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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땐 유부남에 버림받고, 이젠 조폭에 밀린 여배우들

[기획]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 변천사, 현모양처에서 센 여자까지

18.02.18 19:30최종업데이트18.02.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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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여성 캐릭터 실종'

언제부터인지 한국영화에서 인상깊은 여성 캐릭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들어 여성 캐릭터 부재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됨에 따라 <신과 함께-죄와 벌>(2017), < 1987 >(2017)처럼 극의 중심이 되는 주요 역할에 여성이 배치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영화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 내러티브에 남초 현상이 강하다.

처음부터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 실종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계에 남초 현상이 거세진 것은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다.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성공 이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신세계>(2012) 등 거친 남성들을 앞세운 범죄 액션 스릴러 영화가 각광받으면서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게 되었다.

가부장제 틀 안의 호스티스 1960~70년대

물론 영화에 여성이 많이만 등장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설정되고 그려지는 지도 중요하다. 1960년대에 제작된 대다수 한국영화의 주인공은 여성이었고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들도 상당했다. 최은희, 김지미, 황정순, 문정숙, 엄앵란 등 당시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 톱클래스로 인정받는 배우 외에도 문희, 윤정희, 남정임이 트로이카 구도를 형성하며 남성 배우들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여성 배우들이 남성 배우들과 비등한 활약상을 보여주며 연기자로서 입지를 굳혀 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성 캐릭터가 비중 있게 등장하는 영화들이 여럿 제작 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는 가부장제가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시대였기 때문에 한국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또한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한 장면ⓒ 한진흥업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캐릭터는 <또순이>(1963), <미워도 다시 한번>(1968)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외에도 한국영화에서 길이 남는 걸작인 <하녀>(1960)도 있지만, 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또순이'라는 제목처럼 억척스러우면서 똑 부러지는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영화는 남성 중심적인 가족 문화에 순응하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또순이(도금봉 분)를 통해 당시 박정희 정권이 내세웠던 '조국근대화' 이념에 부합하는 '현모양처' 여성상을 강조한다.

1960년대에도 <하녀>, <귀로>(1967) 등 자기 욕망에 충실해지고 싶은 여성 캐릭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족보다 욕망을 우선시하는 여성 캐릭터는 언제나 말로가 좋지 않았다.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문희가 맡은 혜영은 연애 사기의 대표적인 피해자이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둘인 신호(신영균 분)에게 속아 미혼모가 된 혜영은 가족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아들 영신을 어렵게 키운다. 당시 극장가에 <미워도 다시 한번> 붐을 일으킬 정도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의 핵심은 여성의 지고지순한 헌신과 희생에서 나오는 신파다.

왼쪽 <또순이>(1963) 포스터 , 오른쪽 <미워도 다시한번> 포스터ⓒ 양해남, 한진흥업


남성에 의해 유린되는 여성들의 억압적인 모습은 1970년대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호스티스 영화로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있다. 이 영화들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들에 의해 순결을 잃고 유흥업에 빠져들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영화의 여성 잔혹사는 에로 영화가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에도 반복된다.

그 중에서도 사랑에 있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여성 주인공이 돋보이는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1977),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1985) 같은 영화도 있었지만 여성은 남성에 의해 선택받고 불행해지는 비극적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80년대 후반부터 커리어 우먼으로 발전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에 접어들며 여성 캐릭터도 '커리어우먼'으로 대표되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제시한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캐릭터는 이명세 감독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에 출연한 최진실이다. 한 가전 CF에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대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최진실은 기혼 여성의 삶을 사랑스럽게 보여주며 대한민국 최고 인기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최진실이 사랑스럽고도 똑 소리 나는 캐릭터로 사랑받았다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로 우뚝선 강수연은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길>(1991), 이현승 감독의 <그대안의 블루>(1992)를 통해 남자와의 사랑 대신 일을 선택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당찬 커리어우먼 캐릭터를 구축한다.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1990),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1992)을 통해 이지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심혜진 또한 90년대에 빼놓을 수 없는 여성 스타 배우다.

