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옥상 강제진압 충격" '쌍용차 사태', 알려지지 않는 뒷얘기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516] 배주환 MBC 기자

18.09.21 14:51최종업데이트18.09.21 15:01
원고료주기
 

<탐사기확 스트래이트>의 한 장면ⓒ MBC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탐사 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지난 2일과 16일 2회에 걸쳐 쌍용차 사태를 다룬 '쌍용차 30명 죽음의 배후' 편을 방송했다. 2009년 일어난 '쌍용차 사태'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 중 하나다.
 
<스트레이트>가 입수해 보도한 '회사 진입작전 계획'에 따르면, '쌍용차 사태'는 단순 노사 문제가 아니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 국정원, 국군기무사 심지어 청와대까지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일개 자동차 회사 노조를 말살시킬 계획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9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쌍용차를 취재한 배주환 MBC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스트레이트> '쌍용차 30명 죽음의 배후'를 취재하셨어요. 2편이 방송되었는데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저희가 두 달 정도 취재했거든요. 2부 방송이 나가기 직전까지는 사실 솔직히 빨리 끝나길 바랐어요. 힘든 과정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방송이 나가고 나니까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고요."
 
- 어떤 게 아쉬웠나요.
"쌍용차 사태 배후를 여럿 취재하고 보여드렸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더 알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아직도 의문이 남는 부분이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취재한 걸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쌍용차 해고자분들의 목소리를 좀 더 많이 담고 싶었는데, 시간 제약이 있다 보니 충분히 담지 못한 거 같아요. 그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저희가 인터뷰했던 분 중에서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 분들이 많았고 저도 감동을 받은 부분 많았는데 그걸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아요."
 
2009년 쌍용차 사측이 만든 노조대응문건

- 지난 14일 쌍용차가 해고자 전원 복직 결정을 내렸잖아요. 취재 과정에 들어서 남달랐을 거 같아요.
"저희도 이미 쌍용차 노동자분들에게 감정이입도 되고 취재도 깊숙이 되어서, 거의 쌍용차가 저희 회사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그렇게 쌍용차만 보고 있었으니까 제 일처럼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축하 전화도 드렸어요. 너무 기쁘긴 했지만 남겨진 과제가 있어서 한편으로 마냥 기뻐할 수만 없고 복잡한 감정이었던 거 같아요."
 
- 쌍용차 사태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취재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저희가 최근 쌍용차 사측이 2009년에 만들었던 노조 대응 문건을 입수했어요. 처음엔 노조 파괴 측면으로 접근했어요. 동시에 경찰청에서 인권사건 진상규명 위원회가 운영되었는데 거기 쌍용차 사건도 들어가 있었어요. 9년이 지났지만 새롭게 뭔가가 드러나는 시점이었거든요. 그래서 쌍용차 관련해서도 저희가 새롭게 발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취재하게 됐죠. 실제 취재하다 보니 지난 9년 동안 아예 알려지지 않았거나 혹은 알려지기는 했지만,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어요. 이건 충분히 저희가 방송에서 다룰 수 있겠단 생각에 취재를 계속했죠."
 
- 쌍용차 취재하러 처음 갔을 때 어땠어요?
"사실 저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제가 2010년 12월에 MBC 입사했으니 2009년은 제가 기자가 되기 전이거든요. 경찰의 강제 진압이 있었고 수많은 해고자가 나와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는 정도의 사실만 알았지 그 진압이 얼마나 부당했고 강제진압 전에도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등의 부분은 몰랐어요. 취재를 하다 보니까 제가 몰랐던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쌍용차 해고자분들에게는 죄송했어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9년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인근에서 점거 파업중인 쌍용차 노조원에게 물 전달을 요구하며 행진하다가 한 시민이 경찰들에게 강제연행되고 있다.ⓒ 유성호

 
- 가장 충격적인 건 뭐였어요?
"가장 충격적인 건 옥상에서 강제 진압할 당시 상황이었어요. 국민 중에는 조합원들이 떼를 쓰고 경찰을 새총 같은 것으로 공격하는 등 저항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찰이 (강제진압을) 선택했다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고 경찰 심지어 사 측, 청와대까지죠. 몇 백 명의 노동자들이 막아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힘이 쌍용차를 덮었다는 거예요. 제가 만약 쌍용차 조합원이었다면 두려웠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다들 강성노조나 폭력 노조라는 식으로 자신들을 비판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죠.

