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잠든 얼굴인데 손톱이 새까맣게" 세월호 아버지들의 통곡

[리뷰] 영화 <업사이드다운>(2015), 참사 후 가장 먼저 도착한 '증언록'

18.04.16 17:02최종업데이트18.04.16 17:02
원고료로 응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작하고 배우 정우성이 내레이션을 맡은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감독 김지영)가 지난 12일 개봉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오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눈꺼풀>도 같은 날 개봉하며,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창작물들이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추모했다.

지난 2014년 10월 개봉한 영화 <다이빙 벨>(감독 이상호, 안해룡)을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들 몇 편들이 극장에서 상영되어왔다. 영화로써 세월호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과 참사 당시 당국의 부실 대응에 관해 밝히는 탐사보도 형식의 다큐멘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세월호 이후 남은 사람들의 통곡을 달래고 위로하는 데 목적을 둔 작품이다.

혹자는 참사의 진실 추적을 목표로 하는 영화가 다수 제작되는 상황을 보며 'TV나 신문을 통해서가 아닌 극장에 가야만 은폐된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냐'라는 약간의 자조 섞인 기대감을 보내기도 한다.

그간 제작된 영화들의 만듦새가 대단했다거나,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세월호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호 영화들이 미흡했던 언론의 역할을 보충하고, 영화 예술의 틀을 빌려 유가족과 국민들의 비통함을 어루만져왔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업사이드 다운>(감독 김동빈)은 우리 앞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세월호에 대한 기록 중 하나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세월호를 향하는 두 가지 영화적 접근 방식을 모두 시도한 사려 깊은 작품이기도 하다.

세월호 자식 잃은 아버지, 그들의 참담한 통곡

영화 <업사이드다운> ⓒ 시네마달


영화엔 네 명의 아버지가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박성빈 학생의 아버지 박영우씨, 제세호 학생의 아버지 제삼열씨, 김다영 학생의 아버지 김현동씨, 한고운 학생의 아버지 한복남씨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아버지들의 '자식 자랑'으로 포문을 연다. 의사가 되고 싶다던 딸, 성적으로 전교권에서 놀았다던 자식, 너무도 활발하고 명랑했던 모습들, 소싯적 잘생겼던 아빠를 똑 닮아 참 예뻤다고 자랑하는 딸의 얼굴... 아버지들에게 자녀들은 가장 큰 자랑이자 행복이었던 것이다.

'살 수 있었는데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제 눈으로 확인하던 날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언저리가 찢기는 듯하다. 줄줄이 놓여있는 시신들, 다 내 딸인 것만 같아서 우리 아이만의 특징을 죽을 듯이 떠올렸다고 고운 아버지는 기억한다.

"고운이 특징이 뭐였더라... 머리가 긴 거..."

세호 아버지는 영원한 잠에 든 아이의 시신을 보고 '막 잠든 아기 같았다'고 말한다.

"얼굴 형태는 지금 막 잠이 든 애기인데, 열 손가락 손톱이 다 시커멓게 멍든 걸 보고... 내가 할 말을 잃었어요... 내가..."

세호 아버지의 절망적 탄식에 영화는 안팎으로 고요에 휩싸인다. 어떤 언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걸까.

아이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아버지들의 입을 빌려 서술하면서도, 영화는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부모라면, 누군가의 자식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결을 담백하게 전시하고 조용하게 호소하는 방법론을 취하는 것이다.

세월호가 품은 모든 '추악함', 사회 각계에 퍼져 있다

작품이 제작된 시기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활동이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지고 정부는 진상규명에 소극적이던 시절이다 보니, 영화에서도 정보에 대한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왜 침몰했는가?"라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아직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 '부족함'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언제쯤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는 주어진 정보의 결여에 굴복하지 않고, 제 나름대로 이야기를 꾸려간다. 절대 의심될 수 없는 가장 정확한 주장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리는 형식인데, 그 주장은 바로 '세월호 참사는 국가와 언론의 실책이 야기한 인재'라는 점이다. 

영화 <업사이드다운> ⓒ 시네마달


영화는 변상욱 CBS 대기자의 목소리를 통해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언론이 잘못한 지점들에 대한 반성을 토로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왜 언론은 대형 참사에 대한 대형 오보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취재진은 왜 언론 윤리를 버렸는지, 그 잘못을 바로잡는 데 왜 수년이 걸렸는지를 탐구한다. 변 기자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본 적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대형 참사를 가장 윤리적으로 보도하는 법을 우리 언론 생태계에서는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중파 방송이건 신문이건 모두가 실책을 저질렀고, 그날부로 신뢰를 잃은 언론들은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한다.

언론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월호에 탑승했던 선원의 60%가 근무 1년 미만의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은 대한민국의 척박한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30억을 더 벌기 위해 항해를 할 때마다 무리하게 과적행위를 벌였던 청해진해운의 모습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극단적인 이면을 보여준다. 또한 배가 침몰하는 28분 동안에도 선장이 승객의 안전보다는 사고 발생 후 보험 처리 문제와 자신의 책임 문제를 더 걱정했다는 증언은, 이 사회에서 인간성이 어느 수준까지 상실될 수 있는지에 대한 참담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 <업사이드다운> ⓒ 시네마달


무엇보다도 구조에 완전히 실패하는 수준을 넘어서, 할 수 있었던 모든 노력을 방치하는 수준이었던 해경의 모습은 코미디보다 더한 코미디였다. 또한 그런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방향성 잃은 기이한 결정을 내린 당시 정부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요소들이 사회시스템 붕괴 수준의 공포를 몰고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업사이드 다운>은 그 자체로 만듦새가 뛰어난 영화도 아니고, 4주기를 맞는 시점에 시청하기에는 정보의 '구멍'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지점으로 관점들이 흩뿌려져 있다는 단점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 말해, 세월호는 '이렇게밖에'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월호는 자녀를 잃은 가족들의 영원한 슬픔이기도 하고, 언론의 방조와 노동 현장의 문제, 물질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추악함과 무능한 지도자 하에 곪아가는 국가라는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사회 모든 분야로 흩어져 있고, 그 퍼즐 조각들을 맞춰야만 우리는 은폐된 실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업사이드다운> ⓒ 시네마달



세월호 업사이드다운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