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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의 낭군님' 속 사위와 장인, 실제 역사에도 있었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장인이 된 외조부, 임금 사위를 죽이려 하다

18.10.09 18:27최종업데이트18.10.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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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낭만적인 사극일 것 같다. 하지만 tvN <백일의 낭군님>은 제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분위기도 담고 있다. 장인이 딸의 불륜을 감추고자 세자 사위를 죽이려 한다는 스토리가 드라마에서 전개되고 있다.

왕실 사돈인 외척의 권력은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토대로 하므로, 장인이 권세를 유지하고 싶다면 어떤 경우에도 세자 사위를 죽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그런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장인인 좌의정 김차언(조성하 분)이 세자 사위인 이율(도경수 분)을 죽이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딸인 세자빈 김소혜(한소희 분)가 다른 남성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다. 거기다, 김차언 자신이 왕을 능가하는 권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세자 사위가 없어지더라도 권력 유지에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사위를 죽이려 시도했고, 미수로 그친 뒤에도 계속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칼 겨눈 사위와 장인, 실제 역사에도 있었다
 

김차언(조성하 분).ⓒ tvN

  
장인과 사위 간의 유혈 투쟁은 보통 사람들의 정서와는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흔하게 발견된다. 드라마 속 상황과 매우 흡사한 사례가 12세기 고려 왕조 때 있었다.

이자겸(?~1126년)과 고려 인종이 장인과 사위가 되어 <백일의 낭군님>과 유사한 상황에 놓였다. 이자겸은 본래 인종의 외할아버지다. 인종의 어머니, 순덕왕후 이씨가 이자겸의 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려 건국 104년째인 1122년, 인종이 아버지 예종을 이어 13세 나이로 왕이 된 것을 계기로, 인종과 이자겸의 친족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이자겸이 외할아버지에서 장인으로 '둔갑'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어린 왕이 즉위하면 왕실 여성이 태후 자격으로 섭정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한 인물이 없었다. 순덕왕후도 4년 전 세상을 떠나고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의 보호자가 없는 이런 상황을 활용해, 이자겸은 외척 지위를 내세워 정국을 장악했다. 뒤이어 관료집단 리더인 한안인을 역모죄를 몰아 숙청했다. 인종의 숙부인 왕보도 함께 엮어 유배를 보냈다. <고려사> 인종세가(인종 편)을 기초로 할 때, 이자겸 권력의 공고화는 적어도 1123년 연초까지는 구축됐다. 이때부터 그는 <백일의 낭군님> 속 김차언과 비슷한 위치를 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겸이 벌인 일이 외손자와의 관계 재설정이다. 외손자를 사위로 '격상'시키는 일이었다. 셋째와 넷째 딸을 인종한테 보냈던 것이다. 인종의 이모였던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인종의 어머니는 이자겸의 둘째 딸이었다. 

두 딸 외손자에 시집 보낸 이자겸 

이자겸의 셋째·넷째 딸은 인종의 비(妃)가 됐다. 이를 근거로 시중의 역사책들은 두 여성이 인종의 정실부인이 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조선 왕조는 군주의 정실부인을 후(后)로도 부르고 비(妃)로도 불렀다. 이 중에서 비(妃)는 원래 후궁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조선 왕조는 중국을 상대할 때는 자국 임금의 정실부인을 妃라고 칭했다. 중국과의 사대 관계를 고려한 조치였다.

하지만 고려왕조 때는 중국의 눈치를 볼 일이 적었기 때문에 군주의 아내를 후(后)라고만 불렀고, 후궁은 비(妃)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인종의 비(妃)가 된 두 여성은 정식 왕후가 아니라 후궁이었다.

이자겸은 외손자와의 결혼 동맹을 성사시키는 한편, 군부 실력자인 척준경과도 동맹을 맺었다. 척준경과 완전히 같은 편은 아니었지만 군부 실력자와 제휴를 맺었으니, 이자겸의 위상이 하늘을 나는 새를 떨어트릴 정도가 아니라 그 하늘 자체를 떨어트릴 정도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게 과언이 아니라는 점은 잠시 뒤 설명될 것이다.
 

