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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결말 위해 투신한 연인, 관객의 마음도 저 바다에

[까칠한 관객-작가와 ㅁㅁ] 관객들에게 '선택'하게 만드는 뮤지컬 <사의 찬미>

17.12.29 18:07최종업데이트17.12.2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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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캐릭터 사용은 새롭지는 않은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창작 뮤지컬에서도 떠오르는 서사들이 많다. 특히 작가 서사 외에 '관념' 캐릭터가 등장하는 서사가 눈에 띈다. 이 시리즈는 작가와 관념 캐릭터를 활용하는 작품의 미덕과 나름의 아쉬움을 이야기하고자 기획됐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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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뮤지컬이 네 번이나 공연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즌을 기획할 정도로 이전 시즌이 사랑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후 시즌에서는 어떤 변주를 줘야 한다. 기존 시즌과 같은 창작진이 작품을 꾸려 나간다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기 안의 무대라는 완벽한 세계관을 고치는 게 또한 고민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사의 찬미>는 대단한 작품이다. 초연과 재연을 <글루미데이>라는 제목으로 공연했으며, 삼연 때는 <사의 찬미>로 바꾸는 '파격'을 감행했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17년 이 뮤지컬은 또 한 번 DCF대명문화공장에서 시모노세키발 관부 연락선을 운항하며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분명 사랑을 받는 데에는, 가장 기본적으로 '좋은 작품'이라는 기준이 만족 될 터. 이 작품은 대체 어느 부분에서 좋은 부분이라 인정받고, 사랑 받는 것일까?

인간화된 관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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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지금이야 일제 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이나, 관념 캐릭터가 등장하는 뮤지컬이 흔하다지만 2013년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이러한 배경과 설정은, 지금의 관객이 느끼는 것에 비교해서 훨씬 새로웠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새로운 시대 설정과 캐릭터 설정, 관념 캐릭터라는 것으로 <사의 찬미>가 다루는 것은 결국 굉장히 고전적인 주제다. 어쨌든 <사의 찬미>는 제목에서도 제시되는 관념 '사', 즉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 죽음과 함께 이야기되는 주제는 죽음과 이어지는, '운명'이라는 관념이다. 이는 운명을 거꾸로 뒤집은 이름, 한명운이라는 이름의 사내로 또 한 번 간접적으로 명시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노선에 따라, 또 관객 개개인의 상상력에 따라 사내는 어떤 존재이든 될 수 있지만 어쨌든 텍스트가 은유하는 한명운의 존재는 '운명'인 듯하다.

'운명을 피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은 배 안에서 죽는 것이 자신들의 운명이라면 배 밖으로 나가면 된다며, 배 밖으로 투신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들의 투신은 크게 두 가지로 읽힌다. '정말로 이탈리아에 갔을 것이다', 혹은 '죽었을 것이다'로. 만약 후자의 해석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죽음은 온전한 죽음이 아니다. 그들은 죽음으로써 가장 격렬하게 생을 끌어안은 것이다. 이는 근대 소설 이상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결말이기도 하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로 이뤄질 수 있는, 온전한 삶, 생명. 모든 은유를 제외하고, 사실관계로만 봤을 때는 죽음 그 자체이지만, 은유와 맥락을 개입하고 본다면 이는 다르게 읽히지 않는가. 극 중 내내 언급되던 생명력은 이 결말에서 다시 한 번 겹친다.

극은 수미상관의 구성을 갖춘다. '사라져라 비밀이 되어라. 찬미하라 비극의 결말을. 진실은 바닷속에 감춰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이 죽음의 비밀'이라는 사내의 말로 시작되고, 사내의 말로 끝난다. 어쨌든 '사라져라 비밀이 되어라'는 지시와 '비극의 결말', '바닷속에 감춰진 진실'은 분명 운명과도 같은 사내의 말이었고 그 말은 이뤄졌다. 그들은 운명에 무릎 꿇었나, 아니면 운명을 전복했나. 이는 실제 김우진-윤심덕의 사건이 그랬듯 미스터리로 남는다.

좋은 여성 인물, 윤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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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는 흥미로운 소재나 좋은 넘버를 갖췄다. 하지만 오늘날 좋은 뮤지컬은 단순히 흥미로운 소재나 좋은 넘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윤리나 정치적 올바름, 특히 페미니즘이 화두가 된 요즘, 오로지 잘 쓰이고, 재밌기만 한 극은 현대 관객들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사의 찬미>는 남성 인물 김우진과 사내의 갈등 위주로 전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서사의 측면에서 봐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이는 윤심덕이 가진 캐릭터 성 덕분이다.

