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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 김혜수를 보며 홍준표를 떠올린 이유

[리뷰] 국뽕영화 <국가부도의 날>, 단점도 많지만 울림도 크다

18.12.06 09:31최종업데이트18.12.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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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다룬 영화이다.
 
지금의 고등학생들에게 1997년의 외환위기는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일일 뿐이다. 현재 고등학생들은 모두 21세기 출신들이다. 즉,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 2가 아니라 3, 4로 시작하는 세대.
 
이들에게 1997년의 외환위기는 그로부터 약 20년 전 쯤에 발생했던 오일쇼크와 쌍으로 기억해야 할 경제위기일 따름이다. 한국경제발전사에서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 주었던 사건.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극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신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적 사건들일 뿐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실감은 잘 나지 않는, 무언가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어떤 느낌만 있는 사건. 어쩜 기성세대에게는 어린 시절에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배웠던 6.25 동란과도 같은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안시성> 포스터. ⓒ 영화사 수작

 
<안시성>과 <국가부도의 날>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
 
같은 '국뽕'이라도 21세기에 다루는 안시성과 20세기 개발도상국 시절에 배웠던 국난극복의 신화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이다. 정교한 CG와 스펙타클한 영화 장면들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과거의 역사에 자연스럽게 투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부도의 날>은 IMF로부터 처방 받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일련의 비판적 시각들을 대변하고 있다. 아마도 이 영화를 읽어내는 가장 큰 포인트는 거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증 시비, 즉 팩트 체크는 그런 측면에서 무의미하다.
 
20세기 히트작 <모래시계>에서는 제5공화국을 다루면서 강우석이라는 정의로운 검사 한 명을 내세웠다. 서사 구조를 이끌어가는 힘은 불의에 맞서는 검사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5공화국 시절 그런 멋진 검사는 없었다. 드라마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사람은 홍준표이다(송지나 작가는 홍준표 전 의원이 강우석 검사의 단독모델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국가부도의 날>에서 그 역할은 김혜수가 맡은 한국은행 한시현 팀장이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IMF 구제금융으로 가려는 재경원 관료와의 갈등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대립축이다. 한 팀장은 어떻게 해서든 IMF만은 막아보려 한다.
 
대중들에게 어필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IMF는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인데, 대중들에게는 그건 원인이었다. 어느 순간 평온하던 삶을 망쳐버린 모든 사건의 근원. 진행과정을 알지 못하였고, 어느 순간 정부는 그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삶은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눠졌다. 그러기에 그건 결과가 아니라 그 모든 파장의 원인일 뿐이고,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외환위기가 아닌 IMF 위기로 인식되는 그 지점을 말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제2기 혁신위원회 혁신안 발표에 참석해 인사말 하고 있다. ⓒ 남소연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홍준표와 김혜수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가 실존하지 않았듯이, 1997년 한국은행에 한 팀장과 같은 사람은 없었다. 한국은행과 재경원은 한 팀이었을 뿐, 실재의 역사에서 IMF행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을지 의문이다. 아직 개발독재의 힘이 남아 있던 시절이니 한국은행의 위상도 지금과 같지 않았다. 설사 일개 팀장의 힘이 그토록 셌다 하더라도 '반 신자유주의' 전사가 한국은행에 있었을 거란 상상은 개연성이 무척 떨어진다.
 
나의 몰입을 방해한 건 IMF를 환영하는 듯한 정부 관료의 태도였다. 누구도 역사의 심판대에 자기 이름을 걸어놓길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몰고 올 파장을 몰랐을 리 없다. IMF가 처방한 고금리 특효약과 구조조정은 효과는 즉방이었을지 몰라도 그 시절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엄청난 부작용을 안겨주었다. 후일 그 처방을 내린 IMF마저 그 고통을 인정하였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극적 장치로 모피아 세력에게 낙인을 찍는 장면만으로 영화적 허용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IMF 같은 위기가 한 번 더 와야 한국 경제를 수술할 수 있다는 발상은 그 세력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시선이기 때문이다. 1997년으로부터 삶이 망가진, 즉 자기가 팔아치운 아파트에서 목을 매 숨진 필부의 감성에만 공감할 수 있어도 그런 말이 새 나와선 안 될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사회 선생도 들은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내러티브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기억을 새삼스럽게 생각나게 한 것은 YS에 대한 일종의 조롱이랄까? 당시 후문에 의하면 비단 YS만이 아니라 정부 고위 관료 중에서도 IMF로부터 돈을 빌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물론 고시 패스한 고급 인력들이 모르기야 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전후무후만 사태가 몰고 올 파장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인가는 매우 의문이기도 하다.
 
최고권력자에게 보고하러 가는 순간. 정부 관료들이 어떻게 쉽게 설명할 것인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핵심을 찌르는 천박한 화법 대신에 그냥 어렵게 가기로 했다. 실제로 YS는 IMF로 간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다는 전언도 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알 수 없는 법. 난파선의 선장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감수해야 할 그의 몫이다.
 