그런 과정을 보니까 서른 분이나 돌아가신 게 조금은 이해되더라고요. 그전까지 저는 '왜 이렇게 많은 분이 돌아가셨을까'라는 잘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아무리 강력 진압해도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게 쉬운 건 아닌데 왜 서른 분이나 내던지나 했죠.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니까 이게 얼마나 강력한 트라우마로 이분들에게 남았는지 알게 됐고 (그분들이) 철저하게 사회에서 외면 받은 과정이 보이더라고요."
 
- 당시 언론 보도 또한 문제가 있지 않았나요.
"당시 (언론들이) 노조를 떼쓰는 사람들로 만들었죠. 회사가 어려운데 너희가 떼쓰며 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만 보도됐고 노조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회사를 살리기 위해 어떤 제안을 했는지는 잘 다뤄지지 않았죠. 물론 잘 다룬 언론도 있었으나 그게 보편적이지는 않았고 일부에 그쳤기 때문에 그걸 받아들이는 시민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퇴직금 담보로 신차를 개발하고 심지어 비정규직 고용안정 기금도 대고 이런 부분을 저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 정도 노력하고 자기들이 연봉을 깎겠다고 하면 고용 유지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 노조는 공장을 지키려고 하는데 사측이 단전 단수까지 감행한 게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사측의 목적은 공장을 지키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물론 공장을 다 파괴하는 건 아니지만 공장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더라도 노조원들을 쫓아내는 게 우선이라 이게 회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노조원이 공장 지키기 위해 엄청 많은 노력 하셨거든요."
 
"해고자들, 감정이 많이 무뎌진 상태... 자동차 사랑 여전"
 

배주환 MBC 기자ⓒ 이영광


 - 쌍용차 사태에 경찰은 물론 국정원, 국군 기무사 등이 동원됐잖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유는 저도 궁금해요.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이해 안 돼서 당시 쌍용차 관련한 분들에게 이 질문을 거의 빠짐없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분들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다만, 추측하기로는 당시 뭔가 본보기가 필요했던 거 같다고 해요. 무슨 말이냐면, 당시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흐름이 있었고 구조조정 한다고 하면 노조 있는 사업장에서는 당연히 반발이 나오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너희가 구조조정을 반대하면 이렇게 돼'라는 본보기를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거죠. 즉 다른 사업장에도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사실 이렇게 강제 진압해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 MB에게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맥쿼리가 여기서도 등장해요.
"마인드라로 넘어갈 때 맥쿼리가 등장하는데 당시 이명박 정부 때였고 맥쿼리 특혜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또 맥쿼리인가'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맥쿼리가 매각 주관사로 참여하며 가져간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는 않아요. 그렇기는 한데 당시 채권단이 우리나라 국책은행단이었고 그 은행들이 다시 마인드라로 팔 때 맥쿼리를 통해 판 건 수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죠."
 
- 방송을 보면 경찰인데 '김 사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나와요.

"김 사장이란 사람은 당시 노사 분규 현장마다 나타난 이에요. 그리고 사측을 대리해 교섭을 진행하기도 하고 청와대에 들어갔다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해요. 저희가 확보한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도 김 사장이 전화 한 통 하니 쌍용차 사장 역할 하던 법정관리인이 바로 나왔다는 거예요. 상당히 사측에도 영향력이 있고 경찰 내부에서도 그렇다고 들었어요."
 
- 일각에선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동 비서관 때문에 그럴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김 사장이 그렇게까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 이영호 전 비서관 덕은 아닌 것 같고 김 사장은 그 전 20년 동안 노동 관련해서 정보가로 활동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 비서관 때문에 부각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워낙 정부 입장에서는 일 잘했기 때문에 그걸 활용했던 거 같아요."
 