윤심덕은 잘 쓰인 여성 인물이다. 페미니즘과 여성 서사에 대한 논의가 이토록 활발히 이뤄지기 전인 2013년, 이런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윤심덕은 솔로 넘버 '난 그런 사랑을 원해'에서 '낮에도 밤에도 난 사랑을 속삭일래'라고 당당히 노래하는, 욕망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김우진의 심리, 그 심리적 배경 속 사내와의 갈등이 극의 주된 양상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윤심덕은 분명한 자기 서사를 가진다.

김우진은 우유부단하며,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신경쇠약에 걸려 있는, 극 내내 운명에 휘둘리는 동시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이와 달리 윤심덕은 개인의 선택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관부연락선'에서도, 액자 속의 이야기에서도. 윤심덕은 실제로 극 중 중요한 것들을 선택한다. 그중 가장 커다란 건, 김우진을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윤심덕이 김우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의 운명 혹은 삶이 윤심덕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 윤심덕이 이뤄낸 선택이 '남자를 쏘는 것'이었다면, 김우진은 죽었고, 사내의 결말처럼 본인 또한 자살했을 테니까. 그 둘의 첫 만남에서부터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 역시 윤심덕이었다.

이는 윤심덕의 대사 "우린 선구자야. 신세계를 찾아 나서는 선구자"라는 문장에서 완성도를 더한다. "우린 새 시대로 갈 거야. 준비됐어?"라는 우진의 물음에, 윤심덕은 위와 같이 답한다. 원래 김우진의 대사였지만, 2017시즌 윤심덕의 대사로 바뀌었다. 결말 부분에 등장함으로써 여태껏 보여줬던 캐릭터의 모습을 다시금 강조한다.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김우진의 물음에 윤심덕이 답했던 것처럼. 사내에게서 벗어나자는 김우진의 이야기에, 결국 총을 쏘지 않는 것을 선택했던 윤심덕처럼. 새 시대로 갈 거냐는 물음을 우진은 던지고, 거기에 동의라는 선택을 한 것은 윤심덕이다. 마지막까지, 둘의 캐릭터는 돋보였다.

물론 관객들 사이에선 이 대사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 왜 윤심덕이 마지막 순간에 타인의 시각을 의식하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운, 속박되지 않은 윤심덕을 보여줄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선구자'는 후대의 사람들이 앞선 사람들에게 흔히 붙여주는 이름이다. 자신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흔히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극 중 심덕은 후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 두 사람을 평가할지에 연연하지 않고, 먼저 스스로 선언한다. "우린 선구자야"라고. "우린 선구자가 될 거야"라거나 "선구자로 불릴 거야"가 아니다. 이는 지극히 찰나에 사는, 현재에 충실한 윤심덕의 캐릭터를 강조하는 힘이 된다. '타인이 어떻게 부르든' 지금 이 순간의 우리는 분명 선구자다. 스스로 이름 지을 수 있는 인물, 이는 당당한 윤심덕을 뒷받침한다.

직설적이지만 섬세하고, 고전적이지만 세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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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의 가사 역시 이 뮤지컬의 만듦새를 더한다. <사의 찬미> 가사들은 직설적이지만 섬세하다. 극 속 활용된 '메타포'도 이미 익숙한 은유들을 많이 차용한다. 자칫 촌스러울 수도 있는 이 선택은, <사의 찬미>라는 극을 친절하고 쉬우면서도, 동시에 은유는 포기하지 않은 극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그들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희곡'이나 '결말'은 삶을 연극에 비유한 오랜 메타포를 떠올리게 한다. <팬텀 싱어>에서 고훈정이 불러 다시 화제가 됐던 '저 바다에 쓴다'의 가사 "내 인생의 파도는 누가 잠재우나"는 파도라는 직설적인 이미지를 차용했다. 생명력을 노래하는 이 뮤지컬은 마찬가지로 '저 바다에 쓴다'라는 넘버에서 "생명을 노래하라"고 외치며 다른 곡에선 "라이프 포스(Life Force)"를 이야기한다.

