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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우 뭐지? '명당' 관객 사로잡은 압도적 연기, 박충선

[인터뷰] 영화 <명당> 신스틸러, 지관 정만인 역의 배우 박충선

18.10.04 10:54최종업데이트18.10.0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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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당>에서 배우 박충선은 이야기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지관 정만인을 연기했다. 얼굴 한쪽의 흉터 또한 인상적이다.ⓒ 이정민


추석 대작 중 하나로 상영 중인 영화 <명당>은 사극의 탈을 쓴 하나의 풍자 영화로 볼 수도 있다. 조선시대가 배경이지만 그 안에서 땅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막기 위해 분투하는 캐릭터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왕실을 능멸하는 세도정치 가문에 맞선 지관 박재상(조승우) 반대편엔 마찬가지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채 은둔하며 지내는 정만인이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로, 때론 수상한 웃음소리로 상대를 꿰뚫어 보는 정만인의 옷을 배우 박충선이 입고 있었다. 지난 1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사람 좋은 미소와 선한 인상의 그가 강렬한 정 지관을 표현했기에 그 해석이 우선 궁금했다.

직업 아닌 사람 자체에 집중

사극이기에 대부분이 실존 인물이다. 정만인 역시 야사를 통해 알려진 인물. 흥선대원군이 아버지의 묘를 가야사를 태운 뒤 마련했는데 그 터를 바로 정만인이 귀띔했다는 설이 있다. 박충선은 "꼭 하고 싶은 역할이었다"며 "출연 결정이 난 뒤 가장 집중했던 건 바로 정만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었다"고 운을 뗐다. 

"영화에선 설명되지 않지만 스스로는 이 인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집중했다. 그래야 왜 정만인을 연기하고 있는지 당위성을 부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워낙 정적인 사람이잖나. 어떤 상황이나 말에 대한 반응이 없고, 얼굴도 가리고 다닌다. 과거에 여성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고, 청나라 유학도 다녀왔으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 봤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기 손안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너희가 날고 뛰어봐야 탐욕에 사로잡힐 것'이라 보는 것이다.

액션 없이 말로 연기하는 캐릭터라 눈빛과 목소리에 집중했다. 상대방과 눈싸움 하는 거는 얕은 수니까 눈을 보는 게 아닌 눈 속을 보는 시선을 가지려 했다. 또 여러 영화를 돌려보며 많은 웃음소리를 연습했다. 집에서 하도 웃음소리를 연습하니 중3짜리 아들이 대체 무슨 역을 맡아서 그러시냐고 궁금해하더라(웃음). 

굳이 선악을 나누자면 악한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전 악역이 아니라고 봤다. 그런 대사가 있잖나. '내가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이가 나올 것이다'라고. 남들의 욕망은 잘 읽었지만 정작 본인의 것은 몰랐던 게지. 능력자지만 그것을 잘못 쓴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사람은 다 똑같아. 어차피 돈을 원하잖아?' 요즘 말로 하면 이런 생각이 내면화돼 있는 사람이지."


이런 이유로 정작 풍수지리 자체를 공부하기보다는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의 삶 자체를 파고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육관 손석우 등 유명 지관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박충선은 지관들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썼다. 결론은? "땅을 보는 재주가 있을 뿐, 사람인 건 다 똑같다"였다.
    

"액션 없이 말로 연기하는 캐릭터라 눈빛과 목소리에 집중했다. 상대방과 눈싸움 하는 거는 얕은수니까 눈을 보는 게 아닌 눈 속을 보는 시선을 가지려 했다."ⓒ 이정민


정만인의 의미

그는 역할 준비 과정 설명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박충선은 "역할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꼭 하고 싶은 배역이었다"며 "이런 작품 통해서 배역이 다양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속생각을 전했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제 이름을 모르지만, 얼굴을 보면 아신다고 하신다. 화면으로 사람을 인식하니까. <명당>처럼 신선하면서도 재해석도 담긴 작품을 만나면 행복하지. 참여해서 어떤 맛을 낼 기회가 되면 무슨 맛이든 내고 싶다. 일상에선 제 안의 다양한 모습을 다 꺼내지 못하잖나. 작품을 통해 하나씩 연결시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라 보는데 그게 바로 제가 연기를 계속 하게 하는 동력인 것 같다. 

