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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와 작업 신났다", 칸영화제 '웃음바다' 만든 사람

[인터뷰] <기생충> 번역한, 평론가 달시 파켓 "국내에서도 영어자막 상영 확대되길"

19.06.09 11:24최종업데이트19.06.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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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달시 파켓영화 <기생충>에서 영어 자막 번역한 달시 파켓ⓒ 이정민

  
한국에 온 지 20년을 훌쩍 넘긴 미국 출신 달시 파켓의 직함은 다양하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번역가로 최근 알려지고 있지만 그는 1998년 무렵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 꾸준히 한국 문화와 말을 공부하며 평론가, 나아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두루 맡고 있다. 

한국에 오래 머물더라도 의사소통을 넘어 외국인이 한 예술 작품의 번역을 맡는다는 건 분명 녹록지 않은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의 번역 감수 이후 달시 파켓은 <옥자>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 작품의 번역을 맡아왔다. 봉준호 감독뿐이 아니라 나홍진 감독의 <곡성>,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박석영 감독의 <스틸 플라워> 등 상업, 다양성 영화를 막론하고 약 150편에 이르는 작품이 그의 번역을 거쳐갔다. 

"단점만 보이기 쉬운 힘든 일"이라는 말에서 그의 자막 작업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1997년 고려대학교 영어 강사로 한국에 발을 딛은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본 뒤 한국영화에 빠지게 됐고, 이후 취미로 영화 잡지를 두루 찾아보며 자신만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1999년 만들어진 이 사이트엔 그가 직접 보고 쓴 약 600편의 리뷰와 해당 작품의 상업적 흥행 수치가 연도별로 정리가 돼 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전공이 러시아였는데 그땐 열심히 공부했었다.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땐 러시아어도 꽤 잘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다(웃음). 꿈이 5개 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었거든. 그 생각으로 한국어를 혼자 배웠다. 1년 반 지나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됐고, <씨네21> 등을 사서 계속 읽었다. 

그때 참 재밌는 한국영화들이 많았다. <조용한 가족> <넘버3>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정말 이야기가 다양했다. 웹사이트 만드는 걸 좋아해서 본 영화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보면 한국영화에 대한 영어 정보가 거의 없었거든.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거라도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의외로 해외에서 제 사이트를 더 챙겨보더라."


봉준호는 역시 '디테일'
 

영화 <기생충> 스틸 컷ⓒ CJ엔터테인먼트

  
애정으로 시작한 일이 발단이 돼 영화 번역 감수까지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그렇게 만나게 된 것.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때 아마 절 감수로 그쪽에 추천했던 걸로 기억한다"며 "되게 즐겁게 작업했다. 확실히 아이디어와 시선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봉 감독과의 첫 작업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플란다스의 개>를 개봉하고 두 번인가 더 봤다. 제 사이트에도 리뷰를 썼었는데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썼던 것 같다(웃음). 그 뒤에 <살인의 추억> 때 감독님이 제게 (감수가 아닌) 번역을 직접 해줄 수 있냐고 전화하셨다. 경험도 없던 때였는데 내가 맡아도 될까 생각이 들었지만 하겠다고 했다.

그게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을 맡은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와이프(달시 파켓은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기자 말)와 함께 작업했고 이후로 친구와 저 와이프가 같이 작업하는 시스템으로 했다. <괴물> 땐 제가 맡았다가 마무리 시점에 해외에 가야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게 아쉽더라(웃음). <마더> 이후로는 제가 쭉 끝까지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달시 파켓은 봉준호 감독의 섬세한 부분을 언급했다. <마더> 작업 당시 원빈이 맡았던 캐릭터의 이름에서 영어 자막이 길어질까봐 '도준'이라고 지은 것은 최근 유명해진 일화다. <기생충> 작업은 그가 여태껏 작업한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이 돌려보며(7회), 가장 깊이 감독과 대화한 경우였다. 올해 1월 시나리오를 건네받은 그는 초고 번역에만 10일을 보내야 했다.   

"직접 감독을 만나 자세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진 않다. 박찬욱 감독님의 <아가씨> 때도 그랬고, 감독님이 영어를 좀 하시면 (자세한 소통이) 가능한데 그게 아닌 경우엔 감독님들이 절 믿고 맡기시는 편이다. 번역하면서 언어적 고민과 작품적 고민을 같이 하니까 같은 대사라도 여러 방향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감독님과 만나면 물어볼 수 있으니 좋다. 그렇게 얘기하면서 수정하면 번역의 질이 높아진다."

회심의 번역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땐 러시아어도 꽤 잘했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다(웃음). 꿈이 5개 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었거든. 그 생각으로 한국어를 혼자 배웠다."ⓒ 이정민


달시 파켓은 주로 해당 장면에서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를 봉준호 감독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젠 많이 알려진 번역들, 그러니까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이런 거 없니?'에서 의미 전달을 위해 서울대를 '옥스퍼드'로 바꾸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해외에서 더 많이 쓰는 '왓츠앱' 어플로 번역하는 등. 모두 해당 장면의 느낌까지 고려한 결과물이다.

