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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주인공이 여성 구원, '악질경찰'서 반복된 '아저씨' 패턴

[리뷰] 영화 <악질경찰>, 이정범 감독의 자기복제와 한계

19.03.27 16:15최종업데이트19.03.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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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경찰>은 의외의 지점에서 화제가 된 영화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소환된 '세월호'의 기억 앞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영화는 국가 전체가 가라앉았던 그 사건을 스크린에 재현했고, 대중의 반응은 갈렸다.

세월호를 통해 뭔가를 말하려는 영화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거나, 반대로 너무 섣부른 선택이 아니었냐는 비판도 있었다. 분명, <악질경찰>은 이정범 감독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위로하고, 감싸 안는 시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의 마음은 일부에게 제대로 닿지 못했을까.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선, 흥행을 목적으로 한 상업 영화에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가능하지만, <악질경찰> 홀로 감당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모든 영화가 수익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과 아픔을 재현한 모든 영화는 이 비판 앞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이다.

다만, <악질경찰>이 '세월호'를 다룬 방식은 관객의 반감을 살 수는 있다. 이 영화는 세월호를 직접 언급한 영화임에도 이를 배경으로 밀어 버리고 소모해버린 느낌이 있다. 영화의 짙은 장르성과 오락성에 가려져 세월호 사건은 제대로 말해지지 않고 고민되지 않은 탓에, 피해자들이 존중받지 못한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악질경찰>은 굳이 그 사건을 끌어오지 않아도 성립하는 영화다.

이런 논란 외에 영화 내적으로는 <악질경찰>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악질경찰>은 이정범 감독의 세계 안에서 말해져야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아저씨> <우는 남자>의 연장선에 있는 범죄물로 이들과 함께 비교, 대조되어야 한다.

이 세 편의 영화에는 사회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는 남성이 있고, 동시에 사회가 외면하고 방관한 여성이 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별 관심 없던 남성 주인공만이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구원자가 된다. 세 편은 이 구도와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탄탄하게 조성된 누아르적 특성은 놀랍지만, 복제된 인물과 이야기는 전편보다 새로움과 즐거움을 줄 수 없었다. 아쉽게도 이정범 감독의 최고작은 여전히 <아저씨>이며, 원빈이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춘 시간만큼 그의 시간은 멈춰있는 듯하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번 영화가 앞의 영화와 다른 건 남성 주인공의 말이 많아졌다는 거다. 그 덕에 앞의 이정범 감독의 영화가 '액션'으로 포지셔닝 된 것과 달리, <악질경찰>은 '드라마'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찰진 대사를 소화해낸 이선균 덕에 이정범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변별점도 있었다. <악질경찰>은 이선균의 활약만큼 즐거웠고, 재미있던 영화로 그의 장악력은 이정범의 인장을 희미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래서 <악질경찰>은 이정범이 아닌, 이선균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이건 이정범 감독의 세계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 외적으로도 화제가 되었지만, 그의 영화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는 게 모든 문제의 시발점으로 보인다. 진짜 심각한 건, <아저씨>의 그 감독이 보여줬던 빛이 바랬다는 데 있다. 그의 영화는 그때 이후 점점 평이해졌고, 그의 팬으로서 그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평범해지기엔 너무도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정범 감독에게 자기복제의 벽, 그 방탄유리를 깰 총알이 아직 한 발 남아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영화 읽어주는 남자' 브런치, 네이버 포스트, 그리고 키노라이츠 매거진 등에 함께 게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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