게 된다. 완벽한 '계획'처럼 보인다. 그러다 박사장네가 캠핑 간 틈을 타 한껏 취해있던 기택네 가족에게 들려온 초인종 소리로 이 영화의 장르는 블랙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바뀐다.

초인종을 누른 이는 문광(이정은). 그녀는 박사장네가 오기 전부터 이 집에서 일하던 가사도우미다. 연이어 등장한 근세(박명훈) 때문에 기택네가 위장 취업한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를 순간 그들은 공생이나 상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다. 예고편에 등장한 연극배우 박정자의 내레이션처럼 기택네가 이제까지 저지르고 있는 모든 일들은 "엄연한 범죄"다. 그러나 영화 전반부에 기택네에 매료된 관객들은 후반부에 문득 어느 순간 그들이 문광과 근세를 무사히 해치우기를 바라는 자신을 깨닫고 몸서리친다.

<기생충> 속 문광의 대사가 떠오르는 이유 

사실 <기생충>은 구성원이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로 이뤄진 두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광 근세 부부까지 세 가족의 이야기다. 문광이 지하 벙커 안 변기에 뇌진탕 후유증으로 토악질을 할 때 폭우로 물난리가 난 기택네 반지하방 변기가 오물로 넘쳐 흐르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기생충>의 최초 제목이라고 알려진 <데칼코마니>는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이 아니라 기택 가족과 근세 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에는 수석을 시작으로 인디언, 무전기, 모스부호, 계단, 선, 냄새까지 은유가 차고 넘친다. 관객들의 '해석 놀이'가 이어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기생충은 무엇인가.
 

▲ <기생충>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나를 곧장 죽이지는 않지만 내 몸에 들러붙어 매일매일 조금씩 내가 벌어들인 것들을 뺏어가는 것, 지금 당장 떼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나에게 기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공지능(AI)이 기본이 된 고도의 기술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일자리와 노동이 희귀해지면서 대부분이 생산하는 것 없이 복지 수당으로 촘촘한 그물망이 된 소비 사회를 살아갈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한 명의 유튜브 광고 시청자로 존재하며 핸드폰 요금과 카드대금을 뜯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일자리가 사라진 사회에서 자영업자는 계속 늘어날 테고 '대만 카스테라'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투기적인 자본주의 아래 일확천금이나 대박창업의 꿈, 비트코인 열풍 같은 것들. 누가 우리의 삶을 자꾸만 비천하게 하고 삶을 보이지 않게 조금씩 축내며 갉아먹고 있는가.

<기생충>에 나오는 박사장네는 언뜻 보면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상류층과는 달라 보인다. 부자인데 언뜻 보면 착하다. 그러나 그들은 갑작스러운 휴일 아들 생일파티에 과외 선생들을 초대한다며 "일한 것으로 쳐주겠다"면서 어떤 미안함도 드러내지 않고 지시를 내린다. 완곡한 명령에 가깝다. 이들은 아이를 함께 키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돈으로 언제든지 아이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도구적 존재에 불과하다.

돈을 후하게 쳐줄 뿐 이들을 자기 노동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거부하지 않고 박사장의 제안에 선뜻 응한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많은 돈을 받지만 본질은 노예와 다름없다. 오랫동안 자신들을 위해 일해 준 가사도우미가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떤 걱정이나 연민도 없이 서둘러 내쫓는 데만 급급한 연교를 보라. 박사장네는 전혀 사악해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세계는 공감 능력이 상실된 차갑고도 매정한 곳이다.