1990년 한국영화 대표 여배우 최진실, 심은하, 전도연ⓒ 이명세, 우노필름, 나우필름


1990년대 후반 여성 배우로서 가장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연기자는 단연 심은하, 전도연이다.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 다슬이를 연기하며 청순가련형 캐릭터로 사랑받은 심은하는 이후 MBC 공포 드라마 < M >(1994)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이후 영화계로 활동 무대로 옮긴 심은하는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 <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각광받는다. <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심은하가 맡은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사랑에 서툴다. 그럼에도 극 중 심은하는 사랑에 솔직해지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멜로/로맨스의 장인으로 거듭난다.

심은하 이전 여성 캐릭터들이 가만히 앉아서 남자들의 사랑 고백을 기다렸다면 <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심은하는 자기보다 사랑에 더 서툰 남자들을 보다 못해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한다. 이제는 영화계에서 은퇴한 이후 정치인의 아내로 살고있는 심은하 이지만 여전히 그녀의 영화를 그리워 하는 팬들이 많은 이유다.

<접속>(1996)에서 초반 짝사랑에 힘들어하다가 점점 사랑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여성의 주체적인 변화를 보여주며 영화계에 강한 인상을 남긴 전도연은 그 뒤 <약속>(1998), <내 마음의 풍금>(1999), <해피엔드>(1999),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너는 내 운명>(2005), <밀양>(2007), <하녀>(2010) 등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해내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0년 이후 센 언니 시대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캐릭터는 크게 '썅년', '센 언니', '엇나간 모성애'로 요약될 수 있겠다. 허진호 감독의 2001년작 <봄날은 간다>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라면서 상우(유지태 분)을 유혹하고 홀연히 그의 곁을 떠나간 은수(이영애 분)는 2012년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맡았던 서연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남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더 나은 상대를 찾아 자신들을 버린 첫사랑 혹은 옛 연인은 '쌍년'이다. 남성들의 관점에서 실패한 사랑으로 대상화된 여성들은 첫사랑, 혹은 옛 애인 그 이상의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다. 남성에게 '쌍년'으로 불리지 못한 여성들은 스스로 엽기녀 혹은 쎈 언니가 되기도 한다.

전지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엽기적인 그녀>(2002),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 <도둑들>(2012), <암살>(2015),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2008), <비밀은 없다>(2016)처럼 그나마 여성의 주체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기괴하거나 '쎈' 언니 성향이 다분하다. 봉준호 감독 <마더>(2009)에서 엇나간 모성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김혜자 또한 센 언니에 가깝다.

최근 여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선 전지현배우의 <암살>, 공효진 엄지원배우의 <미씽:사라진여자>, 나문희 배우의 <아이캔 스피크>ⓒ 쇼박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사 시선


최근 들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 이언희 감독의 <미씽:사라진 여자>(2016)에서 쎈 언니 대신 남성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일부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남성들에 의해 대상화되거나 누가 봐도 쎈 언니, 아니면 남성들의 그릇된 욕망에 속수무책 당하는 희생자 이미지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위안부를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극중 나옥분(나문희 분)의 아픈 과거를 헤집으려고 하기보다, 그녀가 살고있는 현재에 집중하고자 했던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2017), 여성 배우이자 여성으로서 녹록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승화한 문소리의 <여배우는 오늘도>(2017) 정도가 어떠한 정의로도 쉽게 간파되기 어려운 여성 그 자체를 다루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 들어 여성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영화들이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한국영화에는 아직도 더 많은 '여성영화'가 필요하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 확보는 지금까지 변두리에만 머물렀던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있다.

단순히 여자가 주인공이고 많이 나오는 차원을 넘어서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 연인, 성적 대상,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쎈 언니가 아니더라도 여성의 주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천편일률적으로 남성들의 일그러진 욕망으로 점철된 한국 영화가 더 재미있어 질 수 있다. 2018년에는 부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여성 캐릭터와 여성 영화가 사랑받는 원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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