또한 짜파구리를 'ram-don'(ramen + udon)이라 풀고, 반지하를 'semi-basement', 종북 개그 달인을 'Nobody can imitate North Korea news anchors like you'라고 한 것은 외국에 익숙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의미를 추론하게끔 설명적이거나 준 신조어를 만든 경우다. 이 덕분일까. 칸영화제 상영 당시 한국 기자단이 웃는 타이밍과 외국인 관객이 웃는 타이밍이 대부분 일치했다. 과거 다른 한국영화 상영에선 웃는 포인트가 상당 부분 어긋났던 풍경과 대조적이었다. 

"또 하나 생각난 게 곱등이다. 외국엔 잘 안 보이는 곤충인데 바퀴벌레라고 쓰고 싶진 않았다. <설국열차>에 이미 나오기도 하니까. <기생충> 번역 때 제가 미국에서 작업했는데 부모님 집에 stink bug(노린재)가 많다. 감독님께 물었다. 다른 벌레긴 한데 이게 더 외국에서 익숙하니 괜찮냐고. 그래서 곱등이는 stink bug로 쓰게 됐다. 

곱등이나 램동같은 경우는 제 아이디어였고, 옥스퍼드는 처음엔 서울대로 썼다가 감독님과 고민하는 과정에서 바꾼 것이다. 수석 역시 고민을 많이 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는 scholar's rocks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해외에선 개념자체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라 landsape rock으로 썼다. 처음엔 편집본을 보면서 작업하다 좀 더 완성된 버전을 감독님과 함께 앉아서 봤거든. 그렇게 보면 수정할 게 꼭 생긴다(웃음)."


달시 파켓은 대사 자체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 톤도 번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리듬감과 목소리 톤에 따라 써야할 단어가 달라질 때가 있다"며 "편집에 따라 대사가 짧아지면 단어 역시 짧은 걸 택한다"고 전했다.

봉준호 감독과 작업을 달시 파켓은 "신났다"고 표현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상태에서는 과연 어떻게 연출하실지 매우 궁금했다. 칸영화제 출국 직전 너무 한국적이라 외국에서 100프로 다 이해할까 모르겠다던 감독님 발언을 뉴스를 통해 접했었는데 '아, 이거 엄살인데. 인기 많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웃음). 영화라는 게 그렇다. 특히 자막 번역에 신경쓰면 한국적이든 어떤 특정 문화의 것이든 상관 없다."

달시 파켓의 날카로운 지적
   

"처음엔 편집본을 보면서 작업하다 좀 더 완성된 버전을 감독님과 함께 앉아서 봤거든. 그렇게 보면 수정할 게 꼭 생긴다(웃음)."ⓒ 이정민


<기생충>의 성과에 그 역시 영화인이자 참여한 스태프로서 기뻐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한국영화의 흐름에 대해 걱정하는 바도 컸다. 그가 20년 간 써온 리뷰, 그리고 영화지에 기고해 온 글에서도 그런 우려를 엿볼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게 <기생충>이 이렇게 성공했는데 아마 다른 감독이 같은 시나리오를 들고 왔으면 (영화화가) 안 됐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젊고 재능있는 감독이 자기 스타일의 유니크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요즘같다. 봉준호, 박찬욱, 그리고 이창동 감독님 등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지만 그 외 대부분 감독님들 상황이 어려운 것 같다.

영화산업적으로 아무래도 다양성이 화두같다. 예술영화,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분명 극장 관객 수는 늘었고, 천만 영화 역시 잘 나오고 있는데 필름 컬처(film culture)는 떨어지는 듯하다. 1990년대 필름컬처가 되게 좋았는데 말이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국내) 개봉작에서도 영문 자막을 넣은 상영관이 꾸준히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근데 아직까지 영문 자막 극장은 스케줄이 불규칙적이다."


2009년 그는 <씨네21>에 '한국영화계에 10억 원 미만 예산의 영화를 대상으로 한 시상식'을 제안했고, 2014년 실현시켰다. 독립영화가 주인공인 '들꽃영화제'가 그것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포럼 등 국내 주요 독립영화상과 함께 들꽃영화제 역시 빠르게 성장했고, 자리잡았다. "의미 있는 상이라 생각한다"며 그는 "다른 독립영화제와 다른 게 우린 개봉한 독립영화를 한 번 더 돌아보고 기억하자는 마음"이라 덧붙였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미 그의 높은 한국어 수준과 문화적 이해도에서 느낄 수 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영화가 저와 이 나라의 연결고리라는 생각이 든다"며 "지금도 웹사이트로 '한국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한국영화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상상하고 있다'는 메일이 많이 온다. 한국사람들도 다른 나라 영화를 많이 보고 그렇게 영화를 통해 문화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 이미지 포즈를 취한 달시 파켓.ⓒ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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