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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새벽 법원서 벌어진 은밀한 작업, 경악스럽다

[TV리뷰] MBC < PD수첩 > '양승태의 부당거래'

18.07.11 18:46최종업데이트18.07.1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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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양승태의 부당거래'의 한 장면.ⓒ MBC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2017년 9월 22일 퇴임하면서 남김 '퇴임사'의 일부다. 10일 밤 방송된 MBC < PD수첩 > '양승태의 부당거래'편을 통해 그의 퇴임사를 다시 접하며,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그가 퇴임하면서까지 강하게 언급한 '사법부의 독립'이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다.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를 받지 않고 상고법원을 두고 거래할 정도의 힘을 가졌으니 '독립'이라는 건지, 민심이나 법의 기준도 없이 대법원의 의도대로 판결할 수 있는 걸 '독립'이라는 건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건 그의 행적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썼다는 점이다.

< PD수첩 >을 보는 내내 자괴감이 들었다. 대체 지난 정부에서 국민이란 어떤 존재였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대통령은 눈을 부릅뜨고 '성장을 위한 희생'을 강요했고, 경찰과 검찰은 좌우를 갈라 국민 됨됨이를 판단했고, 국회는 꿇어앉아 호소하는 민심을 외면했다.

여기에 사법부조차 이익에 따라 판결을 거래했으니, '국민은 개돼지'라는 조롱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혼자만의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자괴감은 치유할 수 있지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이 무겁다.

거액의 손배소에도 꿋꿋했던 남자, 그러나

지난 6월 27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차 사태 이후 9년 동안 29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는 서른 번째 희생자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알려진 삶의 이력은 처절하다. 2009년 7천명 중 2600명이 해고를 당했는데, 그는 이 명단에 포함돼 있어 파업에 참가한다. 하지만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겪고 결국 회사에서 쫓겨난다.

이후 김씨는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시달리고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배달과 미장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그에게 2014년 2월 7일 쌍용차 해고 무효 판결은 구세주였고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버렸다. 이후 대법원은 대외비 문건에서 이 결정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한' 증거라고 기록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만 안 당했어도 다들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겠죠. 지금쯤 열심히 직장 다니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고인이 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 동료의 말이 아니더라도 고등법원의 판결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우리 역사에서 '사법의 흑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첫 번째로 언급되는 건 '인혁당 사건'이다. 또 사복경찰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강경대 열사의 죽음을 우리는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라고 한다.

그럼 김주중씨의 죽음은 오롯이 자살일까? 대법원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재판거래'로 국민의 삶의 동아줄을 무참히 끊어버렸다. '재판 거래'가 사실임이 버젓이 드러난 이 상황에서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부르는 건 모순이다. 이것은 사법 살인이자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양승태의 부당거래'의 한 장면.ⓒ MBC


이런 죽음이 비단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게 비극이다. 해고된 KTX 여승무원도 지난 2015년 3월 16일 어린 아이를 남겨두고 목숨을 끊었다. 1심과 2심에서 연이어 승소하자 미뤄온 월급을 받으며 직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그녀는 2015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패소 취지의 판결을 받은 뒤 한순간에 1억이 넘는 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로 전락했다.

해고 노동자의 '삶의 동아줄'을 대법원이 끊은 것이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 대해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라는 기록을 남겼다. 유신 정권의 비위를 맞춘 인혁당 사형 판결과 박근혜 정권과 부당한 거래로 많은 이들을 벼랑으로 내몬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 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찾기 어렵다.

이날 방송에 나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과거 판결도 눈길을 끌었다. 과거 그가 내린 간첩 사건 관련 6건의 판결 중 5건이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됐다. 1986년 오재선 사건도 재심을 진행 중이다. 또 제2민청학련 사건을 비롯해 긴급조치 사건 등 12건에 대해서도 모두 훗날 위헌 판결이 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 다른 판사들에 비해 유독 공안사건 많이 맡았으나 대부분이 재심이나 위헌 판결로 번복된 셈이다. 훗날 바뀐 판결들의 면면을 볼 때 그는 승승장구할 인물이 아니라 일찌감치 퇴출됐어야 할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는 법원행정처장, 대법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쳐 2011년 대법원장에 오른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고 박근혜 정권에서 사법부 수장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공보다는 허물로 얼룩진 임기였다. 일선 판사들을 분류해 감시하고 부당하게 재판에 개입했다.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정권과 사법부의 독립을 거래했다. 하지만 이 모든 책임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무능력한 판결에 대한 책임은 그의 몫이지만, 추악한 '재판 거래'의 공범자는 한둘이 아니다.

취재기자 피해 달리는 전 법원행정처 차장... 웃프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양승태의 부당거래'의 한 장면.ⓒ MBC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재판 거래의 핵심 인물이다. < PD수첩 > 홍세정 PD가 인터뷰를 요청하자 아침 운동 중이었던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줄행랑을 친다. 비극적 희극의 한 장면이다. 정권과의 거래 결과로 하루하루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기 한 몸의 안위를 위해 아침 조깅이라니... 또 마이크와 카메라 앞에서는 도둑질을 들킨 것마냥 줄행랑이라니... 그러고도 법복을 입고 법의 존엄에 기대어 판결 내릴 것을 생각하니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는 것처럼 웃프다.

지난해 2월 어느날 새벽, 법원에 숨어들어 법죄(?)의 흔적을 지운 김민수 판사. 그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양승태의 재판거래에 일조했으며 2만4500개의 파일을 무단 삭제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더불어 반드시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하고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이다. < PD수첩 >은 양승태 대법원 재판 거래를 벌인 이들로 양승태, 임종헌, 김민수 세 명 판사를 지목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에게만 주목해서는, 죄를 물어서는 안 된다. '거래'라면 반드시 상대방도 있기 마련이다. '부당한 거래'라면 주는 쪽 받는 쪽 모두가 공범이다.

지난 10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양승태의 부당거래'의 한 장면.ⓒ MBC


양승태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을 규명하고 처벌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법원이 전임 대법원장과 판사들의 죄를 물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이 있지 않고서는 처벌이 불가능한 것도 현실이다. 보수정당처럼 이름을 바꿔 법원을 일신할 수도, 외국 재판정의 판단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법원 스스로가 제 팔 제가 잘라내는 고뇌와 결단이 있지 않고서는 재판거래 의혹으로 상처 입은 법원의 명예를 찾는 일은 요원하다.

"검찰은 사법농단의 증거를 즉시 확보하고 주요 피의자들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합니다. 특검과 국정조사도 검토하고 재판 거래에 희생된 피해자들도 공정하게 재심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이 사법 독립을 보장한 것은 대법원장과 판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판사가 아니라 국민을 우선하는 법원, 그런 법원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합니다."

< PD수첩 > 말미의 클로징 멘트는 국민의 바람이자 명령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민으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통합과 개혁의 소명을 완수하는 데 모든 열정을 바칠 것"이라는 자신의 취임사를 한 번 더 곱씹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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