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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폭로' 심석희 선수의 용기가 헛되지 않기 위하여

[주장] 체육계 폭력 뿌리 뽑을 기회... 경기지도자 자격증 재검토 필요

19.01.09 12:14최종업데이트19.01.0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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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끔찍하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일이 또 발생했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22·한국체대)가 지난달 17일 자신을 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조재범 전 코치를 추가로 고소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가 2014년 여름부터 4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그동안 체육계 폭력 사태가 알려질 때마다 국민들은 충격을 받아왔다. 하지만 조 전 코치가 성폭력까지 자행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여론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재 경찰은 조 전 코치의 휴대폰과 태블릿 PC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문체부는 앞으로 성폭력 관련자들의 국내외 체육 단체 종사를 막고 이후 전수 조사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빙상계는 또 다시 '폭력으로 얼룩진 신화'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빙상계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그동안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던 코치들의 자격과 자질을 재검토하고, 더 이상은 경기력 향상을 이유로 한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코치 자격 및 자질 재검토 해야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지도자 채용공고 중 지원 자격과 관련 규정 부분ⓒ 대한빙상경기연맹


현재 대한빙상경기연맹(아래 빙상연맹)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지도자를 선발할 때마다 연맹 내부의 지도자 선발 규정을 기준으로 경기지도자 자격증, 그리고 일정 기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람만 감독직이나 코치직을 역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대표', '후보 선수 지도' 등의 경력이 있을 시 우대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수 출신 감독이나 코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9일 오전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일반 대학팀이나 실업팀들도 대표팀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빙상계 폭력 사태와 관련 "작년의 경우 대표팀이 소집되고 난 직후에 진행이 됐고, 올해는 지난 1일부터 각 시도연맹 등과 협의해 대표팀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팀을 대상으로 폭력실태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갈성렬 SBS 스피드스케이팅 해설위원 겸 의정부시청 감독은 "일반 실업팀 지도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경기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만 하며, 선수 경력 등을 토대로 서류와 면접 전형을 통해 채용된다"면서 "경기지도자 자격증은 한 번 자격을 획득하면 영구히 가는 것이고, 매년 빙상연맹에서 주관하는 심판강습회를 들어야만 한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를 통해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비롯해 각종 지도자 관련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피해를 본 선수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가장 시급해 보인다. 또한 매년 빙상연맹에서 주관하는 심판강습회를 들으면 영구히 지도자 자격증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평가를 진행해 지도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심석희는 그러고도 한번도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여자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를 폭행해 국가대표팀 코치에서 제명된 조재범 전 코치가 지난해 6월 18일 오전 경찰 조사를 위해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체육계에서는 코치가 선수를 폭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빙상계만 하더라도 이번 심석희 사태뿐만 아니라, 지난 2000년대 초반 대표팀 코치가 여자 대표팀 선수들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해 선수들이 태릉 선수촌을 이탈한 바 있다. 당시 대표팀으로 활동했던 변천사를 비롯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주민진 등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성폭력이란 초유의 사태에 빙상계도, 여론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심석희 선수가 이런 폭력들이 후배들에게 반복될까 우려돼 용기를 내 알렸다는 점이다. 심석희는 지난달 17일 조 전 코치의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면서 "앞으로 더 이상 스포츠계에서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빙상종목 대다수 선수들은 대개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를 신고 훈련을 한다. 피겨는 만 5~7세,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은 만 7~12세에 대부분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해 나간다.

지금도 빙상장에 가면 상당히 많은 꿈나무들이 심석희나 최민정, 김연아 등과 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가 되고자 끊임없이 얼음 위를 달리고 뛴다. 이런 꿈나무들 가운데 어른들의 잘못된 손길에 꿈을 빼앗기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심석희 선수가 처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2014년 여름부터 그는 다소 기량이 떨어지며 정체기를 맞았다. 또한 2016년 초에는 봉와직염 부상을 당해 그해 3월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2014년 이후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그는 꿈의 무대였던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고, 국내 선발전에서 항상 1위에 오르는 등 최강의 실력을 유지해 왔다. 피하고 숨고 싶었을 테지만 심석희는 오히려 용기를 냈다. 

어려운 선택을 한 심석희 선수의 용기에 제대로 보답하는 길은 체육계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들을 싹 다 걷어내는 방법 뿐이다.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크고 작은 폭력들을 뿌리 뽑고, 선수들이 본인의 목표만을 향해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줄 기회다. 그것이 심석희 선수의 용기를 헛되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준결승 진출하는 심석희쇼트트랙 심석희 선수가 지난해 2월 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1000미터 준준결승에서 준결승 진출을 확정하고 있다.ⓒ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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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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