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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쿨'의 이재훈 만나러 갔다가 '흑역사' 만들고 온 사연

[기사공모-나를 미치게 만든 스타] 캠프 참가했다가 겪은 '웃픈' 일

19.02.22 16:43최종업데이트19.02.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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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먼 곳에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나는 수도권 대학교에 합격했을 당시 너무나도 기뻤다. 수도권, 나에게 그것은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었다.

그룹 '쿨'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가수였다. TV에서, 그것도 주말의 음악프로그램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던 그들은 항상 갈망의 대상이었다.

음악 방송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눈 앞에 두고 풍선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것, 팬미팅 가서 눈을 마주치고 사인을 받는 것 등은 카세트 테잎이 늘어지도록 앨범을 반복해서 들었음에도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쿨 팬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던 나, 이재훈 캠프에 가기까지

쿨 팬클럽 '아르코' 가입을 시도했을 때 회비보다 나에게 더 큰 벽으로 다가온 것은 당시에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되는 나의 나이였다. '왜 좀 더 일찍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알 수 없는 이유로 팬클럽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 후회를 반복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은 쿨의 앨범들 ⓒ 송지하

  
그런 내가 성인이 되다니, 게다가 서울에 살게 되다니. 그야말로 꿈만 같았다. 그러던 중 2007년 1월 31일에서 2월 1일로 넘어가는 날, 그러니까 입학식도 하기 전이라 상경하지도 않은 때였다. 쿨의 멤버 이재훈의 솔로 1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혼자 서울에 가는 것이 처음이었음에도 무작정 다녀왔다. 그 일이 있은 후 서울에서의 일상은 나에게 이상에 가까운 것이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입학 후 나의 생활 반경은 '학교-집-이재훈'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자취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다음 카페 '재훈 사모'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게시판을 달구었다.

<사랑의 리퀘스트> 방청에 당첨되어, 방송국 건물 뒤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가수 이재훈을 코앞에서 볼 기회도 있었다. 그때 굉장히 썰렁한 농담을 들었는데, 그마저도 광대가 당기도록 실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재훈사모'에 접속했는데 일생일대의 이벤트가 내 눈에 띄었다.

"이재훈과 함께하는 1박 2일 캠프"

믿을 수 없었다. '재훈사모' 정회원만의 단독 특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착순으로 신청받아서 이재훈과 1박 2일 안면도로 캠프를 떠나는 것이었다. 선발 인원은 90명.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단박에 신청했다.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기뻐 날뛰었다. 그러다가 그만 문에 새끼발가락을 찧었다. 내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가 기뻐서인지 아파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후 오매불망 캠프를 떠나는 날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시작된 레크리에이션 시간, 자기소개를 하다가...

고기를 직접 구워 배식해주는 재훈이 형의 모습. 다리를 다친 한 명을 제외한 열여섯 명의 남성 팬들이 네 명씩 팀을 짜서 족구 대결을 하는 모습, 그 모든 경기에 심판을 봐주던 재훈이 형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또한, 우리 형은 팬들과 함께 해변에서 맨발로 축구를 하기도 했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를 하며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사인을 해주고 악수하고 포옹도 해주었다. 나에게는 이름이 멋지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가수 이재훈(자료사진) ⓒ 이정민

 
그리고 다음날, 수많은 단체 엠티가 그러하듯 레크리에이션도 했다. 강당에 모두가 모여 앉아 있다가, 사회자가 제시한 조건에 맞춰 일어나서 자신을 소개하고 팬심을 뽐내는 시간이 있었다.

사회자의 진행은 자연스러웠고 모든 것이 즐거웠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소개할 때 '2학년 8반입니다'라든지 '저는 3학년 2반이에요'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는 사실이었다.

'8반이면 학교가 좀 큰가 보다. 근데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데 학교를 아직 다니시는 건가?'

나이가 스무 살 이하인 사람 일어나라는 사회자의 멘트를 듣고 일어섰다. 나와 같이 일어선 사람이 겨우 두 명이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아직 나는 내가 몇 학년 몇 반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점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어쨌든 말은 해야 할 것 같은데 3반이라고 하면 될까? 대학교에는 보통 반이 없고, 대학교 입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니 의무교육 최고학년인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반을 말해야 되는 걸까? 근데 왜 다들 2학년, 3학년이지?'

하필이면 당시는 대학교 입학하고 겨우 첫 학기가 지난 시점이었다. 우리 과는 다섯 개의 반으로 나뉘어있었고, 난 그중 C반 소속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내 차례가 되었다.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외쳤다.

"안녕하세요. 송지하입니다. 저는 1학년 3반이에요..."

나는 분명히 계속해서 말을 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수군거리는 소리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던 앞사람들의 커진 동공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1학년 3반은 열세 살을 뜻한다' 말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고, 내 낯빛은 급격하게 창백한 흰색에서 화끈한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그때를 떠올리면 두 개의 다른 감정이 뒤섞인 채 되살아난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와 코앞에서 이야기 나누던 순간의 환희와, 쓰나미처럼 순식간에 나를 덮친 민망함 말이다.

추억을 되새길 겸, 오랜만에 '재훈 사모'에 접속해보니 얼마 전에도 팬들과 함께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렇게 팬들과 소통이 활발한 재훈이 형, 그러나 아쉽게도 작년에는 새로 발표한 음원이 없었다. 올해는 디지털 싱글 한 곡은 그래도 내주시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가져본다. 여전히 당신의 목소리를 믿고 듣는 팬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난 2014년 11월 8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한 장면. ⓒ MBC

 
덧붙이는 글 '나를 미치게 만든 스타' 공모 기사입니다.
이재훈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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