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데뷔 6년 만에 털어놓은 설현의 고백, 응원하고 싶었다

[주장] 당당히 목소리 낸 정우성·김동완 그리고 설현... 이런 연예인 더 많아져야

18.12.31 20:50최종업데이트18.12.31 20:50
원고료로 응원
'사람들은 연예인이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라고 쓰고 보니 사실 한국에서는 정치,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긴 매번 특정한 이슈에 대해 말하면 기사화되고 논란이 되다 보니, 과연 누가 그렇게 민감한 주제에 대해 쉽사리 목소리를 내겠나 싶다.

그래서 올 한 해 배우 정우성의 활동은 빛났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사회의 여론이 반토막 날 정도로 민감한 사안으로 급부상해 버린 난민 문제에 대해 소신껏 발언하고, 유엔난민기구에서의 친선대사 활동도 지속적으로 해 왔기 때문이다. '민감한 문제에 관심 받으려고 숟가락 얹는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는 난민 문제 이전에도 세월호, 친일파 등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에 대해 발언했기 때문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정우성만큼 빛난 사람을 꼽으라면, 그룹 신화의 멤버인 김동완이 있지 않을까. 최근 그는 출연 중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공연이 끝난 퇴근길에서 팬들과 '스태프 과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한 팬은 이날 김동완의 말을 영상으로 담아 공개했다. "일이 바빠 잠을 못 잘 것 같은데 컨디션 관리 방법을 알려 달라"는 팬의 질문에 김동완은 "나는 잠 못 자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과로에 시달리는 스태프들의 현실을 지적했다.

살 만 하면서? 살 만 하니까!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 ⓒ 이정민

  
12월 30일 김동완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화제가 된 발언에 대해 길게 부연설명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문제의식이라고 했다. 

"밤샘 촬영은 주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노동 착취에 대한 문제입니다. 짧은 일정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올 때 누군가 밤을 새서라도 끝을 맺자고 종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의 위치인 사람이 제안하는 경우 스태프들은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고 이는 고된 밤샘 촬영으로 이어집니다. (중략) 특히, 이 같은 도구화가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계약 관계와 갑을 관계 속에서 비자발적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환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의식을 느낍니다."

'업무강도가 과도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김동완 혼자만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스태프의 처우까지 함께 생각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글은 계약 관계상 스태프들이 쉽게 거절하기 힘든, 과도한 노동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다. 해당 페이스북 글 역시 1천 개가 넘는 '좋아요'를 기록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연예인이 영향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스태프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연예계에 종사하는 당사자가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류의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늘 붙는 꼬리표가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돈 많고 살만 하지 않냐", "손해 보는 것도 없으니까 쉽게 말하는 것 아니냐" 등.

돌이켜보면 올 한 해 정우성이 난민 이슈에 대해 발언했을 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반응 중에 꼭 저런 말들이 있었더랬다. 종합해 보면 먹고 살만 한 연예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게 '위선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김동완은 장수하는 아이돌 그룹의 상징인 신화의 멤버고, 여전히 종횡무진 활동하는 연예인이다. '과로한 노동'을 거부하더라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동완이 페이스북 글에서 밝혔듯, 방송 스태프의 노동착취 문제는 스태프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문제다. 스태프 당사자는 불합리한 계약이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을'의 처지다. 그 노동현장에서 같이 일하는 연예인조차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면,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먹고 살만 하다'는 지적은 틀렸다. 그는 오히려 '먹고 살만 하니까' 자신만을 위해 문제를 외면할 수 있는 위치인데도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위해 앞장서서 나섰다. 목소리를 내려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스태프들에게 누가 이를 강요할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김동완을 보면서, '먹고 살만 한'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그 자리까지 오르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많은 스태프들의 숨겨진 노동에 대해 존중할 줄 아는 것이 동료의 역할일 것이다. 이것이 연예인이 영향력을 사용하는 가장 올바르고 선한 방법이 아닐까. 

말하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새해가 되길
 

그룹 AOA 멤버 설현. ⓒ 이정민

 
사실 연예인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자 시민이다. 김동완과 정우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소신발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발언과 행동을 어떻게 대했는가? 부끄러운 자화상을 간략하게 훑어보자. 10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 82년생 김지영 >이 영화화되고 배우 정유미가 주연을 맡는다는 소식에 일부 누리꾼들은 "정유미도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구나" "믿고 거르겠다"고 조롱했다.

"무슨 책을 감명 깊게 읽었냐"는 팬의 질문에 "< 82년생 김지영 >을 휴가 때 읽었다"고 답한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 역시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팬사이트에서는 아이린의 포토카드를 자르고 불태우면서 '탈덕' 선언을 하는 웃지 못할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을, 그리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여성 연예인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은 지난 12월 24일 공개된 남성 전문 패션 잡지인 < GQ코리아 >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연예인을 향한 시선이나 '악플', '성희롱' 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간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설현이기에 더욱 인상 깊은 인터뷰였다. '설현은 지지 않기로 했다. 편견, 두려움, 자기 자신에게도'라는 부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대중의 시선은 직업인으로서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들이 '넌 이런 건 별로야', '이게 예뻐' 하고 판단하는 걸 제가 자꾸 따라가게 되는 것만큼은 경계해요. 싫은 게 있다면, 깨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내 모습이 싫은 거죠."

(GQ: 동료와 후배들을 지키려는 거였군요.) "제가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어요. 데뷔 초에는 신체 일부분만 집요하게 확대한 '움짤'이라든지, 말할 수 없는 것도 되게 많았어요. 우리,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친구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겪고 있는 거예요. (중략)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을 거고,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낼 수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을 거예요."

대중의 판단에 항상 노출되는 것은 연예인의 숙명이다. 특히 여성 연예인은 사회의 남성중심적 시선에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설현은 늘 그 가운데서 연예계 활동을 해 왔다. 심지어 설현이 모 통신사 광고에서 취한 포즈까지 화제가 되면서, 예능이나 시상식 등지에서 이를 재현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 GQ코리아 >와의 인터뷰는 '개인 김설현'이자 '선배의 입장에서 그 길을 걸어본 연예인 설현'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태 설현에게서 듣기 힘들었던 말들이다.

연예인의 입을 막는 사회는 결국 소수자들의 입을 막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영향력을 활용해서 공론화할 수 있는 문제를 하지 못하게 막는 일에 다름 없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 현장을 접해본 목소리, 사회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 올해 김동완, 정우성과 설현이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는 좀 더 성실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페미니즘이건 난민 이슈이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조금씩. 2019년에는 그런 목소리가 더 잘 대우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김동완 #소신발언 #정우성 #연예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꾸준히 읽고 보고 쓰고 있습니다. 활동가이면서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