<사의 찬미>에서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 단어 각각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을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어떤 단어들은 배열되면서 또 하나의 맥락을 구현한다. 그 단어들이 평상시에 사용되었을 법한 맥락이나, 자주 사용되던 시기 등을 통해 말이다. "계급과 윤리, 죽음과 삶, 관념과 실재, 이상과 진실." 하나하나 보면 그저 철학적인 단어일 뿐인데, 이 단어들이 이어지고 하나의 가사가 되며 경성 시대의 분위기를 드러낸다. 그뿐인가.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마르크스,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빅토르 위고'와 같은 철학자/문학가들의 이름을 '칸토' '셰이크스피아' '토르스토이' '비크토르 유고' 등의 그 당시 진짜 소개되었을 법한 이름들로 나열된다. <사의 찬미>는 이를 적절하게 이용했다. 여타 경성 시대 작품들처럼 시대상 묘사를 길게 하지 않음에도, 모더니즘이 싹트기 시작하는 경성 시대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이는 '도쿄 찬가'로 이어진다. 당시 도쿄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에 "눈부신 자유, 빛나는 평등, 사랑과 낭만을 부르짖는 곳, 여기는 도쿄!" "시를 짓는 사람, 토론하는 사람, 꿈을 꾸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모두가 개성을 노래하는 곳" 등의 가사가 결합했다. 시대 분위기를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들은 지금이 경성, 개화기 시대임을 느끼게 한다. (또한, 도쿄 찬가는 단순히 한 시대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윤심덕의 캐릭터를 보여줌과 동시에 김우진의 희곡 속 인물 설정을 소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경성 시대를 자연스레 풍기는 이 작품은 이후 '사의 찬미'를 재해석한 구절이 등장하는 '그가 오고 있어'나 실제 김우진의 저서에서 차용한 듯 찢긴 날개를 지닌 물새의 이미지 등을 통하여 미덕을 더한다.

이는 시대 설정과 다시 맞닿는다. 이 뮤지컬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설정이 새로웠지만, 지금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은 흔하다. 흔한 설정은, 왜 이 뮤지컬이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삼았는지 관객들이 질문하게 만든다. <사의 찬미>의 이유는 명확하다. 인물들이 김우진과 윤심덕이기 때문에. 하지만 인물만으로 생겨나는 당위성은 그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설정은 뮤지컬 서사와 분리된다. 하지만 디테일로 그 시대와 인물, 뮤지컬을 봉합했기에 <사의 찬미>은 일제 강점기라는 배경에서 진부함이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관객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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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저 수많은 별들에 내 삶을 기록하라",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바다에 내 삶을 던지리라" 던져진 김우진의 삶과 기록된 김우진의 삶. 둘은 어떤 주체들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김우진이 자신의 삶을 기록한 건 어떤 말더 하지 않는 별들과 바다일 뿐이다. 그 별들과 바다는 관객들 각자가 보며, 각자의 감상으로 남을 수 있는 철저한 '대상'이다. 이는 마지막 결말과 상응한다. 김우진과 윤심덕은 과연 사내에게서 벗어났는가? 그들은 이탈리아로 갔는가? 아니면 그냥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는가? 진실은 사라지고, 남은 원고는 불탔다. 우리에겐 비극과 별들과 바다, 관객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결말만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의 찬미>의 결말은, '완벽한 결말'이다.

앞서 말하였듯 '운명과 그에 저항하는 인물'은 고전적인 주제이며, 많은 방법으로 이야기됐다. 극장을 채우는 관객도, 극장 밖 각자의 공간에서 나름대로 운명에 저항하고, 때론 운명 앞에 무릎 꿇기도 한다. 운명에 저항하든, 무릎 꿇든, 살아가는 것은 개개인 모두다. 그 속에서 선택하는 것도 개개인 모두다. <사의 찬미>라는 작품을 볼지 말지 또한 개개인이 '선택'하는 것 아니던가. 어쩌면 <사의 찬미>를 볼 '운명'이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사의 찬미>는 오래된 김우진과 윤심덕이라는 소재를 넘어,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우리의 이야기와 맞닿기에.

김우진과 윤심덕의 정사. 한때 경성을 뒤집어 놓았다가, 이제는 진부해졌을 법한 이 이야기를 재해석한 <사의 찬미>. 그들의 결말은 비극일까. 아니면 비극과도 같은, 그러나 비극은 아닌 결말일까. 선택은, 극 중 김우진의 말처럼, "이젠 우리 차례"다.


작가와ㅁㅁ 사의찬미 윤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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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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