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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4월 16일'에서 도망친 내게 찾아온, 기적같은 순간

[오늘날의 영화읽기] <생일>이 던지는 치유의 메시지... 우린 여전히 아프다

19.04.12 13:41최종업데이트19.04.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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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는 덮어둔다고 아무는 것이 아니군요. 5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외면하고 피해봐도, 상처는 계속 아픔으로 다가오네요. 언젠가 그 날을 떠올려보아도, 다시 그 날의 슬픔을 기억하게 되겠지요? 우리, 제발, 세월호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창희


시간이 지나면 아픔은 무뎌진다고 했다. 어른들은 '세월이 약'이라며 지금을 견디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꽤나 오랜 시간을 견뎠음에도 과거 언젠가의 상처가 떠오를까 두려워,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갈 수 없는 공간이 여기저기 지뢰처럼 놓여있다. 상처를 마주하지 않고 피하기만 한 내 방법은, 분명히 실패다. 이렇게만 살아온 내가 세월호에 대해 취한 방법도 성공적일 리가 없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준 상처를 돌아보려 하지 않았고, 국가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폭력에 눈 감으려 했다. 짐작할 수조차 없는 그들의 아픔이, 혹시라도 내게 남겼을지도 모르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상처에도 힘들어했다. 

"왜 나오세요?"
"화가 나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요."


세월호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2015)의 상영관을 찾아 1시간도 넘게 운전하고 갔던 어느 날이었지만, 도저히 영화를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나쁜 대한민국은 말할 수 없이 잔인했고, 냉정했으며, 그들이 '조용히' 세상에서 잊히기를 원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면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또다시 도망친 내가 부끄러웠다. 그렇게 마음 속 깊이 부채감을 숨긴 채 5년의 세월이 흘렀다.

5년 전 일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른 미안함과 부끄러움
 

영화 < 생일 >의 한 장면.ⓒ (주)NEW

 
<생일>(2019)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직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여겼기에, 놀라움과 의아함이 먼저 의식을 밀고 들어왔다. 게다가 세월호로 아이를 잃은 가족의 이야기라니, 우리가 여전히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관련 기사를 읽을 때마다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도저히 극장에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 이런 영화를 벌써 만들어서, 내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몸을 움직여 극장에 앉을 때까지, 몇 번이나 예매와 취소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간신히 극장을 찾은 것은 다음날의 달리기 대회 출전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일찍 퇴근한 금요일 저녁이었다. 좋아하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몸을 의자에 묻고 앉아 있자니 꽤나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우셨다. 상영관의 화면은 아직 어두웠고 광고도 시작되지 않은 암흑이었지만,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발자국 소리는 묘한 위로가 되었다. 피하지 않고 아픔을 직시하려는 그들에게 기대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가고 개봉을 준비하는 예고편이 흘러간 후, 영화가 시작했다. 아들을 잃은 부모와 오빠를 잃은 동생의 일상이 흘러가는 화면은, 한순간도 안도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언제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엄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작은 여자아이의 마음이 위태로웠고, 가정의 불행 안에서 어쩔 줄 모르는 아빠의 위축된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마저 어느 것 하나 일상적이지 않았고 자연스러움과도 거리가 멀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그들에게 드러내는 다중적인 주변의 시선들은 불편했다. 

하지만 그 부자연스러운 시선과 태도가 바로 나였음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갑자기 영화관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객석의 우리들이 울기 시작했다. 손으로 닦아내던 눈물은 소매를 적시고, 한숨과 탄식은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영화 안의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가족들이 울지 않으려 기를 쓰는 동안, 웃음으로써 떠난 아이들을 진혼하는 동안, 극장 안의 우리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를 슬픔으로 울고 있었다. 꽤나 오랜만에 그들의 아픔을 직접 바라보고 있었다.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대로 아팠다.

다시 4월 16일이다
 

<생일> 스틸컷ⓒ (주)NEW


"나는 당신을 봅니다."

<아바타>(2009)에서 외계의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언어를 기억한다. 아들을 떠나보낸 죄책감에 누구에게도 너그러울 수 없는 엄마는, 아들을 기억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사랑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을 연다. 상처를 외면하며 무뎌졌다 믿었지만, 도리어 자신을 에워싸버린 가시로 주변에 상처를 주고 있었음을 알아챈다. 그제야 엄마는 어린 딸아이의 아픔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남편의 죄책감도 제대로 보인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에, 사랑은 그들을 치유하게 될 것이다.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울었다. 불이 켜지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객석 여기저기에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우리들이 있었다. 어쩌면, 5년 전 그날은 우리 모두에게 생각보다 큰 상처를 남겼나 보다.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여 나의 삶을 지켜냈다 믿었던 시간을 비참하게 견뎠음에도, 그날의 상처는 계속 내 마음을 할퀴고 있었던 모양이다. 용기를 내어 영화관을 찾은 후에야, 외면했던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보게 된다. 나에게도 <생일>은 치유의 시작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상처를 치유하겠다며 세월호를 피하려 했던 나의 선택은 실패였다. 5년의 세월이 흘렀고 아픔을 외면하려 애를 썼지만, 억지로 덮어둔 모포 아래로는 피가 멈춘 적이 없다. 71년 전 제주 4.3의 상처가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음을 이미 보지 않았나? 명확한 아픔이 현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흘러버려 용서마저 구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면,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억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해마다 4월이 되면, 방에 붙여둔 남빛의 포스터에 그들을 기억하는 추모의 리본이 하나씩 더해진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의 진실을 마주할 그 날을 기다린다. 다시, 4월 1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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