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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밤> 이 장면 봤어? 장항준 감독이 감춘 떡밥들

inter:view - 영화 <기억의 밤>으로 복귀 "잘하는 것 보단 하고 싶은 걸 하고파"

17.12.04 18:50최종업데이트17.12.0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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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이 9년 만에 영화 <기억의 밤>으로 돌아왔다. 웃음기를 뺀 스릴러물이다. ⓒ 메가박스 플러스엠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와 영화 연출을 넘나들며 장기를 발휘하는 장항준 감독은 소문난 이야기꾼이다. 그가 집필을 맡았던 <박봉곤 가출 사건>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코미디 물로 언급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장항준의 다이내믹한 행보가 시작됐고, 드라마 <싸인> 연출로 이어졌다.

이와 별개로 영화감독으로선 주춤했다. 9년 전 TV용 영화 연출을 맡은 이후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졌다. "상업영화에서 이제 날 원하지 않는구나" 망연자실했던 그가 다시 재기를 노리는 작품이 바로 스릴러 영화 <기억의 밤>이다. 생활 코미디로 흥했던 그가 <싸인>에 이어 또다시 스릴러라니. "코미디보다는 스릴러에 꽂혀 있다"라고 그가 지금의 상태를 전했다.

술자리에서 시작된 이야기 

바닥을 치고 있을 때 그의 손을 잡은 건 영화계에서 오래 알고 지낸 장원석 피디였다. <범죄도시> 등 최근까지 흥행작 다수를 제작해 낸 장원석 대표가 장 감독의 시나리오를 읽고 힘을 북돋으며 제작을 맡았다. <기억의 밤>은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는 1997년, 그 중에서도 IMF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한다.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살인사건의 비밀을 안고 있는 가족. 불안증을 앓고 있는 삼수생 진석(강하늘)의 시선을 통해 다정해 보이지만 뭔가 수상한 형 유석(김무열)과 아버지, 어머니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는 구조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라. 언제였더라? 제목은 <기억의 밤>인데 내가 기억을 잘 못해(웃음).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때마다 내 스스로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습관이 있다. 찾아보니 2015년 1월에 이 이야기의 시작을 보낸 기록이 있더라. 그러면 2014년 연말 송년회 때가 맞다. 그때 한 술자리에서 어떤 아이가 가출한 사촌 형이 한달만에 돌아왔는데 뭔가 서먹했고, 좀 이상해졌다고 말한 게 시작이었다. 그 이야기를 내가 여러 술자리를 다니며 조금씩 각색하고 있더라. 다들 반응이 좋았다. 사촌이 아닌 친형이고, 그 형이 기억이 없으며, 알고 보니 낯선 사람이라면?  

장르는 그럼 스릴러가 되는데 어떤 음식을 담을 것인가. 그래! 가족 이야기를 하자. 근데 가짜 가족이다. <기억의 밤>은 가족을 상실한 두 남자의 비극적 이야기인 것이다. 제 지론 같은 건데 우리 운명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런 걸 담고 싶었다. 위기의 가족을 담다 보니 1990년대로 가야 했고, 가족이 붕괴되기 시작한 한국, 97년으로 가자!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기억의 밤> 스틸 사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장항준 감독은 "중산층의 붕괴, 가족 해체가 급격히 일어나던 때로 아들이 아버지를 지방 터미널에 버리고 오는 현대판 고려장이 한창 벌어지던 때였다"며 "그런 이유로 영화에 망연자실한 일용직 노동자 표정 등을 정말 잘 담고 싶었다"고 시대 배경 설정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주특기와 희망사항

앞서 밝힌 대로 장항준 감독은 코미디가 장기다. 그런데 최근작까지 무게감 있는 스릴러물을 선보였다. 영화로 재기가 쉽지 않았던 때 코미디를 다시 맡았다면 수월했겠지만 그는 "사실 코미디를 하자는 제안도 많았는데 끌리지가 않았다"며 변화 지점을 언급했다.

"영화 하나가 이미 엎어진 뒤라 막 가라앉던 시기였다. 투자고 뭐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걸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카페 구석에 가서, 거기가 지겨워지면 다른 카페에 가서 1년 간 찬찬히 썼다. 보통 제가 초고를 굉장히 빨리 쓰는 편이거든. 1달이면 초고를 내고 언제 촬영에 들어갈 건지 계획을 짜는데 이 작품은 그게 전혀 없었다. 

감독은 언제 어떤 작품이 자신의 유작일지 알 수 없잖나. 그런 와중에 시나리오를 딱 끝냈고, 장원석 대표에게 보여줬다. 1996년 <박봉곤 가출 사건>을 한창 쓸 때 장 대표는 제작부 막내였다. 그때 인연이지. 좀 봐달라고 했는데 보자마자 재밌다고 만들자고 하더라. 그를 믿었다. 잘 나가는 제작자니까(웃음). 아내 김은희 작가 역시 초고를 보고 '잘 될 것 같다' 하더라. 장 대표에게 스태프 인선까지 다 맡겼다. 내가 데리고 온 스태프는 음악 감독 뿐이었다. <싸인> 때 알게 됐고, 그땐 인연이 안 됐지만 이번에 같이 하자고 해서 합류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김태훈 음악 감독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휘 전공인 47세의 김 감독은 <기억의 밤>으로 데뷔하게 됐다. 영화에 적절하게 담긴 노래들은 모두 그의 의견으로 헝가리 현지에 가서 직접 악기들을 녹음한 결과물이다. 

