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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잃은 엄마, 그를 위해 돌고 돈 여정에 '뭉클'

[리뷰] 세월호 참사 5주기, 마음을 울린 영화 <생일>

19.04.20 19:25최종업데이트19.04.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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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오전, 대참사.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희생자만 304명, 희생자들 중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 학생들이 실종자 포함 250명이다. 모두 가족이 있었다. 가족 수를 생각하면, 그리고 친인척들, 친구들, 이웃들,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는 이 땅의 부모들을 생각한다면 살아도 살아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희생자 수는 수천 명을 헤아려도 모자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국회의원들이 세월호 추모 주기가 다가오자, '징글징글하다' 또는 '그만 좀 우려먹어라'라는 말로 세월호 유가족과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가운데, 정말 괜찮은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제목은 <생일>.
 
대참사 후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

정일 역으로 분한 설경구의 등장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의 아내, 순남과 어린 딸 예솔, 그리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 수호 이렇게 네 명의 가족이 대참사 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영화는 그리고 있다.

수호가 떠나가고 없는 일상이지만 엄마 순남은 살아간다. 그러던 중 베트남에서 파견근무를 하다가 소송에 휘말려 투옥됐던 정일이 5년 만에 귀국했다. 아내 순남과 딸 예솔의 주위를 겉도는 정일. 그를 대면조차 하기 싫은 순남, 그런 와중에도 아빠가 반가운 예솔. 한 가족이긴 하나 모두 함께 하기가 어렵다. 이가 잘 맞지 않지만 삐걱대며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처럼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마 순남은 아들 바보, 아들 수호는 순남의 수호천사였다. 아빠가 돈 벌러 타국 생활을 하는 동안, 또 그곳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힘겨운 법정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둘은 의지가 되어 딸 예솔과 함께 나름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의 참사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순남에게 수호천사 아들의 부재를 매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순남은 세상이 전처럼 돌아가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아들이 없는데도 아무일 없다는 듯 돌아가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어린 딸, 예솔의 어리광도 받아주지 못할 정도로 삶은 피폐해지고 말았다. 순남과 예솔은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숨만 쉬고 살아가는 중이다.
 

영화 <생일> 포스터ⓒ 정태승

 
그때 아빠이자 남편이 나타났다. 울타리가 되어줄 아빠가 나타난 것이다. 아들의 부재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아빠 정일은 등(燈)도 고치고 집안 여기저기 손을 보며 자신의 남루한 처지를 달래본다. 무엇보다 딸, 예솔이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준다. 닫힌 마음이긴 하지만 그래도 순남은 정일의 아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떠나간 아들을 따라가고 싶지만 순남은 살아야 했다. 또 하나의 자식, 어린 딸 예솔때문이다. 둘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된다. 하지만 너무 힘겹다. 영혼 깊이 상처 입은 엄마와 아직 너무 어린 딸은 위태로워 보인다. 관객이자 이웃인 우리는 극중 아빠의 등장으로 안심하게 된다.
 

5년 만에 재회한 정일과 순남은 그 사이 아들 수호를 잃었다.ⓒ 정태승

 
떠나간 아들의 생일이 다가온다. 생각지도 못했던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하지만 순남은 아들의 모든 것을 혼자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싶다. 굳이 남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든 이웃이든 심지어 남편과 딸에게 까지 화내며 그들이 제안하는 생일파티를 거절한다. 아들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참사 후 몇 개월, 몇 년이 흐르면서 하나 둘 자신의 주변을 떠나간 사람들, 언론보도, 기관들의 행태를 여태 봐온 후유증 때문이도 하겠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기는 쉽지만 듣기는 쉽지 않은 말이다. 죽은 사람과 너무 깊은 관계에 있거나 혹은 죽은 사람이 곧 나의 분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하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다시 들어주고 다시 공감해주는 반복적이고 복합적인 협력 말이다. 그래서 떠난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 가슴에 응어리가 남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영화의 구조도 이야기도 단순하다. 그런데 클라이맥스로 가는 이야기의 전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가까운 거리지만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먼 길을 택해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달해 적의 후미나 옆구리 방향을 뚫고 들어가는 공격조처럼 이야기의 화살은 수호의 생일날을 아주 멀리서 우회해 관객의 심장을 찾아 파고들고 있었다. 독 아니 정(情)이 온몸에 퍼져 전신이 훈훈해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성이 갸륵한 영화다. 인생은 그런 것이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일까.

수호가 떠나고 혼자 남은 엄마 순남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딸 예솔, 그리고 울타리가 되는 아빠의 등장, 그리고 살뜰한 이웃 우찬엄마, 시민단체 등이 순남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점점 크게 그리며 공동체라는 존재가 발휘하는 위력을 영화 속 이야기가 들려주고 있었다. 떠난 수호가 안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공동체가 제기능을 하는 사회라면 비극적 위기에 처한 개인도 살 수 있다ⓒ 정태승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속담에 딱 들어맞는 영화, <생일>을 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다같이 잘 살자"이다. 그러려면 선결되어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고 그 일들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과정이다. 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역사를 고스란히 함께 한다면 아프지만 그래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새내기 연기자 시절 간호사로 분해 한 의사를 짝사랑하며 가슴앓이 하던 전도연은, 떠난 아들을 가슴에 묻은 탈진하기 직전의 엄마가 되어 나타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눈엔 그녀의 연기가 연기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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