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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하' 이후 이정재-강동원 조합 나온다면? 행복한 기대

[넘버링 무비 131] 영화 <사바하> '선'과 '악'의 모호함, 그 경계에 대하여

19.02.27 11:32최종업데이트19.02.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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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 메인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장재현 감독이 자신의 첫 작품으로 <검은 사제들>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가 생각난다. 544만 명이라는 흥행 기록이 직접적으로 나타내듯 큰 사랑을 받았던 <검은 사제들>은 과거 유사 소재의 작품들과 다른 특별함이 엿보였다. 그 중에서도 <엑소시스트>(2001), <라스트 엑소시즘>(2010) 등의 작품들처럼 '호러' 혹은 '공포' 장르와 쉽게 연결되던 '엑소시즘'이라는 소재를 그 연결 고리에서 완전히 독립시켰다는 점과 다양한 종교의 위치를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점은 돋보이는 성과처럼 느껴졌다.

영화 <사바하>는 장재현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며,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 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사건을 마주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사건의 중심부로 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극의 서스펜스를 쌓아간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 간의 관계를 사슴동산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내며 작품 속에 흩어놓은 소재들의 접점을 마련하고, 이렇게 모인 요소들을 중후반부의 스토리 연출을 통해 풀어내는 것이다.

영화는 1999년 강원도 한 시골에서 쌍둥이 자매(이재인 분)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언니 '그것'은 동생인 금화의 다리를 물어 뜯어 피범벅이 된 채로, 동생 금화는 다리가 온전치 못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일반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태어난 언니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빛 한줌 들지 않는 광에 갇혀 괴물 취급을 당하고, 동생은 자신의 다리를 불구로 만든 언니 '그것'을 원망한다. 박 목사가 요셉(이다윗 분)과 함께 사슴동산이라는 신흥 종교를 조사하기 시작하게 되는 건 그로부터 16년 후의 일이다. 사슴동산을 조사하던 박 목사는 비슷한 시기 일어난 여중생의 죽음과 관련된 일과 이 종교의 어두운 면이 연관이 있을 것이라 직감하고 사건을 파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영화 <사바하>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02.

작품의 핵심은 '선(善)과 악(惡)의 모호함'에 있다. 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악이 될 수도 있으며, 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선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에 걸쳐 느껴진다. 이 작품이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단순히 영화적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이 부분에서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은 영화 <곡성>을 통해 선과 악의 대립 지점에 위치해 있는 모호함 그 자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고, 장재현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그 모호함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선과 악의 모호함이 두 가지 시점에 의해 각기 다른 의미로, 자의적 의미와 타의적 의미로 구분되어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을 가장한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이비 종교를 처단하기 위함이라고 하나 결국 마지막에는 후원 계좌를 늘어놓거나 종교계의 대표들을 찾아 판을 짜는 박목사는 말할 것도 없고, 신도들의 안녕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것처럼 보이는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 나한(박정민 분) 역시 결국에는 자신의 안녕을 위해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할 뿐이다. 자의적으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이다.

한편, 타의적 시선에 의해 선과 악의 경계에 서게 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세상에 태어나게 된 진짜 의미와는 달리 '어떤 외형적 가치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는가' 혹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등의 요소들에 의해 선과 악의 경계를 옮겨 다니게 된다. 이는 역시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활용되는 '살(煞)'과도 그 궤를 함께 한다. 이 작품 내의 요소들만 활용해 표현하자면,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이가 반드시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세상의 보편적인 모습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가 반드시 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존재인가에 대한 고찰이 함께 그려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03.

유사한 주제 의식과 어두운 분위기로 전작 <검은 사제들>과 많은 지점이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사건과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만큼은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긴장감과 속도감이 가득했던 <검은 사제들>은 그 기저에 최부제(강동원 분)라는 인물을 통한 전형적인 성장 영화의 틀이 구축되어 있었다. 반면 이 작품 <사바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은 작품의 중심에 위치하는 인물이 처음부터 최부제였다는 점을 의심할 수 없게 구조화되어 있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 약간의 의식적인 사명감을 갖고 있지 못했던 그가 일련의 과정들을 겪게 되면서 점차 눈을 떠 가는 시퀀스가 모습만 다를 뿐이지 최부제 사제의 성장 영화라고 부르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 부각되는 것은 인물의 성장이 아니라 '사건의 각 지점에서 인물들이 어떤 역할로 활용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인물은 커다란 사건의 해결을 위한 매개일 뿐, 전체 목적은 방대한 서사와 반전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작품에서 전면에 세워지지 않은 인물들이 큰 의미 없이 소비된다거나 던져진 단서들이 모두 갈무리 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셈이다. 그리고 모든 변화는 이 작품 <사바하>가 미스터리 극이라는 범주로 불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영화 <사바하>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04.

일반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둘 이상의 종교가 협력하거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장면 혹은 설정은 한 작품이나 하나의 이데올로기 내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난 작품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민간 신앙과 천주교, 불교의 위치를 동일선 상 위에 놓은 설정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기본적으로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담겨 있지만, 앞서 언급한 선과 악의 모호함을 표현하는데 있어 종교적 경계를 굳이 나누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이 혼란 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박 목사의 태도는 이 지점에 대한 감독의 진지한 성찰을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스타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장재현 감독은 박 목사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물이나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과 <사바하>의 세계관을 연결한 '크로스오버' 작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아니지만 인간과 신에 대한 화두를 작품으로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실제로 이 작품의 배경과 <검은 사제들>의 배경이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 많은 지점의 종교적 차용이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는 점 등이 장래에 대한 그의 발언에 힘을 싣고 있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지점의 문제는 오롯이 관객들의 몫이다. 다만, 이와 같은 장르의 작품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국내 시장에서 단발적 시도가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자신의 영역을 다져가려는 감독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행복한 기대를 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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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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