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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놀라운 과거... 그 표정에 드러난 속내

[TV리뷰] '양승태 재판거래' 집중 조명한 MBC < PD수첩 >

18.07.11 14:33최종업데이트18.07.1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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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이전까지 판사들은 판결을 내릴 때 작은 망치를 두드렸다. '법봉'이라고 부르는 이 작은 망치는 재판의 권위와 준엄함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법봉이 상징하는 재판의 권위는 오로지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적으로 판결을 내렸을 때 얻어진다. 모종의 정치논리나 특정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법적 판단이 내려졌을 때, 법봉은 인간의 영혼을 잔인하게 후벼 파는 흉기로 전락하고 만다.

MBC 시사 고발프로그램 < PD수첩 >은 10일 '양승태의 부당거래' 편을 통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을 집중 조명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는 실로 파국적인 결과를 몰고 왔다.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KTX해고여승무원들, 간첩조작 피해자들 등 당시 가장 아픔을 겪고 있었던 약자들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 가운데 KTX해고여승무원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역시 삶을 포기했다. 사법 피해자들의 외침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났을 때는 정말 눈앞이 깜깜했어요. 당연히 이것이 승소할꺼라 생각하고 KTX로 돌아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물거품이 되버린 것뿐만 아니라 1심 통해서 저희가 KTX승무원이 철도공사 직원이 맞기 때문에 월급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었기 때문에 그동안 받았던 월급, 임금이 다 부당이득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 김승하 전국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대법원 앞에서 저희가 2천 배까지(하며) 호소를 했어요. 저희(해고) 노동자들 제대로 된, 공정한 판결을 해달라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삶, 목숨을 갖다가 박근혜 정권하고 거래했다는 거 아닙니까?" - 김선동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미 < PD수첩 >에 앞서 시사주간지 < 시사iN >, JTBC '뉴스룸', KBS 2TV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60분> 등 수많은 지면 매체와 방송 프로그램이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을 상세히 보도했기에 이날 방송 내용이 신선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다만, 양승태 대법원의 실체를 한 번 더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킬 수는 있었다고 본다.

'높으신 분'의 줄행랑, 박진감 넘친다 

재판거래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PD수첩 취재진을 피해 줄행랑을 친다.ⓒ MBC


정작 눈길이 가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재판거래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줄행랑 장면이다. < PD수첩 > 홍세정 PD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조깅 중인 임 전 차장과 접촉을 시도했다. 홍PD가 "PD수첩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임 전 차장은 취재진을 피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취재진도 뒤질새라 줄행랑 치는 임 전 차장을 쫓아가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청와대와 뒷거래로 재판을 이용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원행정처는 '잘 나가는' 극소수의 법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임 전 차장 역시 용산고-서울대 출신의 엘리트다. 이런 엘리트 판사가 취재진의 질문을 피해 허겁지겁 줄행랑치는 모습은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 PD수첩 > 진행자인 한학수 책임PD도 이 장면에서 안타까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더욱 눈길이 갔던 대목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과거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간첩조작 사건 6건, 긴급조치 12건을 맡은 전력이 있었다. 간첩조작 사건 6건 중 5건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1건은 재심이 진행 중이다. 긴급조치 12건은 모두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 PD수첩 > 취재진에게 "조작 간첩사건 판결이 6건인데 저희가 조사했을 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일 많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과거에 비추어 보면,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은 공안사건을 맡으면서 승승장구한 셈이다.

법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간첩조작사건을 가장 많이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MBC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은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법 자체에 지배논리가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에는 아예 왕이 궁정에서 법정을 열어 재판까지 손수 맡았다. '궁정'을 뜻하는 영어단어 'Court'가 '법정'의 뜻도 갖고 있는 건 이런 역사 때문이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입법·사법·행정 등 삼권분립이 이뤄졌다. 그러나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권력자들은 사법부 장악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1930년대 구 소련의 철권통지자 스탈린이 그랬다.