야구로 치면 타자가 타석에서 안타를 칠 때도 삼진을 당할 때도 있는데, 어쨌든 타석에 항상 서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현장에 그만큼 있고 싶다는 뜻이다. 덕아웃에 앉아만 있다가 언제 (감독이) 불러주나 기다리는 게 참 힘든 시간이거든. 스스로는 뭔가 능력을 갖고 있어서 유세도 떠는 그런 캐릭터를 하고 싶긴 했다. 배우는 어쩔 수 없다. 현장에서 놀아야지. 히치콕이 그랬다. 화면이 답이라고."


이 지점에서 박충선은 함께 호흡을 맞춘 조승우, 지성 등을 두고 "선배 같은 배우"라 말했다. 구력만 놓고 보면 박충선이 훨씬 선배격이지만 그는 동료 배우들을 두고 "다들 현장에서 어른들이었다"고 표현했다.  

"제가 나이가 그들보다 많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다들 조율도 잘하고, 잘 섞이고 그랬다. 예전 어떤 현장들은 속칭 원톱, 투톱 배우들이 서로 기 싸움도 하고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 배우들이 절 끼워줘서 같이 어울리고 좋은 기운도 많이 받았다. 영화 마치고 배우들이 이렇게 보고 싶은 게 처음이다(웃음)."
   

"야구로 치면 타자가 타석에서 안타를 칠 때도, 삼진을 당할 때도 있는데 어쨌든 타석에 항상 서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 이정민


특별한 내공

30년 넘는 경력임에도 그는 겸손한 미소로 온화하게 주변을 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연기를 대하는 자세마저 유한 건 아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다 전역 후 다시 연극영화과를 택했을 그 이십 대 중반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내면이 가득 차 있었다. 우연히 경험한 연극 무대 이후 "정말로 연기를 내가 좋아하는지 공연 한 번만 더해보고 고민해보자"며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왔다.  

"연기를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한번 해보자고 작정하고 극단에 들어갔다. 그땐 아르바이트를 하나도 안 했다.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빌리기도 했다. 연애도 못 했지(웃음). 아르바이트 할 시간에 책 하나 더 보고, 연습 한 번 더하려 했다. 그땐 연기 외엔 내 삶은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는 성역이었다. 돌아보면 너무 건방진 생각을 했나 싶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니 서른이 넘었고, 극단에선 안 받아주더라. 나이 많은 사람이 부담스러운 거지. 그래서 이 극단 저 극단을 떠돌았다. 개인적으론 훌륭한 연기 스승을 못 만난 게 아쉽다." 

무대 외에 영상 매체에서 연기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던 그가 어느새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영화 <꿈의 나라>(1989)를 시작으로 영상 매체에 매력을 느낀 그는 <영원한 제국>(1995), 드라마 <꼭지> 등을 거치며 서서히 저변을 넓혀 왔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여러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그는 "유준상 배우와 했던 <로니를 찾아서>, <혈의 누>, <소수 의견> 현장이 기억에 남는다"고 잠시 회상했다. "흥행이나 관객 수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과정 자체가 즐거운 현장이 좋다"며 변함없는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명당>이 흥행면에서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그의 입장에선 정만인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캐릭터였고 현장이었다. "이 인터뷰를 끝으로 정만인을 보내려 한다. 가슴 한쪽에 잘 간직하겠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일단 주변 사람들이 좋게 봐줬고,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셨다. 이번 작품처럼 개봉 후가 궁금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제 아내도 엉덩이 두들기면서 다음에도 이런 작품으로 잘 해보자고 격려해줬다. 아들도 절 안아주면서 '아빠가 애쓴 만큼 나온 것 같다'고 하더라(웃음)."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해온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보일 게 많이 있다는 뜻. 그의 이후 모습이 사뭇 궁금해진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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