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소년-소녀의 아름다운 파리 여행... 그 뒤에 숨겨진 진실

[넘버링 무비 147] 영화 <파리의 딜릴리> 실루엣 애니메이션 장르의 대가

19.06.01 13:42최종업데이트19.06.01 13:42
원고료주기
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파리의 딜릴리> 메인 포스터ⓒ 오드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미셸 오슬로 감독은 프랑스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미 많은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는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 클레이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등과 달리,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는 유니크한 장르의 장인으로 여겨진다. 자신이 자라났던 아프리카 대륙의 사실적 묘사에 공을 들인 <키리쿠> 시리즈와 컷 아웃 기법을 활용해 종이 조각 하나하나를 수작업으로 움직여 만든 <프린스 앤 프린세스> 등의 작품들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서만 160만, 유럽 전역에서 5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키리쿠와 마녀>는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도 잡은 애니메이션이다. 백인이 연출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류나 의도적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다는 점에 있어 더욱 인정받는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사회적 문제와 인종과 국경에 대한 첨예한 논점들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드러내 왔다. '관객과 교류할 수 있도록 내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언급하며 대중성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기도 했으나, 사실 이는 그만큼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명확히 그려내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이기도 한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데는 북유럽 국가들의 애니메이션 장르를 활용 방식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할리우드나 동양권의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유럽의 애니메이션은 오래 전부터 사회적 문제를 다루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우회적 통로로 활용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감독의 신작인 <파리의 딜릴리> 역시 그의 전작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이번 영화는 파리로 밀항해 숨어 들어온 누벨-칼레도니(Nouvelle-Calédonie)의 소녀 딜릴리(프루넬 샤를-암브롱 목소리 분)와 배달부 소년 오렐(엔조 라트시토 목소리 분)의 모험담의 형식을 차용한 작품.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한 아이들과 그들을 납치해 잘못된 사상으로 사회를 지배하려는 마스터맨 집단을 두 사람이 추적해 의문의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을 통해 프랑스라는 나라가 역사 속에서 보여왔던 부조리한 문제들과 현재의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혼란에 대해 감독이 생각하는 바를 명확히 풀어낸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오드


02.

겉으로 보기에는 귀엽기만 한 애니메이션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건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알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줄 알았던 딜릴리의 집, 그 작은 마을이 갑자기 줌 아웃 되는 카메라와 함께 프랑스 파리의 도시 한복판이라는 걸 관객들이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1889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그 곳에서 전시된 아프리카계 원주민들의 모습과도 같다. 물론 그 당시처럼 강제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형식의 연출된 상황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파리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불편할 뿐이다.

이를 견뎌야 하는 딜릴리의 태도는 오히려 담담하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녀에게 다가온 오렐에게는 되려 일 끝나고 만나자는 쿨한 답변도 남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걸 곧 알아차릴 수 있다. 유럽에서는 너무나도 먼, 태평양의 프랑스령 도서 지역 누벨-칼레도니에서부터 그녀는 언제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으로서 차별의 시선을 받아왔다는 것이 고백되기 때문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황인종에 가까웠던 탓에 자신의 원래 고향에서는 너무 하얗고, 여기 프랑스에서는 너무 까매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여기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옛 프랑스, 아니 당시 유럽 대륙이 갖고 있었던 백인우월주의와 제국주의, 각종 이유로 자행되는 차별의 문제에 대해 조금도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이와 더불어, 그 중심에 있는 딜릴리라는 인물의 태도를 유난스럽지 않게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딜릴리의 반응은 차별을 순순히 인정해서가 아니라, 지난 오랜 시간 속에서 쌓인 피로감 때문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소녀라는 사실 또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문제가 한 개인이 아니라 세대에 걸친 문제임을 상기시키는 듯 하다.

03.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영화는 여성 인권의 문제로 나아간다. 영화 속에서 마스터맨이라고 불리는 집단에 의해 납치된 여성들이 히잡과 같이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고 폭력에 노출되고 있는 모습은 억압된 이슬람 여성들의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특정 종교에 대한 문제 제기라기 보다는 여성 인권을 복원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세력의 모습을 차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통해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억압과 인고의 시간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여성들이 '네발'이라고 불리며, 자유 의지대로 걷지도 못하도록 그려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딜리리의 모습이 인상적인 것은 조금도 수동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에 마스터맨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을 때도, 남겨진 여성들을 구출하기 위해 파리 시내의 유명 인사들을 만나러 다니면서도 그녀는 새롭게 경험하는 혹은 처음 만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잠시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새로운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모습. 그리고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이 주는 영감이 분명히 있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오드


04.

동일한 지점에서 미셸 오슬로 감독은 과거 행복했던 시대에 대한 반성도 놓치지 않는다.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고 불리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에 대한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프랑스가 예술,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번영했던 시기에 대한 그의 시선은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가 낭만적일 수 있도록, 밝고 화려한 분위기를 영위할 수 있도록 해줬던 식민지 착취의 문제와 인종 차별적 사고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그 누구도 이 문화적 시기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는 현재의 모습에 대해 그는 우회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영화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딜릴리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자정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미래에 대해 그는 1894년의 기억, '드레퓌스 사건'을 넌지시 던져놓는다. 프랑스군의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은 일이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가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는 사실이 아니었지만 상부에서는 진상에 대한 증거를 은폐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여론을 선동해 그를 매장시킨다. 딜릴리가 마스터맨을 붙잡고 난 뒤에 수많은 언론 매체를 통해 우상화되는 장면이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지점들만 몇 부분 언급했지만, 영화 <파리의 딜릴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고 반성해 나간다. 그것이 비록 감독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들에 대해 짚어나간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며 또 다른 문제가 되어 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영화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오드


05.

이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영화의 진짜 모습을 알기가 어렵다. 영화는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져 있지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딜릴리가 줄넘기 줄을 꺼내 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 귀여운 몸짓에 대한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관객은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이 영화를 연출한 미셸 오슬로 감독의 의도가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강한 주제가 강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되려 관객들의 피로도만 누적시키거나 애초에 그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딜릴리와 오렐의 뒤를 쫓으면서 퀴리 부인과 루이 파스퇴르, 피카소, 로뎅, 모네, 드뷔시 등 당대 최고 예술가들의 모습도 그려낸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이 영화의 결말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주인공인 딜릴리를 성장시키고 또 일부는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감독이 바라는 이상향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는 제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아주르와 아스마르>, <밤의 이야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야기 해왔던 것처럼 결국 그 어떤 차별과 편견도 관심과 사랑 앞에서는 부질없다는 것을 이번 작품 <파리의 딜릴리>를 통해서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A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