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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욕망한 여인들, 한 여성감독의 파격적인 시도

[조곤조곤 16]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이 드러낸 것들

18.04.19 11:02최종업데이트18.06.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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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은 책과 영화, 드라마와 노래 속 인상적인 한 마디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무심코 스치는 구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이야기로 풀거나, 그 말이 전하는 통찰과 질문들을 짚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좋아는 하지만 남들에게 말하기는 민망해 비밀스럽게 즐기는 것을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여기에 속한다. 의아할 것이다. 도대체 게이가 왜 이성애자의 로맨스물을 좋아하지?라고.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답이 보인다. 이 영화에는 가진 것 없이 평범한(물론 다코타 존슨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아름다운 배우이긴 하지만) 주인공 아나스타샤에게 목을 매는 크리스천 그레이가 등장한다. 그런 그가 어떤 캐릭터냐 하면 일단 멋있고 게다가 부자다. 신사답고 주인공을 존중하며 심지어 일탈적인 쾌락(?)의 세계에 까지 데리고 간다.

이러니 내가 어찌 이입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나스타샤는 나의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캐릭터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 영화의 예고편이 공개되던 날 이성애자 여성인 친구들과 노트북 앞에 옹기종기 모여 함께 환호성을 질렀던 순간이.

사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뿐일까. 무수한 로맨스 영화들 중 나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에 더 많이 끌려왔다. 그들의 성별만 지운다면 남자를 원하고 갈구하거나 혹은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는 캐릭터의 상황이 나의 처지와 훨씬 비슷하니 말이다. 주인공이 당당하면 용감해보여서 좋고, 소극적이고 홀로 애달파하면 동병상련의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바로 여성 주인공의 욕망이 지나치게 폭발적인 나머지 그것에 휩쓸려 파멸하거나 괴물이 되는 이야기들의 경우다. <위험한 정사>나 <미저리>같은 작품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작품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나는 이런 영화들에 정을 붙이기 어려웠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광기 어린 여성 치정극이 마뜩치 않은 이유

이유야 많다. 첫 번째, 환상 충족이 안 된다. 남자와 목표로 한 관계에 도달하든, 망한 관계를 제대로 청산하든, 하다못해 목표로 한 기행을 완수하든 무엇 하나라도 성공을 하면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 속 여성 캐릭터들은 늘 좌절하고 처벌 받기를 반복한다. 죽지라도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다.

두 번째로 공감이 안 간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이 흔들리고 집착을 하게 되며 마음이 폭발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 광기로 발전해 결국 요란한 폭력과 범죄의 축제를 벌이는 경우는?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내 주변의 이성애자 여성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인생에서 남자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한 순간에 박살낼 만큼은 아니다. 아무리 외롭고 절박하다고한들 말이다.

말하자면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는 남자를 향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심지어 과속과 급정거를 반복하는)에 탑승한 친구들이 많지만 자기 파괴적이고 심각하게 비윤리적인 행위까지 감수할 사람은 없다. 그건 뉴스만 살짝 훑어봐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남자들은 '사랑'을 핑계로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폭력과 스토킹을 저지른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눈을 씻고 뒤져봐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이는 남성중심적인 젠더 관계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가령 여성은 오랜 시간 가부장적 체제에서 두 가계의 '교환물'이 되어왔고(사람들은 주로 '정략결혼'이라는 성별권력관계가 지워진 단어로 이를 표현한다), 집안에서는 성역할이라는 '기능(그래서 가사노동은 필요한 숙련도와 상관없이 평가절하 되고 남성이 집밖에서 하는 일만이 오직 진정한 노동으로 인정된다)'을 수행하는 아내와 엄마의 지위를 부여 받았다. '트로피 와이프'처럼 사람을 아예 물건 취급하는 해괴한 단어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대방을 소유할 수 있는 성별은 오직 남성뿐이다. 이는 여성을 안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남성성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함을 의미한다.(그래서 여성의 거절을 단순한 의사표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히 자신의 자존심을 다치게 만드는 행위라고 여겨 폭력까지 불사하는 남자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만일 거꾸로 여성이 남성을 소유하고자 한다면? 이 일은 남성의 지위를 추락시키는 기행이자 공포 그 자체가 된다. 대중문화에서 남자를 욕망하다 광기에 휩싸이는 무서운 여성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이 분야의 대표적인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864년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미국. 부상을 당한 병사 존은 우연히 한 소녀에 의해 구조되고 여성들만 살고 있는 기숙학교로 옮겨진다. 이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출연에 학교는 술렁이고 그를 경계하는 인물도 등장하지만, 사람들은 점차 존에게 흥미를 가지고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은밀하게 또는 감정적, 육체적으로든 기숙학교의 사람들은 존을 향한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하지만 결국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두 편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모두 같은 내용을 다룬다. 차이가 있다면 원작은 앞서 설명한 남자들의 전형적인 공포에 집중하지만 소피아 코폴라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존은 주인공의 지위에 조차도 오르지 못한다.

