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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정유미 향한 비난, 노회찬의 당부 떠올라

[하성태의 사이드뷰] 고 노회찬 의원은 왜 남성들 향해 메시지를 남겼나

18.09.13 15:18최종업데이트18.09.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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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의원이 <82년생 김지영>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며 남긴 글.ⓒ 노회찬 페이스북

 
"82년생 김지영을 안아 주십시오."

작년 5월, 고 노회찬 정의당 전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며 이런 당부를 남겼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당을 포함해 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 오찬 겸 회동에 초청했고, 노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 82년생 김지영 >을, 김정숙 여사에게 고 황현산 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를 선물했다며 위와 같은 추천사를 남겼다. 그해 2월엔 이런 글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남겼다.

"올해 세 권의 소설을 읽는다면 『82년생 김지영』, 이 책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좀 더 인간다운 사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강추!"

2016년 10월 출간된 < 82년생 김지영 >은 1982년에 태어난 동명의 여성 주인공이 한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오며 온 몸으로 겪은 성차별의 역사를 그려내 많은 공감을 얻어낸 소설이다.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서른 넷 전업주부 김지영이 겪어낸 일상의 차별과 사회 구조적 불평등이 현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고발해 호평을 얻었다.

그해 7월 조남주 작가는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 선정됐고, 그해 10월엔 < 82년생 김지영 >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같은 해 8월 민음사도 '제4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 82년생 김지영 >을 선정했다. 같은 달 한 문학학교 자리에서 노 전 원내대표를 만난 조남주 작가는 "평범한 여성은 이렇게 살고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고, 노 전 원내대표는 "책을 읽은 남성들도 여성과 똑같이 느끼게 된다면 이런 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화답했다. 

출간 9개월 만에 20만부를 돌파한 이 소설은 지금까지 100만 부 가까운 누적 판매 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화 소식이 알려진 것은 작년 6월이었다. 1979년생, 1984년생 여성이 공동대표로 있는 신생영화사의 창립작이란 소식이었다. 그런데, 12일 주연배우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후 < 82년생 김지영 >은 다시금 논란에 섰다. 아주 불필요한 논란에.

< 82년생 김지영 > 캐스팅된 정유미를 향한 비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캐스팅된 배우 정유미.ⓒ 매니지먼트숲

 
"정유미는 이번 작품에서 나와 내 주변 누구라도 대입시킬 수 있을 만큼 평범하지만, 또 한편 결코 평범하다 치부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인물 김지영을 연기한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랑 받으며 어떤 인물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매력적인 컬러링을 해온 배우이기에 이번 작품 또한 많은 관심과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중략).

< 82년생 김지영 >의 연출은 '결혼 후, 꿈을 접었던 30대 여배우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자유연기>로 2018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경쟁부문 작품상, 2018년 미장센 단편 영화제 관객상, '비정성시'부문 최우수상, 연기상 등 올해 각종 영화제를 휩쓸며 가장 뜨거운 신인 감독으로 떠오른 김도영 감독이 맡는다. 배우 정유미를 타이틀 롤로 확정한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은 내년 상반기 크랭크인 예정이다."


위와 같이 제작사인 봄바람영화사가 낸 보도자료는 평이했다. 그런데, 정유미의 소셜 미디어에 악플이 쏟아졌다. 노골적인 비난부터 "믿고 거른다"는 댓글까지, 캐스팅 자체로 이런 비난까지 받아야하는지 의아할 만한 반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미비한 청원 숫자이지만,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를 막아주세요>란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미 소설 자체가 페미니즘과 미투 사건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을 상기한다면, 정유미를 향한 비난 역시 그러한 연장선상인 듯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19살이 되는 남학생입니다"라는 청원글을 보자.

"사실 이 청원의 제목자체가 실현되는 건 힘들고 자유국가인 대한민국의 기본권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청원이 동의를 많이 받아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하네요.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소설의 문학성은 논할 바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소설이 담고 있는 특정성별과 사회적 위치에서 바라보는 왜곡된 사회에 대한 가치관은 보편화되서는 안 되는 지나치게 주관적인 시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를 스크린에 올린다는 건 분명 현재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인 성 평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성 갈등을 조장하기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의 영화화는 다시 한 번 재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봅니다." 


남성들을 향한 노회찬의 추천사

안타깝다 못해 딱하기까지 하다. 그저 본인을 19살 남학생이라 밝힌 청원인의 나이나 성별 때문만은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페미니즘과 성평등, 성차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기본권에도 어긋난다고 표현한다. 문학성 역시 논외 대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왜곡된 가치관이 보편화돼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터넷 상의 용어로 바꿔 말하면, '잘 모르겠고, 이건 그냥 안 돼'나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 스크린화를 반대한다. 성 평등에 어긋난다거나 사회적으로 '성' 갈등을 조장한다고 한다.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적인 시각이요, 한때 인터넷 상에서 유행했던 '이퀄주의'와 엇비슷한 주장이다.

'레드벨벳' 아이린이나 'AOA' 설현을 향한 비난도 똑같았다. < 82년생 김지영 >을 방송에서 추천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비난을 일삼았던 '팬(이라 자처했던 이)들'이 그랬다. 그런 예는 수두룩하다. 'Girls can do anything'과 같은 문구,  비단 '페미니즘'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뉘앙스를 연상케 하는 그 무엇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일군의 무리들.  

"더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하나하나 팩트를 따지고 보면 모르지 않은 사실인데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낀다는 것이 달랐습니다. 제가 실제 김지영씨의 처지가 됐다고 상상하니 온몸이 쭈뼛쭈뼛 서더라고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심연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조남주·노회찬 "82년생 김지영은 운좋은 사람"> 2017년 8월 30일 머니투데이 기사 중에서)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는 < 82년생 김지영 >을 두고 "남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설명했다. < 82년생 김지영 >과 관련,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에 대해 이른바 '당사자성'을 가질 수 없는 남성들이 왜 읽어야 하는지를 역설하는 측면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의 영화화에, 정유미의 캐스팅에, 그리고 걸그룹들에게 쏟아진 비난에는 "그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심연의 문제"를 "알기 싫다"는 거부가 포함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은 소설, 영화, 걸그룹 소비자라는 입장을 강조한다. 여기엔 "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젠 소비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액션' 의지가 포함돼 있다.

뿌리 깊은 성 차별, 여성혐오의 현재형이라 할 만하다. 100만 부 가량 팔린 소설의 영화화가 이 정도다. 하물며 소설을 읽은 것 만으로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여성 연예인들을 향한 시선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제작자의 좋은 기획력이 중요해지길 바란다. 특히 남성 제작자가 훨씬 많은 데다 또래 여성 제작자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의미 있는 작품인 < 82년생 김지영 >을 하게 됐으니 잘 만들어야겠다는 즐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작년 6월 영화전문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제작자들은 이런 바람을 전했다. 여성 제작자, 여성 감독, 그리고 여성 주연 배우가 뭉친 이 영화가 순조롭게 제작되고, 또 순주롭게 개봉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고 노회찬 원내대표 역시 이 작품의 영화화 소식을 반겼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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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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