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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논란' 박원순의 반성... 이게 끝이어선 안 된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담긴 의미

19.02.09 16:49최종업데이트19.02.0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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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중 한 장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을 언급하며 "더 좋은 시장이 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 박원순 서울시장 유튜브

 
"사실 저도 그거 보면서, 그 프로그램 찍으면서 굉장히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직원들한테 잘해준다고 했는데 그게 제대로 된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반성 가슴으로 많이 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반성"이란 표현을 거듭했다. 지난 8일 박원순 시장은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이러한 내용이 담긴 영상 반성문을 게재했다. 이날 온라인상에서 불거진 '꼰대 논란'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었다.
 
발단은 설 연휴였던 지난 5일과 6일 방영된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방송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보스들의 자발적 자아성찰 프로그램'을 표방한 이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은 1, 2회가 각각 6.6%, 8.1%(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고, 출연자 중 한 명이었던 박 시장의 활약(?)은 단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갑' 보스와 '을' 직원들이 출연한 프로그램

박 시장과 함께 이연복 셰프, 개그맨 김준호가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보스', 즉 갑의 위치일 수밖에 없는 출연자들과 '을'의 입장인 직원 혹은 후배들의 시선에서 보스의 일터와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 카메라 형식을 취했다. 박 시장 관련 분량에서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시장의 일정이 공개되는 와중에 수행을 맡은 김홍진 비서관과의 시선과 여타 서울시청 직원들과의 관계가 주로 방송을 탔다.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반면 김준호는 까마득한 KBS 개그맨 공채 후배인 김세진과의 관계가, 이연복은 아들이자 자신의 브랜드 음식점의 부산점을 맡고 있는 이홍운과의 관계가 주요 포인트였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스와 직원의 갑을 관계라고 볼 수 있는 출연자는 박원순 시장이 유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방송에서 그려진 박 시장의 태도가 단초가 됐지만, 정치인이자 1000만 시민의 리더라는 자리 역시 '꼰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최적화된 환경이었던 셈이다.
 
"특히 복지팀에 선미씨, 갑자기 제가 공개구혼 영상을 만들어서 너무 당황했죠? 그리고 홍진 팀장 미안해요. 그리고 우리 동준아, 다음에 크림 파스타 사줄게. 그 대신 아저씨는 빼고. 여러분 반갑고요.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저도 많이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더 좋은 시장이 되겠습니다."
 
박 시장은 영상에서 방송에 출연한 직원들을 직접 언급하며 "저도 많이 느꼈다"라고 재차 반성의 뜻을 비쳤다. 영상 말미 방송에 출연한 김홍진 비서관도 "직장 잘 다니고 있습니다"며 얼굴을 공개했다. 아마도 2회에서 방송 이후 김 비서관이 혹시 좌천되는 것 아니냐고 한 김준호의 농담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시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튜브 영상에 대해 "방송 후 시장 본인이 느낀 바를 직접 전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영상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자처한 박 시장은 꼰대 논란의 당사자가 됐고, 반성의 뜻까지 내비쳐야 했을까.
 
박원순 반성하게 만든 '꼰대' 지적, 그럴 만했다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어둠이 내린 새벽, 박원순 시장은 새벽 마라톤을 즐겼다. 그에 따라 수행 비서관인 김홍진 비서관의 출근 시간도 오전 5시 40분에 맞춰졌다. 거기서 끝이라면 공직자를 수행하는 공무원의 노고로 끝났을 터. 김 비서관은 박 시장과 함께 달리기에 동참해야 했고, 이 아침 운동은 아침 7시까지 이어졌다.
 
제작진은 이후 개인 인터뷰를 통해 김 비서관이 다리 통증을 앓고 있음을 알렸다. 2회에서는 박 시장과 식사 자리를 함께 한 아내의 입을 통해 과거 김 비서관이 무릎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박 시장이 연신 "얘기를 하지"라며 미안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온 셈이다.
 
이쯤 되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연출 의도가 명확해진다. 직원이나 후배의 시각에 서 본 갑을 관계의 재조명 혹은 폭로이자 그 역지사지를 통해 곤혹스럽고 민망한 자신의 맨얼굴을 목도해야 하는 '보스' 놀리기와 그를 통한 자아성찰.
 
평소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박 시장이었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의도치 않았더라도, 직원 입장에서는 충분히 도망치거나 거부하고 싶은 데도 거부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의도된 선의이거나 의도치 않은 선의에 의한 것이었어도 말이다. 사례가 아침 운동에서 그쳤다면, '꼰대 논란'까지 일진 않았을 것이다.
 
박 시장의 선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아침 운동과 연이은 일정으로 지친 김 비서관이 원했던 든든한 점심 메뉴와 달리 일정에 맞춰 본인과 같이 사찰음식을 먹자던 박 시장의 제안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흔한 점심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업무 뒷이야기와 상사 '뒷담화'를 늘어놓던 탕비실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화의 소통을 추구하려는 박 시장의 철학을 염두에 둔다면, 여기까지도 좋다.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하지만 박 시장은 미혼인 여성 직원에게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밀며 강제 '공개 구혼' 영상 촬영에 나서고, 급기야 흔치 않은 '칼퇴'를 앞두고 가족과 오붓하게 식사 약속을 잡은 김 비서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며 불청객을 자처한다. 물론, 메뉴조차도 김 비서관의 4살 아이가 원했던 크림 파스타가 아닌 박 시장이 원하는 중식 요리였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가족까지 같이 사주면 더 좋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라 해명했지만,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행자인 양세형, 김숙, 김수미는 질타와 야유를 퍼부었다. 박 시장에게 '꼰대 논란'이 일게 된 결정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오후 11시가 넘어 퇴근하고, 4살 아들과 놀아주지도 못한 채 허기도 채우지 못하는 김 비서관의 퇴근 후 일상까지 방송분량에 덧붙여졌다. 그러자 박 시장은 영락없이 '눈치 없고 일 많이 시키는 꼰대 보스' 이미지로 전락해 버렸다.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서울시장의 일상이 증명한 것들
 
"정말 좋은 리더가 되자는 게 대한민국 변화 프로젝트 아니에요? 내가 오늘 깨지긴 했지만 제가 좋은 모델이 돼 드렸네요."
 
