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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힙합이라 괜찮다? 에미넴도 비판받는 시대인데

[주장] 표현의 자유 중요하지만, 선 넘은 표현까지 면죄부 얻을 수는 없다

19.04.03 14:30최종업데이트19.04.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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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이 함께 부른 'Money Road'. 이 곡은 현재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간 상태다.ⓒ 앰비션뮤직

 
지난 3월 30일, 김효은의 노래 '머니 로드(Money Road)'가 발매와 함께 논란에 휩싸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효은의 가사가 아니라, 이 곡에 피쳐링한 브래디스트릿(BRADYSTREET)의 가사가 문제였다. 브래디스트릿은 지난해 더 콰이엇과 함께 작업하는 등, 힙합계에서 독특한 색깔을 뽐내고 있는 신예다.

함부로 사용될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문제의 구절은 "메갈X들 다 강간 / 난 부처님과 갱뱅"이라는 부분 등이었다. 이 가사로 인해 여성혐오, 그리고 종교 폄하적 표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4월 1일 앰비션뮤직 대표와 저작자 김효은을 상대로 항의 공문을 발송하고 강경대응 의사를 드러냈다. 현재 '머니 로드'라는 곡은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간 상황이다.

가사의 주인공인 브래디스트릿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과 입장을 밝혔다. 곡의 주인공인 김효은 역시 "미처 문제가 될 만한 가사를 검열하지 못한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메갈(리아)'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아마 브래디스트릿은 페미니스트 집단을 비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는 현재 사실상 사라졌고, '워마드'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나뉘어 흩어졌다. 그러나 '메갈'은 현재 페미니스트 집단을 정형화하는 단어, 혹은 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페미니즘이 성역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강간' 같은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쓰인다면 문제가 된다. 강간은 여성의 존엄을 짓밟는 파괴적 행위이자 범죄다. 실제 저지른 것이 아니라 묘사하고 할지라도,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합리화될 수 있는 유형의 표현이 아니다.

예술은 아티스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투영한다. 브래디스트릿이 강간 범죄에 대한 문제 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면, 문제의 가사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용한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를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만 했다. 이 가사에는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힙합에 존재했던 여성 폄하의 문법을 그대로 재생산해낸 수준에 멈춰 있을 뿐이다.
  

성희롱성 가사로 여성 가수를 모욕한 혐의를 받는 래퍼 블랙넛(김대웅)이 지난 2018년 3월 15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래퍼 블랙넛의 사례가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과거 블랙넛이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에서 키디비에 대한 성희롱적 가사를 써서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해당 랩의 가사가 문제로 지적된 후 몇 달 후 키디비는 '그런 가사는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한 프로그램에서 밝혔다. 하지만 1년 후 블랙넛은 다시 한 번 그녀를 '투 리얼'(Too Real)에서 조롱하듯 언급했다.

랩배틀의 맥락에서 나온 욕도 아니고, 강자에 대한 조롱도 아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모욕한 행위에 가까웠다. 실제로 지난 1월 10일, 재판부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헌법상 중요한 국민의 권리로서 두텁게 보호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제한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블랙넛에게 집행유예 유죄 판결을 내렸다. 블랙넛은 판결 이후에도 "앞으로도 더 솔직한 음악을 하고 싶고 힙합 음악 하시는 분들이 좀 더 자유로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넘어선 안되는 선', 더 공론화되어야 한다

힙합 음악이 재미있는 이유는, 틀에 갇히지 않는 표현 방식 때문일 것이다. 다른 요소도 중요하지만, 힙합은 가사가 주인공이 되는 장르다. 힙합 만큼 언어유희와 자기 고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많지 않다. 미국 래퍼를 정당화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이 있다. '미국 힙합에서는 랩 가사에서 어떤 얘기를 해도 용인된다'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표현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에미넴의 앨범 < Kamikaze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Put molly all in her champagne, she ain't even know it(마약을 그녀의 샴페인에 집어넣어, 그녀는 절대 알지 못하겠지)."
 
2013년, 메이벡 뮤직 그룹(Maybah Music Group)의 수장인 릭로스(Rick Ross)는 성폭행을 연상시키는 가사를 썼다가 엄청난 대중적 지탄을 받았다. 그 여파로 리복과의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 예정된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보스(Boss) 이미지로 군림해온 거물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쓴 랩 가사 때문에 "성폭행을 연상하게 만드는 가사를 쓴 것에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에미넴(Eminem)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를 디스(Diss)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단어인 'Faggot'을 사용했다가, 여러 매체와 LGBT 커뮤니티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커밍아웃한 바 있다). 이매진 드래곤스의 보컬 댄 레이놀즈는 '더 이상 Faggot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시대'라며 에미넴을 비판했다. 댄 레이놀즈의 말처럼 시대는 변했고, 넘어선 안 되는 선은 존재한다. 살아있는 전설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저스트뮤직과 인디고뮤직의 리더이자 래퍼 스윙스는 자신의 노래 '불도저'(2013)에서 "예술에 윤리라는 잣대를 들이댈 거면 넌 진보하지 말고 내 음악도 듣지 말고 닥치고 가서 집 정리나 해"라는 가사를 썼다. 아마 현재 한국 힙합씬은 이 가사에 동의하는 사람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는 언제든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예술 속 윤리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술 이전에 '사람'이 있다. 힙합, 더 나아가 예술은 결코 모든 것을 정당화시켜주는 마스터키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허용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은 앞으로도 더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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