- 해고자 많이 만나셨을 것 같은데.
"사실 이분들도 9년이 지나니 감정이 많이 무뎌진 상태더라고요. 저희가 생각하듯 가슴 아프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덤덤하게 얘기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얼마나 회사를 사랑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걸 사랑하는지는 잘 느껴지더라고요. 인터뷰를 위해 제가 제 차로 모시러 간 적이 있었어요. 이분들이 차에 타시더니 차 내부 등에 대해서 토론하는 등 차 얘기를 계속하시더라고요. 이분들은 차를 정말 좋아하는 거죠. 해고 당시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데 아직까지 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게 느껴졌어요. 이분들이 차를 안 만들면 어떤 사람이 차를 만들 것인가라는 느낌이죠."
 
- 방송에 보니까 주진우 기자가 복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죠?
"복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이분들에겐 다른 과제가 또 있어요. 명예회복과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건이 걸려 있어요. (노조원들이) 새총을 쏴서 헬기가 어떻게 됐다며 경찰이 10억 넘는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어요. 경찰청인권침해조사위원회에서는 손배 철회하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듣기로는 경찰 내부에 반발이 있어서 철회를 못 하고 있다고 해요. 확실하진 않아요. 물론 경찰 내부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불법 파업에 정당한 공무를 집행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 자산이 파손됐으니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진압 자체가 부당했다는 게 밝혀진 현시점에서 그렇게 접근했어야 했나 하는 부분도 있어요."
 
"쌍용차 노동자들 명예, 회복시켜 주고 싶었다"

- 방송에 못 담은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 당시 쌍용차가 구조조정을 할 만한 상황이었나'예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회계 부정이나 유동성 위기 과장이 있는데 방송에서는 길게 다루지는 않았죠. 시청자들이 느끼시기에 매우 복잡하고 재밌는 내용이 아니라서 많이 간추렸어요. 그러나 취재 분량은 많아요. 왜냐면 복잡한 내용이다 보니 자료도 많이 보고 공부도 해야 했어요. 그리고 해고자분들 인터뷰했는데 못 담은 부분도 있었죠.
 
아쉬운 건 이영호 전 비서관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건 확인 했는데 만나지 못했어요. 저희가 이 비서관을 만나려고 노력했는데 만나기 쉽지 않더라고요. 온갖 노력을 다했거든요. 그런데 못 만났어요. 1부 방송 나가고 이 비서관에게 연락 오지 않을까란 기대도 했었는데 안 오더라고요. 만나게 되면 묻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요."
 
-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제가 최종적으로 시청자에게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쌍용차 조합원분들은 지극히 평범한 가장들이고 평범한 시민, 노동자였지 폭도거나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거예요. 일부 국민은 아직도 쌍용차라면 돌이나 화염병 던지고 새총 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시거든요. 이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이분들이 새총을 쏘거나 저항한 건 맞지만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한 건 아니거든요. 그것으로 이분들을 다 표현할 수는 없거든요. 그걸 알려줘서 이분들 이미지가 달라지길 바랐어요.
 
방송 나가기 전에 경찰의 강제 진압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잖아요. 인터넷 댓글을 보니 너무 처참하더라고요. 그땐 경찰이 잘한 거라는 식의 의견이 주류더라고요. 사실 충격적이었거든요. 이분들에 대한 오해가 많아서 오해를 풀어드리고 싶었어요. 복직되는 건 당연히 바라는 바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건 기본인데 그걸 넘어 더 중요한 건 이분들 명예회복이 아닐까 하는 거죠."
 
-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사실 제가 취재한 결과물을 가지고 외부 매체와 인터뷰 하는 건 처음이에요. 수많은 죽음을 다뤄야 했고 국가기관, 사측, 법원 등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취재라서 제가 이제까지 했던 어떤 취재보다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어찌 됐든 저희가 취재하고 방송하는 과정에서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저희 취재 덕분은 아니지만, 보람도 있었고 기억에 많이 남는 취재가 될 거 같아요. 앞으로 이런 취재 많이 해야죠(웃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A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