왕세자 이율(도경수 분).ⓒ tvN

 
외할아버지가 장인이 되면서, 더욱더 허수아비가 된 인종은 적개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그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자겸을 몰아내고자 친위 쿠데타까지 단행했다. 자기편 무장들을 동원해 이자겸을 공격한 것이다. 이때가 1126년, 인종의 나이 17세 때였다.

하지만 아직은 이자겸이 죽을 때가 아니었다. 친위 쿠데타는 실패했고, 궁궐이 불타는 불상사까지 생겼다(이자겸의 난). 극도로 위축된 인종은 목숨이라도 부지하고자 왕권을 이자겸에게 넘기려 했다. 정권을 이양한다는 조서까지 전달했다. '하늘'이 스스로 이자겸에 대한 양위를 결정할 정도였으니, 그의 권세가 하늘을 떨어트릴 정도였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만약 이때 왕권이 넘어갔다면, 고려 왕조는 108년 만에 '폐업신고'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자겸이 이씨 왕조의 건국 시조로 기록됐을 것이다. <고려사절요> 인종 편에 따르면, 이자겸은 인종의 제안을 거절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육촌 동생 이수(李壽)가 공개 석상에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라며 호통을 쳐대는 데다가, 이자겸 자신도 중신들의 반응을 우려했기 때문에 결국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세자빈 김소혜(한소희 분).ⓒ tvN

 
위에서, 장인이 사위를 죽이려 한 <백일의 낭군님> 속의 상황이 인종·이자겸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포기했던 왕권을 되돌려 받자, 인종한테는 묘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예전엔 외조부였다가 지금은 장인이 되어 있는 저 원수를 이참에 들이받자고 결심했다. 친위 쿠데타를 또다시 마음에 품은 것이다.

그렇지만 단독으로 벌일 수는 없었다. 이자겸과 척준경의 동맹부터 깨야 했다. 그래서 척준경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이자겸은 신의가 없으니 그가 하자는 대로 해서는 안 된다"며 분열 공작을 개시했다. 군부를 장악했지만 이자겸보다 위상이 낮은 척준경의 경쟁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자겸도 파악했다. 그래서 벌인 일이 <백일의 낭군님> 속 김차언처럼 사위를 암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뜻밖의 변수로 암살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아버지 이자겸 대신 남편 인종 택한 폐비 이씨  

<고려사> '폐비 이씨 열전'에 따르면, 이자겸은 인종에게 떡을 선물했다. 독이 든 떡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아비를 위해 살 줄 알았던 넷째 딸이 아비를 배신한 것이다.

내막을 알고 있었던 넷째 딸은 인종에게 사실을 귀띔해줬다. 그러자 인종은 떡을 까마귀에게 던졌다. 까마귀는 더 이상 까악까악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넷째 딸이 인종을 정말로 남편으로 생각하리라고는 이자겸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인종이 까마귀한테 떡을 던진 이유를 알지 못했던 이자겸은 제2차 암살 작전에 착수했다. 넷째 딸이 배신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그 딸에게 약사발을 보냈다. 독이 들었으니 인종한테 먹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딸은 약사발을 들고 인종에게 다가가다가 일부러 넘어졌다. 이자겸의 사위 암살 시도는 그렇게 '엎질러지고' 말았다.

화가 난 이자겸은 수하의 병사들을 동원해 궁궐을 침범했지만, 뜻밖에 나타난 척준경 군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딸의 배신을 알고 화가 난 직후에 동맹자 척준경의 배신까지 알게 됐던 것이다.

결국 이자겸은 유배를 갔다가 숨을 거뒀고, 인종은 왕의 권위를 회복했다. 넷째 딸은 셋째 딸과 함께 폐위됐지만, 인종한테 후대를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넷째 딸의 이야기는 위에 언급한 '폐비 이씨 열전'에 나온다. <백일의 낭군님>과 거의 유사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인종의 승리, 이자겸의 죽음, 두 妃의 폐위로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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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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