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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게 만드는 박지윤의 고백, 이런 말 해줘서 고마워

[조곤조곤 19] 힘든 이들을 위로하는, 박지윤 8집 '나무가 되는 꿈'

18.05.28 21:56최종업데이트18.06.1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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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박지윤 '나무가 되는 꿈'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박지윤


언젠가 늦은 저녁 피로한 퇴근길에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이직을 준비 중이었던 그는 예전에 내가 지원했다 떨어진 회사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기에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지 않았다.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은 직장 생활, 엉뚱한 자리에서 세월만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결국 그렇게 또래에 비해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을 친구는 토로했다. 그 때는 나도 비슷한 방황을 하던 시기였다.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졌냐고? 사실을 말하자면 귀찮았다. 지치기는 나도 마찬가지인데 왜 나를 붙들고 이럴까, 나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닌다는 애가 할 소리인가 싶었다. 꾸역꾸역 감정을 억누르다 무의식중에 한 마디를 툭 뱉었다.

"나도 힘들어"

짧지만 많은 것이 응축된 말.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친구의 목소리에선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는 힘없이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후회가 된 이유는 단 하나, 친구를 달래줘야 한다는 골치 아픈 일이 늘었다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때 내가 너무 매정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마음속에선 변명과 같은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나는 친구지 그 애를 보살피는 사람은 아니잖아, 세상 힘들지 않은 사람 없는 요즘에 저 정도 살면서 징징거리는 것도 민폐야,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아직도 남에게 저럴까' 등등.

우리는 왜 힘들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할까

예전 같았다면 부끄러워서 일기장에도 쓰지 못했을 일이다. 차갑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고약하기 그지없지만 적어도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환상은 때로는 삶을 견뎌낼 비빌 언덕이 되곤 한다. 하다못해 나만이라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하지만 이미 표출한 감정과 생각이 없는 것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온다.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비참하다는 감정이 들 때 나는 그 속에서 내가 귀찮아하고 질척거린다고 여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속으로 애써 의연해지려 한다. 나는 그 애들처럼 약하고 미성숙하지 않아, 이 정도로 징징거리지 않아, 힘들지 않아, 외롭지 않아. 그리고 그러다 결국은 생각했다. 솔직하게 모든 걸 끄집어 내지 않으면 끊임없이 괜찮은 척 하는 이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겠구나.

얼마나 힘들어야 힘들어 할 수 있을까. 고통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그 기준을 찾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모든 고통은 객관적인 측량이 불가능하다. 병원을 찾으면 가장 당황하게 되는 질문이 이것이다. 얼마나 아프세요? 모르겠다. 이 정도로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 많이 아픈 건지 비교적 덜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래서 가끔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험난했던 근황을 들을 때면 놀라서 말하곤 한다.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고, 어떻게 혼자서 견디고 있었냐고. 그러면 그런 답이 돌아오곤 한다. '아 이게 그 정도의 일이었던 거야?' 그럴 때면 황망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다. 굴레에 빠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고통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

우리는 어쩌다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자기 스스로에게도 힘들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왜 그런 생각조차 하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인간은 천차만별의 다양함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 다른 이에겐 마음이 끊어질 만큼 아픈 일이 될 수도 있다. 365일 행복해 미칠 것 같은 인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피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는 건 모두가 똑같다. 잠깐의 기분 좋은 순간과 휴식, 수면이 숨통을 틔어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통과 고됨은 우리 모두가 발 디딘 공통의 토대이기도 하다. 사실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모두가 힘들다. 말하자면 공감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은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나는 모른다. 내가 남을 보듬은 만큼 누군가 나에게도 그렇게 해줄지. 내가 전한 위로를 어디선가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 가진 것도 없는데 소모까지 되는 인생까지 살기 싫다. 여유를 부릴 만큼 마음이 풍족하지도 않다. 그래서 감정을 전하지도 받지도 않으려고 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관심하거나 나쁜 사람은 되기 싫으니까 거꾸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부정한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파하는 당신이 이상한 거라고 말하게 된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오고 만다. 모두가 사이좋게 고립되어 피폐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박지윤의 '나무가 되는 꿈'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 박지윤


절망의 끈으로 서로를 묶을 수 있기를

'이 깊은 절망의 끈이 너와 나를 묶어줄 거야'

가수 박지윤은 '나무가 되는 꿈'이라는 곡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모든 노래를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다. 부끄러움과 아련함이 동시에 느껴지게 만든다. 그 가사는 정확하게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절망을 서로를 묶는 끈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시선. 아픔을 경유해 관계를 형성하려는 온화한 손길. 나만 손해 보지 않겠다는 마음 따위는 없는 여유로움. 저 가사는 처음 들었을 때 눈물을 쏟게 할 만큼 내 마음을 건드렸지만 한편으로는 회의감이 들게도 했다. 과연 나에게 저 일이 가능할까. 나도 저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노래는 위로와 깨달음을 전달하지만 내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도 알게 만든다. 엉뚱한 소리지만 그래서 내게 '나무가 되는 꿈'은 종교적인 노래처럼 다가오곤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신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윤리적인 가치를 배우고 지향하기 위해 종교를 가지는 것처럼, 도무지 노래 속 화자처럼 살 자신이 없다고 해도 포기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에 다다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간절함이 우리를 조금씩 서로에게 선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그래야 언젠가 고통과 절망이 회피나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를 이을 연결고리가 되는 공동체가 되는 날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 나는 이 노래의 또 다른 가사에서도 위로를 얻었다. 그것을 공유하는 것으로 글을 닫고자 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소리 내어 울어도 돼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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