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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과 한방 쓰게 된 백인의 행동... 이어진 의외의 결말

[리뷰] 영화 <그린 북> 인종에 대한 편견, 웃음 코드로 꼬집어

19.01.11 11:44최종업데이트19.01.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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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 북>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나이트클럽에서 잡일이나 시끄러운 일을 뒷정리하는 인물이다. 클럽 내부수리로 쉬게 된 어느 날, 지인이 알선해준 운전기사 모집에 지원하게 된 토니. 그와 피아니스트이자 박사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셜리는 8주 동안 미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음악 연주회에 참석해야 했고, 토니는 그의 발이 되는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언뜻 봐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장도에 오르게 된다.

셜리는 학식이 높고 교양을 갖춘, 이른바 배운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품격이 폭력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믿는 흑인이다. 반면 토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뭐든 자기 멋대로다. 성에 차지 않으면 주먹부터 나가는 다혈질에, 입담도 거칠기 짝이 없다. 허풍은 또 어떤가. 별명이 '떠버리'일 정도로 타인을 말로 현혹시키는 데는 귀재다. 물론 이 떠버리 기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까운 훗날 아주 요긴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토니는 평소 벌레보다 못한 상대로 취급하던 흑인 밑에서, 더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이질적인 사람과 함께 8주 동안의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가 1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의 여행, 과연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1960년대 지독했던 인종차별과 편견
 

영화 <그린 북>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영화 <그린 북>은 토니와 셜리 두 사람이 음악회 연주를 위해 미국 남부 지역 순회길에 오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허구이지만 오프닝을 통해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음을 밝히고 있다. 하늘이 내린 뮤지션이라는 극찬을 얻은 실존 인물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그의 운전기사이자 로드 매니저를 담당한 토니 발레롱가 두 남자의 실제 이야기가 영화의 바탕이다.

시간적 배경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편견은 지금보다 더 견고했다. 특히 피부색에는 더욱 그랬다. 영화 제목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의 '그린 북'이란 유색인종이 마음 놓고 묵을 수 있는 숙박업소를 안내해놓은 책자를 일컫는다. 음악회가 개최되는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흑인 셜리가 안전하게 숙소에 묵을 수 있도록 운전기사인 토니를 통해 이를 활용하게끔 배려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인종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이겨낸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히든 피겨스>도 지난 2017년 개봉해 많은 호평을 얻었다. 영화에는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탈 때도 흑인들은 뒷자리에만 앉아야 했고, 백인과는 화장실을 함께 이용할 수 없었으며,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혐의 없이도 경찰의 의심을 받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 <그린 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북부보다 남부에서의 차별 행위가 더욱 극심했다. 심지어 야간이 되면 유색인종은 아예 길을 나설 수 없는 통행금지령이 시행되는 곳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 및 차별은 잘못된 것이니 이를 고쳐야 한다는 식의 교과서적 메시지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에피소드를 통해 관객들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주인공인 토니와 셜리가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변화하는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이는 관객의 감정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이 영화의 매력은 진지한 주제를 결코 진지하지 않게 풀어낸,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지갑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은 토니... 그 장면의 함의
  

영화 <그린 북>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셜리는 워낙 많은 차별 속에서 살아온 터라 사실 주변의 대우에 대해 대체로 무덤덤한 편이다. 오히려 운전기사인 토니의 태도가 더욱 그를 거슬리게 한다. 토니는 유독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한 인물이라 말끝마다 셜리를 향해 '그쪽 사람들'이라는 표현으로 아예 선을 긋곤 한다. 토니는 셜리에게 고용된 사람이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자신은 애초 '너희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이 머릿 속에 강하게 각인돼있기 때문이었을까?

토니가 셜리, 아니 유색인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두 사람이 같은 숙소에 머무르게 됐을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평소였다면 각자 다른 숙소를 이용했을 테지만 우여곡절 끝에 같은 방을 쓰게 된 두 사람. 토니는 혼자 외출하려던 순간, 문득 탁자 위에 놓인 자신의 지갑을 슬쩍 주머니에 넣는다. '흑인은 모두 도둑놈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편견이 이러한 행위를 자연스럽게 유발한 것이리라.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지위의 차이도 엄연히 존재했으나, 그보다는 백인과 유색인종이라는 차이가 더 커보였다. 이 점은 두 사람이 어정쩡한 간극을 유지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도움을 주고받게 된 두 사람. 절대로 서로에게 스며들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 사이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유쾌하고 감동적이었던 '로드 무비'
 

영화 <그린 북> 스틸 컷ⓒ CGV아트하우스

  
꼴통스러우며 우악스럽고 뻔뻔하기까지 토니의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한 비고 모텐슨의 연기는 단연 최고다. 놀라울 정도로 섬세한 손놀림으로 피아노 건반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우리의 청각세포까지 즐겁게 해주던 마허샬라 알리의 연기도 물론 '엄지 척' 해주고 싶다.

이 두 사람의 조합이 결국 큰 일을 하나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지난 7일(한국 시각) 개최된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 등 총 3개 부문을 휩쓸며 3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로드 무비가 지닌 정서란 다름 아닌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을까? 함께 여행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내면이 성숙해지고,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영향을 및는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는 그런 것 말이다. 비록 두 사람과 직접적으로 함께할 수는 없었으나 영화를 통해 아주 유쾌한 즐거움, 그리고 뭉클한 감동까지 누릴 수 있었던 훌륭한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봉건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newday21.tistory.com/2221)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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