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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할 수 없는 '황금종려상 후보', 테렌스 맬릭

[김성호의 씨네만세 267] 칸 황금종려상 후보, <어 히든 라이프>의 테렌스 맬릭

19.05.22 14:16최종업데이트19.05.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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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영화제가 반환점을 돌았다. 자타공인 유럽 최고의 영화축제인 데다 어느 때보다 명성 높은 감독 여럿이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뜨겁다. 베일을 벗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켄 로치의 신작이 호평을 받았으며, 짐 자무쉬를 포함한 감독 몇몇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막강한 권한의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를 위시한 심사위원단의 평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칸영화제 역사를 돌이켜보면 관객 및 평단의 평가가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 만큼 잦았다. 누구도 결과를 속단할 수 없는 이유다.
 
씨네만세 267회에선 <어 히든 라이프>로 생애 세 번째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테렌스 맬릭을 조명한다. 그는 지난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에서 <트리 오브 라이프>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현대 영화계의 거장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맬릭의 5번째 연출작으로, 그는 이후 7년 동안 5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으나 대부분 혹평을 면치 못했다.
 
11번째 연출작 <어 히든 라이프>가 올해 경쟁부문에 초청되기 전까지 적지 않은 영화팬이 '이제 맬릭은 끝났다'며 비아냥댔을 만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1943년생으로 76세의 노장인 맬릭이 과거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평범한 작품을 연거푸 내놓은 건 좀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영상미학의 극점 추구하는 '괴짜 철학자'
 

▲ 테렌스 맬릭<트리 오브 라이프> 촬영 당시 테렌스 맬릭.ⓒ SBS콘텐츠허브

 
 
평단에선 맬릭을 '영상철학자'란 있어 보이는 별명으로 부르길 즐긴다. 그가 영상을 찍고 편집해 활용하는 방식에서 깊은 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물론 하버드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오가며 철학을 전공했고 MIT에서 교수까지 한 그의 이력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일 테다. 1973년 데뷔작 <황무지>가 남다른 촬영과 편집으로 주목받았고, 5년 후 제작한 두 번째 영화 <천국의 나날들>이 그에 대한 평가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입증했으니 완전히 허황된 소리는 아니다.
 
1979년 칸영화제는 <천국의 나날들>을 경쟁부문에 초청했고, 감독상까지 안겼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시력을 잃어가고 있던 촬영감독 네스트로 알멘드로스에게도 평단의 극찬이 쏟아졌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영상철학자가 시력을 잃어가는 베테랑 촬영감독과 만나 극한의 아름다움을 포착했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해가 기울고 온 하늘이 다채로운 옷을 연달아 갈아입는 마법의 시간, 맬릭과 알멘드로스는 매일 그 짧은 시간동안 아름다운 밀밭을 자연광으로 담아냈다. 일명 '매직아워' 동안 찍어낸 <천국의 나날들> 속 야외 신들은 현대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명장면이 되었다.
 
맬릭은 유명인이 되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례로 그는 <천국의 나날들> 이후 20년 동안이나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영화계를 떠났는데 얼마나 완벽히 소식이 끊겼는지 그가 죽은 게 아니냐는 소문까지 있었을 정도다. 앞의 두 작품이 흥행에서 참패하긴 했으나 <천국의 나날들>이 칸에서 거둔 성과로 <황무지>까지 재조명받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실제로 여러 영화사가 맬릭에게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고, 폭스가 백지수표를 보내 당장 복귀하지 않아도 좋으니 차기작 제목이라도 적어달라고 요청한 건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그 덕분인지 20년 만에 복귀를 선택한 맬릭은 폭스와 손잡고 <씬 레드 라인>을 찍어, 폭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선사했다. <씬 레드 라인>이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것이다.
 
단 두 편의 영화로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고 거짓말처럼 20년 동안 자취를 감춘 명감독의 복귀는 말 그대로 화려했다. 숀 펜, 애드리언 브로디, 조지 클루니, 존 쿠삭, 우디 해럴슨, 닉 놀테, 존 트라볼타, 미키 루크 등 한두 명 캐스팅하기도 어려운 유명 배우들이 앞다퉈 출연을 원했고, 완성된 작품엔 북미 평론가를 중심으로 호평이 쏟아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유명 감독도 맬릭의 영상편집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복귀 이후에도 맬릭의 태도는 여전했다. 각종 GV와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트리 오브 라이프>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에는 아예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아 제작자가 대신 수상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맬릭은 2005년 작 <뉴 월드>부터 연달아 네 편의 영화를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함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루베즈키는 이냐리투의 <버드맨>과 <레버넌트> 촬영을 맡아 명성을 얻었는데, 맬릭이 그와 각별한 사이란 점은 이번 칸영화제 수상을 기대하게끔 하는 요소다. 지난 수년 간의 칸영화제 수상결과가 입증하듯 인맥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뿐더러, 같은 촬영감독을 기용한다는 건 추구하는 영상미학에 접점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맬릭은 세부적인 대본 없이 배우들에게 즉흥적인 연기를 자주 주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캐릭터와 상황만 정해주고 최대한 우연성을 담아내는 그의 연출방식은 때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가끔은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하는 성과도 올렸다. 이러한 연출법이 많은 배우에게 도전이 돼 매 작품마다 실력파 배우들이 줄지어 출연을 원하기도 한다.

신작 <어 히든 라이프>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하길 거부한 오스트리아 군인 프란츠 예거슈테터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유명 영화사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가 제작했다. <피아니스트>는 제55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화려했던 복귀 이후 지난 수년 간 졸작만 양산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맬릭의 칸 복귀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팬으로서 그의 칸 진출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시민기자의 팟캐스트(http://www.podbbang.com/ch/7703)에서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즐겨보세요.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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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진행 / 인스타 @bll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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