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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털어놓으라.." 이 말에 새 연극이 탄생했다

[종로의 기록, 우리 동네 예술가] 극작가 겸 연출가 이시원 인터뷰 ②

19.03.25 15:47최종업데이트19.05.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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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인 종로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600여 년 동안 문화의 역사를 일궈온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며 예술을 펼쳐왔거나, 종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 시대의 예술인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단원들과 함께 한 식물 키우기 워크숍ⓒ 극단 명작옥수수밭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단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성장을 모토로 독서, 영어, 권투, 식물 키우기 등 다양한 스터디를 함께 하기로 유명하다.
  
"매년 신입단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스터디를 진행해왔는데 그들도 그런 배움에 많이 목말라했더라고요. 인문학 스터디도 그래서 시작했던 거예요. 어떤 책이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했죠. 그러다 한 단계 발전해서 한 책의 챕터를 나눠서 발제하는 걸로 진화했어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예요. 주제를 하나 주고, 자기가 살아온 이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적용해서 해보라고 하면,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돼요. 자신을 바로 알아야 다른 역할을 맡았을 때도 잘 연기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저는 항상 단원들에게 이 스터디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나를 알고 넘어서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말을 해요. 자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다 보면, 스스로의 트라우마나 상처들을 마주 대하는 시간이 오기 마련이거든요."


워크숍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은 최원종 작·연출로 완성된 <돈키호테 남극빙하>의 기본 뼈대가 됐다. 20대 배우들이 연극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2017년과 2018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는 문화복지 사업 '신나는 예술여행'에 선정되어 많은 학교의 학생들과 만났다. 

색다른 얼굴 찾기

 

극단 명작옥수수밭 단원들과 함께 하는 스터디 모습ⓒ 극단 명작옥수수밭

 
"공연 중 한 단원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지난 시절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공연 후 배우가 말하길, 눈물 흘리면서 다 털어놓고 나니까 외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면서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순간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그 장면을 보고 유독 '가족이 생각났다거나, 개인적으로 힘든 순간들이 떠올랐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이 작품은 얼핏 보면 배우가 그냥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같지만, 왜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배우가 되고 싶어 할까 생각하다 보면 학생 스스로도 '나는 꿈에 대해 저만큼 절실해본 적이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넌 도대체 뭘 하고 싶니?'라고 우회적으로 물어보는 작품이니까요."


공연이 끝나고 나서 연이어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은 학생들이 직접 공연을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들을 질문할 수 있어 특히 인기가 높다. 

"20대 배우들이 형, 오빠의 입장이 돼서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그게 청소년들에게는 진정한 인생 선배로서의 모습이 아닐까요? 청소년과의 공감대 형성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실제 배우들의 이야기라고 하니까 작품을 보고 나서 질문거리도 많아지죠. 배우들도 의도적으로 쓴소리를 하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만 하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솔직한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줘요. 어떨 때는 교과서적이지 않은 답변들이 학생들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찾는 여정에서 시작해 배우로서의 성장을 향한 도약을 끌어내는 워크숍을 진행함으로써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레퍼토리는 한층 더 탄탄해질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6기 단원들과는 '배우의 얼굴'이라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그들의 색다른 얼굴을 찾아주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배우들은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저와 대표님은 둘 다 작가니까 그 친구들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단원 중에 옥수수를 좋아하는 단원이 있거든요. 그만큼 옥수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 극단에도 그래서 들어오게 됐나보다 하고 농담할 정도로요. 그런 점들을 부각해 극적인 인물로 재탄생시키는 거죠. 그렇기에 새로운 캐릭터를 가진 배우들이 작품 속에 등장할 수 있게 돼요."

좋은 작품은 기억에 남는다

 

2019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연극 <헤비메탈 걸스>ⓒ 극단 명작옥수수밭

 
극단 명작옥수수밭은 2013·2014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에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는 <헤비메탈 걸스>가 2019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연극 부문에 선정되어 올해 재공연을 올릴 계획이다. 

"좋은 작품은 기억에 남으니까 또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연극 <좋은 하루>가 그런 작품이에요. 진솔한 연애 이야기인데 관객 호응도 좋았고, 저와 배우 모두 만족했던 작품이었거든요. 또 연극 <8월의 축제>도 다시 올리고 싶은 작품이에요.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연출해 봐도 좋은 작품이다 싶어서요. 그러다 보니 자꾸 하고 싶은 것들이 추가되네요."

극단 활동이 점점 더 활발해질수록 챙길 것들이 많지만, 극작가로서의 꿈을 접은 것은 결코 아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이가 생기면서 인생관이 조금 바뀌었거든요. 어떤 부분이라고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가 이 방향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작품 하나는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해 한국희곡에 '버킷리스트'에 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딸과 엄마로 이어지는, 내 인생의 무언가가 변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가인 이시원이 오롯이 뭔가 하나를 세우면, 그 곁가지에 있는 가족과 연극이 함께 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작품을 쓰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늘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그녀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녀의 가족과 극단의 단원, 관객들의 삶까지 모두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결과로 이어지리라 믿어본다.

 

연극 <8월의 축제>ⓒ 극단 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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