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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속박 벗어던진 '캡틴 마블'...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

[오늘날의 영화읽기] '낙태죄 위헌 판결'과 함께 다시 본 <캡틴 마블>

19.04.18 14:16최종업데이트19.04.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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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

석가모니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외쳤다는 말씀이죠. 처음에 들었을 땐, 석가모니가 꽤나 자아도취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죠. '모두에게 부처가 깃들어 있다'는 석가의 뜻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다'라는 서양의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말이예요. 나 자신의 존엄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어야만 '인간'이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함께 전해주는 말씀. 하지만,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네요.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나에게 너를 증명해봐."
"나는 당신에게 증명할 것이 없어."


지난 3월 영화 <캡틴 마블>(2019)이 개봉되었습니다. '일개' 인간이던 그녀가 자신에 대한 구속을 벗어던지자 히어로로 거듭난다는 설정의 영화라니, 다시 한 번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쟁쟁한 마블계의 수많은 영웅들 중 '최강'이거든요. 곧 있을 <어벤저스: 엔드게임>(2019)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타노스와의 일전에서 허무하게 질 수는 없잖아요.

기억을 잃고 크리라는 외계 행성에서 전사로 살아가던 '비어스'를 괴롭히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2500년 전 소크라테스의 질문이었어요. 자기 자신이 누군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문득문득 비집고 들어오는 기억의 파편은 그녀를 더욱더 위축되게 했죠. 불안한 그녀가 의지했던 대상은 자신의 피를 나눠 그녀를 구했다는, 스타 포스의 대장인 욘 로그였어요. 그녀의 불안을 통제하는 주문도 욘 로그를 통해서였죠.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너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

영화에서 비어스가 캐롤 댄버스로 살던 시대가 궁금했어요. 여자가 뭐든 하면 안 되는 때로 그려지거든요. 오빠처럼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고, 놀이공원에서 카트 조종을 하는 것만으로도 혼이 나던 소녀가, 전투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의 삶이 평탄해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1970년대쯤 되나 보다 싶었는데, 1995년이길래 놀랐어요. 비슷한 나이인 친구로서, 그녀가 옆에 있었다면 말렸을 거예요.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여자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려줬어야 하니까요. 

"자꾸 칭찬하지 마세요. 제가 쟤 기를 죽이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날이었어요. 회식에서 선배가 저에 대해 하는 말이었는데, 서글프더라고요. 작년에 10년 근속 휴가를 받았는데, 아직도 죽여야 할 기가 남아있긴 한가 봐요. 저는 이미 제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끝없이 의심하며, 숨'만' 쉬고 살고 있는데 말이죠. 그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는 이미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인 이유만으로 기가 죽어있어요.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남아있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선택권'이 이제서야 완성되었다는 자유는 소중합니다. 지구에서의 캐럴을 보면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동질감은, 여성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억압된 채 살아왔을 것이 분명한 현실 때문이었을 거예요. 물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여자에게만 억압적인 것은 아닐 거예요. 저는 단지, 여자에게 '더' 억압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캐롤이 전투기를 몰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더군요.
  
'너 같은 자식 필요 없어. 나가!'

완고한 우리네 가족제도 안의 식상한 클리셰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첨단의 기술을 가진 외계행성 크리에서조차, 남자인 그녀의 상관은 그녀를 계속 길들이려 하잖아요. 2019년 대한민국에서의 제가, 동료들 사이에서 여자'스럽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자연스러운 내 모습은 아니니까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느낌만으로도 숨이 찰 때가 있어요.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캡틴 마블>에서 가장 속이 시원했던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그녀가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속박을 벗어던진 후, 하늘로 포효하듯 튀어 오르던 장면이었어요. 오직 자기 자신만 남은 진정한 '유아독존'의 순간이죠. 저도 모든 구속을 벗어던지고 날아오르고 싶은데, 현실은 <회사 그만두는 법>(2019)이란 책을 읽으면서 '절대 먼저 사표를 던지지는 말자'라고 다짐하는 중이네요. 역시, 마블계 최강 전사는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겠죠? 지금은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만족하며 견뎌봐야겠습니다.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세상은 분명히 나아지는 중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캡틴 마블 여러분, 같이 힘내요. 혹시 알아요? 우주 최강은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 대한 속박만이라도 벗어던질 수 있을지. 아, 성별로 편가르지 말자고요? 물론이죠. 세상의 모든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같이 응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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