방송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훈훈한 멘트로 마무리를 지으려했다. 이와 함께 김 비서관을 향해 "미안해 죽겠네"라며 안절부절 하던 모습도 전파를 탔다. 하지만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생각이 달랐던 듯하다. 박 시장의 지인들이라고 달랐을까. 박 시장은 "저한테 전화 오는 걸 보니까요,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이 프로그램을 많이 보신 모양이더라고요"라며 논란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로 '반성' 영상을 시작하기도 했다.
 
아마도 박 시장은 자신의 선의와 훈훈함, 소통을 강조하고자 출연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쉽게 행동할 수 있기에 리더와 보스의 자리가 더 어렵다는 진실을, 그로부터 파생되는 갑을 관계의 진면목을, 그리하여 직장 내 위계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폭로하는 주인공으로 박 시장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귀결은 앞서 언급한대로, 여타 출연자와의 현격한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김준호는 연예인이다. 위계와 서열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그래서 종종 질타를 받기도 하는 KBS 공채 개그맨이다. 웃음을 담보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지만, 제작진은 김준호의 분량을 갑을 관계라기보다 특수한 선후배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개그맨 선후배의 만남이나 김준호의 개인 방송 녹화 과정에서 드러난 김준호의 장난기나 후배 김세진의 고단함을 그리는 식으로.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이연복 셰프는 아예 부자관계다. 본점 사장과 부산점 팀장의 관계지만, 기본적으로 이연복의 분량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부각시켰다. 갑을 관계나 보스와 직원의 관계라기보다 엄격한 아버지와 그에 부응하고자 하는 늦깎이 중식 요리사의 애환이 뚝뚝 묻어나는 편집이 이어졌다.
 
SBS <미운오리새끼>와 MBC <전지적 참견 시점>과 유사한 형식의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분명 세 출연자를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했을 터. 박 시장은 그리하여 일반 시청자들이 직장에서 오늘도 겪고, 내일도 겪어야 하는 직장 내 갑을 관계의 적절한 모델로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전형적인 기성세대인 박 시장 역시 이러한 기대(?)에 적극 부응한 셈이다.
 
물론 박 시장이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꼰대는 아닐 수 있다. 소통을 자처하고 또 보기 드문 매너와 선의로 무장한 박 시장을 꼰대라 공격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본인 역시 억울할 수 있는 지점 또한 적지 않다. 더군다나 방송에서 공개된 짧은 영상 만으로 박 시장 개인을 '꼰대'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보여준 박 시장의 일상은 갑을 관계가, 직장 내 위계에서 오는 권력관계의 작동이 개인의 표면적인 인권 감수성이나 정치적 지향, 심지어 선의와도 무관함을 의도치 않게 증명한 꼴이 됐다.
 
대다수의 장면이 그랬다. 함께 조깅을 하는 것은 김 비서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함께 저녁을 먹은 것 역시 가족을 고려한 선의였다. 소통을 위한다고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박 시장을 피하기에 바빴다. 박 시장이 고려하지 못한 것은, 의도와 관계없이도 그저 갑과 을이란 관계 자체에서 오는 피로감과 거역할 수 없는 체계가 주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본인을 "원순씨"라고 부르라던 박 시장의 제스처에 양세형이나 김숙이 보였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보라. 개인의 선의가 종종 무시되는 것이 사회집단의 통념이자 관행 아니겠는가. 역지사지가 그래서 필요한 법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일조차도 어려운 것이 바로 보스와 직원이라는 절대적인 갑을 관계 아니겠는가. 위계가 주는 중압감이 그래서 무서운 것 아닌가.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박 시장의 "얘기를 하지"라는 말이 공허해지는 것은 그래서다. 시야를 확장한다면, 소위 '밥줄'이란 인사권을 쥔 보스 앞에서 "얘기"라 읽고 "의견 표명"이라 부를 행동들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을'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도 신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사장과 직원들이, 갑질 기업과 그 오너의 희생양들이,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력과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그 "얘기"를 할 수 있었다면, 한국사회에 그런 얘기를 마음 놓고 할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프로그램은 애초에 편성조차 어렵지 않았을까.
 
박 시장은 자신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모델이 돼 드렸다"고 말했다. 공감한다. 그래서 만약, 이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이 된다면 고정 출연을 고려하는 것이 어떤지 권유하는 바다. 박 시장의 말마따나 대한민국 변화 프로젝트를 표방한 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분명 갑을관계의 역지사지 프로그램으로서 그 어떤 '꼰대' 보고서보다 더 생생함을 사회에 전달해 줄 여지가 충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KBS 2TV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중 한 장면. ⓒ KBS

 
비록 시작은 '꼰대 논란'으로 점철됐지만, 박 시장의 변화 과정이 담긴다면 그보다 더 좋은 소통 창구·홍보 창구가 또 어디 있겠는가. 김준호나 이연복 쉐프와 달리 박 시장과 같이 일반 직장 내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출연자들의 비중이 높아져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소한 "일할 맛 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방송이라면,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함께 '당나귀 귀를 외칠 대나무 숲' 정도의 공감대는 형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원순 사장님귀는당나귀귀 서울시장 꼰대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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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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