그러나 영화는 YS에 대한 비난을 걸쳐놓기는 했으나 슬쩍 피해가고, 정부 관료를 정조준한다. 영화적 장치는 하버드 동문들에게 향하도록 만들어 놓는다. 아마도 하버드는 고유명사로서의 의미보다는 미국 유학파를 상징하는 단어로서 쓰였을 것이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유아인과 허준호

IMF를 역사로 기억하는 세대에게 크게 다가갈 인물은 유아인이 아닐까 싶다. 종금사에 다니면서 국가부도를 정확히 예견하고 인생을 한방에 거는 모습, 그리고 끝내 성공이란 타이틀을 집어내는 모습에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까?
 
다분히 유아인은 고리타분한 역사물에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가 될 것이다. 아주 개연성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환율이 3배가 뛰었다. 800원짜리 1달러가 2400원이 되면 3배 남는 장사가 된다. 그리고 그 돈으로 땡처리 되어 나오는 아파트를 사는 것으로 기본적인 돈벌이의 끝장을 보여준다.
 
필자가 가르치는 경제 수업 시간에는 유아인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희망을 잃고 집 팔아 이민을 떠나려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다.

5억 짜리 집을 팔고 달러로 바꿔 이민을 가려는 사람이 있었단다. 이민을 가려는데, IMF 외환 위기가 터졌단다. 환율이 3배로 올라서 그냥 그 돈을 다시 원화로 바꾸었더니 15억이 되었지. 그리고 그 15억으로 3억으로 떨어진 집을 다시 샀지. 다시 말해 원래 집에 그대로 살면서 현찰 12억이 생긴 거란다. 이것이 거꾸로 작용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날벼락이 떨어졌을지 상상이 가니?
  

영화 <국가부도의 날>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는 그 날벼락을 허준호가 맞는다.
 
아마도 중년의 세대는 유아인이 아닌 허준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것이다. 위기에서도 비빌 언덕이 있는 사람은 살아남았다. 허준호에게 비빌 언덕은 김혜수였다. 그렇게 김혜수는 목 놓아 울게 되고, 두 인물의 내러티브는 연결된다.
 
국가부도의 위기를 경고하며 ABS, 모라토리엄 등의 전문용어를 구사하면서도, 민중들의 고통을 막으려는 전사. 영화 장치로 설정된 영웅이다. 어려운 경제 용어에 IMF 총재 앞에서도 막힘없이 뿜어 나오는 영어 대사. 유아인이 천박한 영웅이라면 김혜수는 진정한 영웅이라는 새로운 대립적 술화 구조가 탄생한다.
 
영웅은 비현실적이기에 환상적이고, 우리의 심성을 자극한다. 김혜수의 연기력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칼을 들고 홀홀단신 전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과 실력을 무기로 지식의 칼날을 휘두른다. 칼이 아닌 돈으로 싸운 현대판 전장의 영웅은 이렇게 묘사된다.
 
고증이 아닌 팩트 체크
 
영화 리뷰를 쓰면서 '고증'이란 말 대신에 '팩트 체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20년 전의 일을 다룬 영화가 역사물이 아닌 사회물로 다뤄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1997년 환란은 오늘 우리들의 경제적 삶을 규정하고 있고, 그 위기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가져왔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그 위기가 가져온 나비의 날개짓의 결과물이다.
 
추억으로 되새기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고증의 대상이었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팩트 체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융영화로만 본다면 함량 미달이다.
 
'자본금 보다 대출을 더 많이 했다는 건가요?'라는 대사가 '경알'들에 의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은행은 자본금으로 대출을 하는 곳이 아니라, 남의 돈을 대출해서 먹고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금융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임진왜란 때 동인 서인 어쩌고 하는 대사가 더 짜증이 났다. 국난극복의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된 대사이지만, 뜬금포 작렬이었다.
 
보편성의 영화는 아니다.
 
사회교사로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역사물은 수업의 좋은 소재가 된다. 5.18을 다룰 때는 <택시운전사>가 도와주고, 6월 항쟁을 다룰 때는 영화 < 1987 >의 도움을 받는다. IMF 시절인 1997년이나 그로부터 10년 전인 1987년이나, 또 그로부터 7년 전인 1980년은 그냥 학생들에게 먼 과거일 뿐이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나오는 몇 가지 장면을 차용할 수 있을 뿐,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이야기하기에는 여러 가지 무리수가 있다. <택시운전사>나 < 1987 >은 실존인물이 소재가 되었지만, 김혜수가 맡은 한 팀장 역할은 완전한 가공의 인물이라는 면에서도 영화적 성격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 CJ 엔터테인먼트

 
실상 영화에서 설정하고 있는 IMF 신자유주의 개혁은 국민의 정부에서 충실히 이행되었다. 이른바 민주 정부가 모피아 관료에게 포획되었다는 논리, 나는 그런 논리에 수긍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가 대중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를 옹호해주고 싶다. 대중들이 구성해낸 지식 속에서 IMF는 그냥 그 무서운 사태를 상징하는 단어일 것이고, 재경원 관료와 재벌은 그 와중에도 살아남아서 권력을 장악하고 더 큰 돈을 벌었다고 생각될 뿐이다. 시비 걸까봐 이야기해두자면, 영화 속 정부 상황판에서 30대 기업들의 이름이 하나씩 지워져 나갈 때의 느낌은 그 어떤 전쟁 영화에서 나오는 전투 상황판보다도 무서웠다.
 
사소한 의미를 확장해 우리의 삶을 반추할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적 배급 시스템에서 신자유주의적 성공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영화다.
 
그래서 재밌게 봤다.
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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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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