스탈린은 1935년부터 1938년까지 대대적인 정적 숙청작업을 벌였다. 우선 비밀경찰을 시켜 당의 총아라고 불리던 키로프를 암살했다. 그리고 키로프 암살사건 수사를 빌미로 정적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혐의를 씌우기 시작했다. 스탈린의 지령을 받은 비밀경찰은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다뤘다. 그리고 스탈린에게 헌신하는 검사들과 정치국원들은 이들을 '법적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법원은 시대 변화에 더디게 적응했다. 담당 판사들은 피고인들에게 낮은 형량을 언도했다. 이러자 스탈린은 판사들까지 숙청했다. 당시를 연구한 독일 법학자 오타 필립은 이렇게 적었다.

"담당판사들은 아직 프롤레타리아의 정의와 계급투쟁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탓인지 놀랍게도 피고인들에게 아주 낮은 형량을 언도했다. 결국 이 재판을 계급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스탈린의 의도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당시의 판사들은 1938년까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2년 후인 1937년 '반혁명-반노동자 세력의 모스크바 중앙위원회'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판사들도 스탈린이 원하는 바를 빨리 알아차렸다." - 오타 필립, <레닌 혁명과 결별하는 스탈린 법정의 대숙청> 중에서

지난 군사독재 정권시절, 특히 전두환 정권이 시국사건과 사법부를 다루는 방식은 스탈린과 유사했다. 1980년 5월 대법원은 김재규 피고인 등 7명에게 내란목적살인·내란수괴미수·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증거은닉·살인 등의 혐의에 대해 판결을 내렸다. 당시 피고인측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8:6으로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당시 계엄사, 보안사 등 신군부 측은 판결에 앞서 대법원을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또 소수의견을 낸 판사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해 고문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다수의견을 낸 판사들은 승승장구했다. 다수의견을 낸 여덟 명의 판사 가운데 유태흥, 김용철, 이일규 등 3인은 연이어 대법원장에 올랐다(경향신문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33) 김재규의 10·26 사건 (下) 참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궤적도 비슷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재선씨 간첩조작 사건을 맡으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갔고 대법원장 자리까지 꿰찼다. 저간의 상황으로 볼 때, 양승태는 시류에 잘 영합한 판사 중 한 명이었던 셈이다. 피해자인 오재선씨는 < PD수첩 > 취재진에게 억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씨의 말이다.

간첩조작 피해자 오재선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MBC


"대한민국엔 그렇게 젊고 똑똑한 재판관들이 많을 텐데 저런 사람이 대법원장이 되는가, 좀 울컥한 마음이 났어요. 엉터리 재판장, 나 속으로 항상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시각을 달리해 보자.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의 등장은 양승태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줬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유난히 법치를 강조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주위엔 공안검사들이 다수 포진했다.

원래 법치의 기본취지는 무한팽창하려는 속성을 가진 권력을 법으로 제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의 법치는 법을 지배수단으로 하는 통치였다. 그래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나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는 노동자들, 철거를 저지하려고 버텼던 세입자들을 범법자로 만들었다. 이런 정권이 양승태를 대법원장으로 기용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법부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이에 각 나라들은 민주주의는 발전과정에서 사법부 독립을 추구해 나갔다. 우리나라 헌법 제103조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며 재판의 독립성을 보장해 놓았다. 이런 이유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군사정권의 압박도 아니고, 자신의 이해관계(상고법원 설치)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권과 재판거래를 시도한 건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심각한 범죄행위다.

지난 6월 1일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중 한 장면이다.

기자 : 검찰의 조사에 응할 용의가 있으십니까?
양승태 : 검찰이 조사한답니까?

TV화면을 통해 드러난 표정만으로 그의 속내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여유로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의 목소리엔 설마 검찰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현재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 중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법부 독립'을 방패로 삼아 수사에 비협조적이다. 대법원이 이래서는 안 된다. 재판거래 의혹은 사회적 약자의 목숨을 담보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행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범죄다. 이런 범죄를 단죄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신뢰는 회복불능의 지경으로 빠질 것이 분명하다.

법정은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할 수밖엔 없는 사회적 약자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다. 그런 법정이 권력의 입맛에 따라 법봉을 휘두른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사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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