감독은 대신 기숙학교 여성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캐릭터들에게 각각의 고유한 개성과 이에 기반을 둔 일관성을 부여한다. 이들이 무리해서까지 남자들에게 무시무시한 존재가 될 필요가 없어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교장인 마사는 리더의 자리가 주는 피로함을 토로하며 존에게 의지하고자 한다. 기숙학교 생활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에드위나는 그에게 해방을 약속받고 감정적으로 기댄다. 마찬가지로 단조로운 생활에 염증이 난 알리시아에게 존은 성적 일탈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의 욕망은 결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욕구가 충족되든 좌절하든 캐릭터들은 우리가 알던 그 인물 그대로 남는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존이 주변 여성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기숙학교에 계속 남기 위해 마사의 환심을 사고자하며 에드위나에게는 자신이 그녀를 탈출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양 굴며 남성으로서 체면을 살릴 인정을 얻는다(비록 허풍에 불과해 보이는 약속만을 남발하지만 그녀와의 관계에서 존은 일방적인 도움과 호혜를 받는 위치를 벗어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존의 행동이 지나치게 양식적이고 껍데기뿐인 것처럼 느껴졌다면 정확하게 본 것이 맞다. 그는 정말 필요한 것을 취하기 위한 연기를 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은 그가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밤 성관계를 가지기 위해 찾았던 사람이 누구인가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솔직히 말하면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분류하고 이용하는 그의 행태는 너무도 전형적이라 그 자체로 냉소적인 웃음을 유발할 정도다(주제 파악도 못하는 것까지 똑같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우아하고 정갈하지만 강렬한 쾌감

이런 구도에서 결국 폭로되는 것은 기존의 '욕망하는 여성들'의 치정극이 지닌 맹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존은 기숙학교의 여성들이 자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에 해를 가했다고 주장한다. 그 여성들이 욕구가 좌절되어 광기에 휩싸인 위험한 존재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단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여성 캐릭터들은 그만한 흔들림의 전조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에서 집기를 부수고 욕을 하며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는 바로 존이다.

마사를 비롯한 기숙학교의 구성원들은 돌발 사태를 수습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이렇게 <매혹당한 사람들>은 남자들이 만들어 낸 상상의 공포를 밀쳐버리고 현실의 젠더 관계를 가장 보수적이었던 서사 위에 기입한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간다. 그가 아무리 욕망의 대상이었을지라도 일단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하자 존은 퇴거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그런 그를 여전히 욕구하고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었던 에드위나 역시도 잠시 회한에 젖은 모습을 보이지만 이내 학생들에게 돌아가 필요한 일을 마무리한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중반, 자신의 용기를 칭찬하는 존에게 마사는 '진정한 용기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죠'라고 답한다. 그리고 매혹당한 여성들은 절대 해낼 수 없으리라 남자들이 여겼던 이 담담하고 분별 있는 일을 그녀들은 해낸다. 아마 더 격렬한 파국과 갈등을 원했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매혹당한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존을 가장 우아하고 깔끔한 방식으로 퇴장시킬 기회를 주며, 정갈하지만 동시에 전복적이고 강렬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나는 이 선택이 더 올바르고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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