정말, '예의'만 지키면 아무 문제 없는 걸까

<기생충>은 봉준호가 지금까지 만든 일곱 편의 장편영화 가운데 가장 어두운 결말을 보여준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현남은 윤주(이성재)의 개 순자를 찾지만 끝내 할머니의 치와와를 죽인 범인은 알지 못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현규는 혐의를 벗지만 두만은 끝내 연쇄살인범을 잡지 못한다. <괴물>에서 강두는 괴물을 죽이지만 딸 현서는 살리지 못한다. <마더>에서 엄마는 아들 도준은 구하나 대신 누명을 쓴 종팔(김홍집)은 구하지 못한다. <설국열차>에서 기차를 멈추는 데 성공하지만 살아남은 요나(고아성)와 티미는 무사할지 알 수 없다. <옥자>에서 미자는 옥자를 구하나 다른 수많은 옥자들은 구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이에 비해 <기생충>을 생각해보라.

근세의 칼을 맞은 기정은 출혈을 막는 기택의 처치가 간지럽다고 웃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오히려 수석에 머리를 두 번이나 맞은 기우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기우는 기택의 모스부호를 용케 읽는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다닌다던 수석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기우의 계획이 성공하리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다. 기택은 죽은 근세가 그랬던 것처럼 지하에서 지상으로 전달될지 알 수 없는 모스 부호를 보낸다. 아마 기택은 근세처럼 지하에서 오래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영화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반지하방에 사는 기우를 비추며 끝난다. 어쩌면 훗날 충숙이 그 집 도우미로 들어가 주인 몰래 지하에 있는 기택에게 먹을 걸 가져다 주는 처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 <기생충>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한 봉준호 감독·ⓒ CJ 엔터테인먼트

 
새로운 계획이 뭐냐는 기우의 물음에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기택이 말한 장면이 있다. 봉준호 감독은 "타인들과 예의로서 유지하는 기본적인 거리가 무너진 상태에서 그 예의에 대한 최후의 마지노선이 붕괴됐을 때 어떤 파국을 맞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고 했다.

한때 한국에서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그나마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택이 처음 박사장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고액 과외에서 보듯이, 사교육비 증가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마저 불가능해진 시대다. 그렇게 나눠진 계층 간의 예의만 지키면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사회학을 전공한 이상한 장르영화 감독이 바라보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차갑고도 혹독한 비극의 자본주의는 오늘도 안녕하다.

1.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사이에 찍은 단편 <CUT(컷)>(<쓰리, 몬스터>에 수록되어 있다)에서 먼저 나온 바 있다.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사회적 명사가 된 이후 재벌가 자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박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착한 성격마저 부자들이 독점하는 세상이 슬퍼서 만든 영화"라며 "예술가의 시선에서 보면 가난뱅이는 부러워하는 것이 많아 삐뚤어지는 경향이 지배적인데 반해 부자는 아쉬울 게 없어 더욱 착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충숙이 말한 "돈이 다리미야. (마음의) 주름살을 쫙 펴줘"라는 대사를 들으며 이 영화가 떠오른 나는 한없이 우울했다.

2. 국내 개봉 전 칸 영화제 공식 상영회 당시 쏟아지는 관객의 기립박수로 엔딩 크레디트가 일찍 종료되는 바람에 묻혀버린 <기생충> OST 수록곡 '소주 한 잔'. "사람이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될 때면 혼자 소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영화의 마지막 기우의 감정을 담은 이 노래를 들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영화의 여운을 이어 나갔으면 한다"고 전한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칸 영화제 관객들이 놓친 이 노래를 절대 놓치지 마시길.

"길은 희뿌연 안개 속에 힘껏 마시는 미세먼지/ 눈은 오지 않고 비도 오지 않네 바싹 메마른 내 발바닥//매일 하얗게 불태우네 없는 근육이 다 타도록/ 쓸고 밀고 닦고 다시 움켜쥐네 이젠 딱딱한 내 손바닥// 차가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마른 하늘에 비구름 조금씩 밀려와//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빨간 내 오른쪽 뺨에 이제야 비가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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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 본업인 영화감독보다 부업인 ‘물레책방 대표’로 더 많이 알려져 요즘 난감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영화를 만들고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이런저런 매체에 여러 가지 글들을 쓰고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장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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