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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버린 남친의 엄마 만난 여성... 그 결말이 참 따뜻하다

[조곤조곤18]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

18.05.13 13:02최종업데이트18.06.1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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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 포스터 ⓒ 넷플릭스


둘이 죽고 못 사는 사람. 친밀하다 못해 한 몸처럼 붙어사는 이들을 두고 우리는 이런 표현을 쓰곤 한다.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살아야 할 모든 이유가 사라졌을 때 유일하게 나를 붙드는 사람, 정말로 죽는다면 나도 살 수가 없는 이와의 관계. 사이의 좋고 나쁨과는 상관이 없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은 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문턱 앞에서 나를 붙드는 존재 말이다. 이따금 장례식에 갈 때면 그 사람이 죽으면 어떨지 상상해보곤 한다. 1초도 되지 않아 숨이 막히고 당장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쓰다가 모조리 지워버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글로 조차도 남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굴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상실은 필연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나 방황하는 것을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의 영역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삶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풍랑 속에서 떠밀려가지 못하도록 내린 닻이 사라졌는데 배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결국 난파되는 결말만이 기다릴 뿐이다.

정처 없는 삶은 주거지가 없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세상에 우리를 붙들 최후의 고정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게 일이나 가치관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람이다. 인연이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그런 이가 부재할 불안은 늘 도사린다. 삶은 가혹하다.

중력이 사라지면 어쩌죠?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에서 주인공인 탈룰라(엘렌 페이지)는 이렇게 묻는다. "중력이 사라지면 어쩌죠?" 참신하며 동시에 매우 정확한 은유다. 여섯 살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생면부지의 아빠와 살던 탈룰라는 결국 유랑 생활을 택한다. 하지만 그나마 길거리에라도 발을 붙일 이유였던 남자 친구 니코는 그녀의 대책 없는 삶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버린다.

인사도 없이 니코가 사라지던 밤 탈룰라는 자신에게만 중력이 사라져 온 몸이 붕 뜬 채 하늘로 위로 끝도 없이 날아가는 꿈을 꾼다. 그녀는 어떻게든 땅에 있으려 발버둥 치지만 역부족이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마고의 답은 반대다. 그녀는 그냥 우주로 사라져 버리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대학원 시절 임신을 하게 되고 엄마가 될 계획을 세웠던 마고였지만 아들인 니코는 집을 나가고 남편은 이혼을 요구한다. 그녀가 그렇게 대답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닻이 되어주는 사람. 탈룰라는 평생 가지지 못한 그런 사람을 원하지만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기를 반복하고 마고는 이제 막 그런 존재를 상실했지만 계속해서 현실을 직면하길 유예한다. 이렇게 대칭을 이루는 두 캐릭터는 서로를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다. 이 관계의 시작은 인과 보다는 우연에 의해 통제된다.

탈룰라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니코를 잃고 그의 엄마인 마고를 만난다. 음식을 훔쳐 먹으러 들어간 호텔에서 어쩌다 보니 인사불성인 캐롤린을 만나고 그녀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유괴를 감행한다. <탈룰라>는 우리의 손밖에서 움직이는 인연이 이상적으로 흘러가는 흔치 않은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은 서로를 만나 보듬고 지지대가 되어준다.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순간

넷플릭스 영화 <탈룰라>의 한 장면 ⓒ 넷플릭스


하지만 영화에 오직 그것만 있었다면, <탈룰라>는 지금처럼 좋은 작품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과 사건만 있을 뿐 갈등과 캐릭터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물들은 고민 속에서 결단을 내리고 선택을 하며 변화해야 한다. 아기를 둔 채 도망치려던 탈룰라가 결국 그러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생활이 침범 당하는 것에 질색을 하던 마고가 탈룰라의 엉뚱한 아이디어에 동참해 보는 것처럼. 딸을 찾기 위해 캐롤린이 결국 두려워하던 남편을 대면하는 것처럼.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맨해튼에서 탈룰라를 처음 만난 니코는 그녀를 부두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오면 자신이 있는 곳이 섬이라는 게 실감이 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한다고.

그리고 만약에 다리가 모두 사라지고 지하철과 통로가 모두 없어지면 우리는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쳐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외로운 섬이 되고 표류하는 배가 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언젠가 다가올 그 순간은 예상치 못한 때에 발생한다. 슬프게도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떠밀려서 오는 다른 배를 보았을 때, 저 너머에 다른 섬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 다음에 우리의 몫이 생긴다.

뛰어들어야한다. 물속으로, 그 섬과 배에 닿을 유일한 길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향해 헤엄쳐야 한다. 탈룰라가 마고에게, 마고가 캐롤린에게 그리고 캐롤린이 자신의 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화의 마지막 탈룰라의 꿈처럼 하늘을 향해 부유하던 마고는 땅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갑작스레 나뭇가지를 붙든다. 그리고 단단한 그 손을 카메라는 조용히 비춘다.

<탈룰라>가 건네는 따스한 독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이, 니코의 대사가, 그리고 <탈룰라> 속 캐릭터들이 취한 선택이 마치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온화한 독려가 아닐까 생각했다. 주는 것 없이 빼앗아 가는 것만 많은 듯이 느껴지는 시대다. 소중한 사람들도, 최후의 지지대가 되어 줄 사람들도 언젠가는 나를 떠나가겠지만 이를 대체할 사람이 나를 찾을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이후에도 평생 홀로 남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초반 탈룰라와 마고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갈 힘도 의지도 남겨두지 않은 채 방황한다면 우리는 속절없이 부유하다 탈진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황량하게 출발하지만 낙관적인 결말로 끝나는 이 영화의 존재는 소중하다. 믿음을 주고 다시 물살을 헤칠 일말을 체력을 남기도록 등을 두들기기 때문이다.

인생은 가혹하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마치 영화가 내게 그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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