ⓒ 메가박스 플러스엠


코미디와 함께 그의 주특기는 이야기에 적절하게 녹이는 사회 비판 내지는 문제의식이다. 심지어 지난해 도움을 준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에서도 재벌의 승계 문제를 넌지시 짚었을 정도. <기억의 밤>으로 가족 해체 문제를 건드린 그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갔지. 피터지게 경쟁했더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가 됐다. 세계 경제 11위 국가라는데 행복이 아닌 가장 불행한 사회가 된 거지. 우리 세대는 현재를 한탄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반성해야지. 근데 모 정당은 '청년들이 열심히 안 한 탓'이라고 타박하잖나(웃음). 계층의 사다리는 없어지고 부가 세습되는 사회가 된 것 같다. 다들 어렸을 때부터 마음대로 못 놀고 공포에 질려 있다.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에 없고 다 학원에 가 있더라.  

그런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전쟁처럼 공부하고 대학 나오면 비정규직이 된다. 결과적으로 속도를 내면서 경제 발전한 게 틀렸단 게 입증된 셈이다. 천천히 가면 옆도 보고 뒤도 볼 수 있을 텐데.... 국가는 가난한 자들의 편이어야 한다. 부자들은 그냥 내버려 둬도 잘 살지 않나. 근데 부자 증세한다고 뭐라고 하다니. 저랑 와이프는 세금 다 내고 있다! (웃음)"

채플린의 후예

영화 <기억의 밤>에서 형제들은 납득 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애써 믿으려 하며 동시에 조금씩 의심을 쌓아간다. ⓒ 메가박스 플러스엠


여러 자리에서 장항준 감독은 영화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진지하면서도 전복을 꿈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후예', 다른 하나는 유쾌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찰리 채플린의 후예'다. 이 말을 그에게 적용했다. 그의 욕망과 변화 지점을 보면 장항준 감독은 아마 '히치콕을 닮고 싶은 채플린의 후예'가 아닐까.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자의 길을 동시에 가고 있는 그의 현재를 잘 설명하는 문장 같았다. 크게 웃으며 그가 "제 정체성을 유감없이 말해준 것 같다"고 화답했다. 

"그치 지금 전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지, 잘하는 걸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만족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어느 새 이야기를 짜는 건 습관이 됐다. 노트에 그때마다 메모해놓거든. 핸드폰으론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 똥이 안 나오는 볼펜으로 써야 한다(웃음).

웃긴 게 집에서 IPTV로 영화를 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영화는 안 보고 장면 구성을 고민하고 있더라. 저 배우 말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뭐 이렇게 상상하는 편이다. 소설을 읽다가도 판권을 따지게 되고. 솔직히 글 쓰는 것 자체는 너무 고통스럽다. 언제 영화가 될지 기약도 없고. 근데 촬영 현장에 있으면 그렇게 신난다. 대학 때 연기를 공부한 게 그땐 못 느꼈지만 지금에 와선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감정과 동선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니 말이다." 

간접적으로 장항준 감독은 연출에 대한 열정을 그렇게 내비쳤다.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걸 한번 경험하면 중독되고 만다"며 그는 "환갑 때 촬영현장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60세 생일 감독 의자에 앉아 촬영을 지시하는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장항준 감독 역시 활짝 웃고 있었다.

장항준이 던진 <기억의 밤> 속 떡밥들
영화 <기억의 밤>은 스릴러 장르이기에 기본적으로 추격의 요소가 있고, 수수께끼 같은 설정도 꽤 있다. 이중 장 감독이 작심하고 숨겨 놓은 설정 몇 가지를 공개한다. 영화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하나하나를 되짚어보고,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관람하길 권한다.

1. 진석은 왜 재수생이 아닌 삼수생일까.
"형에게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동시에 존경해야 했다. 엄친아를 존경하는 동생의 처지가 절박하길 원했다. 게다가 신경쇠약이 있으니 삼수생이라면 그걸 굳이 설명 안 해도 이해될 것 같았다."

2. 유석은 왜 19일 만에 돌아올까.
"가장 유족이 애가 타는 시점, 경찰이나 수사관이 포기할만한 때가 사건 발생 후 3주일 정도더라."

3. 진석이 이사 와서 책장에 처음 꽂는 책이 <장미의 이름>인 이유.
"폐쇄된 수도원 이야기를 다룬 그 소설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싶었다."

4. 진석이 영어 공부 중 사전에 형광색으로 칠하는 단어 'hypnosis'.
"최면이라는 뜻으로 이 역시 사건의 실마리를 가늠하게 하는 키워드다"

소소한 이런 설정 이야기와 함께 장항준 감독은 지면을 빌려 출연한 김무열, 강하늘, 그리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한번도 고마움을 표현 못했는데 꼭 만나면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그가 덧붙였다.


장항준 기억의 밤 김무열 강하늘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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