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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오디션 자처한 11년차 배우 "이런 작품 처음"

[inter:view]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 에봇', 배우 임혜영의 도전

17.07.06 18:35최종업데이트17.07.08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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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루샤 에봇이 된 배우, 임혜영 지금까지 임혜영의 '인생 캐릭터'로 꼽히는 인물은 뮤지컬 <레베카>의 '나(I)'였다. 실제로 <레베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정서와 감정을 보고 "어, 이거 내 얘기 아냐?"하면서 많이 공감했다는 그.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면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새기게 됐다. ⓒ 곽우신


배우 임혜영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뭐가 있을까?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의 멘토로 여전히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레베카>의 '나(I)'를 떠올리는 팬도 많을 것이다. 대표작 하나를 꼽기가 쉽지 않다. <지킬 앤 하이드> <두 도시 이야기>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임혜영은 국내 뮤지컬 여자 배우로서 탄탄하게 자기 커리어를 쌓아온 이 중 한 명이다.

외적인 면모로 자주 평가받기는 하지만, 그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배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판이 녹록한 건 결코 아니다. '뮤지컬 배우' 임혜영이 이런 커리어를 쌓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맑고 고운 보컬과 고유의 연기 스타일 그리고 부단한 자기 노력이 있었다. 대극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이 익숙하지만, 2006년 <드라큘라>의 앙상블로 데뷔한 이후 만 10년을 채우며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많이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 중이며, 앞으로도 성장에 목마를 것이다.

배우 임혜영이 대학로에 왔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극장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여주인공 '제루샤 에봇' 역을 맡았다. 지난 초연에서 마니아들의 열렬한 호응과 환호 속에 빨리 돌아온 작품. 대극장 위주로 하다가 바뀐 환경에서 연기와 노래를 하는 게, 새로이 합류하여 초연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높은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게 절대 쉽지 않을 것임을 그도 알고 있었다.

지난 5월 16일 개막하여 오는 23일 막을 내리는 이번 시즌의 <키다리 아저씨>. 지난 6월 7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임혜영과 나눈 이야기를 뒤늦게 반추해본다. 만약 임혜영이 이 작품을 안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이 잘 안 된다. 캐릭터가 별명이 되어 배우 앞에 붙는 것은, 그 캐릭터와 배우가 정말 높은 수준의 공명을 이뤘을 때만 가능하다. 임혜영은 그걸 해냈다. 폐막까지 '임루샤'(임혜영 제루샤)를 볼 기회는 이제 단 7회차밖에 남지 않았다. 많은 팬은 벌써 다음 시즌 <키다리 아저씨>에서 그도 꼭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고민 끝에 어렵사리 행한 그의 도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 같다.

임혜영과 제루샤의 만남

▲ '임루샤'가 된 임혜영을 만나다 지난 6월 7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 에봇'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임혜영을 만났다. "저 잘하고 있는 것 맞나요?"라고 여러 번 되묻던 임혜영. 마치 신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설었다. 흔들린 보람이 있었다. 그는 멋진 연기와 노래를 무대에서 보여줬다. ⓒ 곽우신


배우 임혜영이 처음 <키다리 아저씨>의 제루샤 에봇에 트리플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예상하기 힘든 조합이었고, 의외의 선택이었다. 임혜영이 <키다리 아저씨>에 도전한 건 100% 자의였다. 기획사 측에서 섭외가 온 것이 아니라, 본인이 먼저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연락했다.

"워낙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보통 배우들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좋다고 소문이 나려면 진짜 좋아야 하거든요. 그 '진짜 좋아야' 나는 소문이 돌았어요, <키다리 아저씨>가. 관심이 생겼죠. 2인극이라는 특성, 편지글 형식…. 기존에 없던 새로운 틀에 도전해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거든요. '배우로서 더 채워야 할 때가 왔을 때, 나도 한 번 2인극을 꼭 해봐야지'라던 차에, 제가 해보고 싶은 요소들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 올라왔기 때문에 도전했죠.

사실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대극장 하는 배우한테는 대극장 극만 들어오고, 소극장 하는 배우한테도 소극장만…. 예전에도 어떤 소극장 작품에 관심이 있었어요. 꽤 좋은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 쪽에서도 제가 어울릴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제가 아예 소극장은 안 하는 줄 알고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닌데! (웃음) 그 얘길 듣고, '아 또 이럴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관심을 먼저 표출하지 않으면 쉽게 연을 맺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키다리 아저씨>가 올라온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먼저 연락을 했어요. 처음엔 그냥 물어봤어요. 당연히 했던 친구들이 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물어보니 (이)지숙씨가 아이가 생기면서 자리가 하나 비게 되는 상황이었고, 유리아도 다른 공연 중이고 해서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 타이밍이다'라고 전해 들었죠.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상황이냐'고 해서, '당연히 봐야죠'라고 했죠. (웃음)"

우여곡절과 순조로움 그사이 어딘가 정도의 과정을 겪었다며 웃는 그. 배우로서 갈급함이 있었고, 이를 채우기 위해 도전을 선택했다. 자의로 선택한 도전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갈림길로 그를 안내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다는 임혜영. 무엇보다, 자신의 특·장점으로 가지고 있는 무기를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제약이었다.

"이 작품은 그 누가 봐도 '어, 편해요'라고 할 사람은 없어요. 제루샤는 굉장히 어려운 아이예요, 진짜로. 연습하면서, 연출과도 얘기를 많이 했고, 또 했던 친구들이 있으니까 봐주는 일도 많았죠. 그래도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우리끼리 갑 중의 갑이라는 표현을 하죠. (유)리아도 진짜 안 떠는데, 이 작품만큼은 할 때마다 너무 떨린다고…. (웃음)

대극장/소극장이어서가 아니라, 이 작품 자체가 기존에 있던 어떤 작품과도 공통점이 없어요. 배우는 어쨌든 장단점이 있잖아요. 무대는 라이브다 보니까, 보통은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더 부각하는 극이나 인물을 많이 하는 편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저의 장점을 쓰면 오히려 안 맞는 요소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걸 통제해야 해요. 제가 잘하는 걸 스스로 커트해야 할 때 너무 힘들더라고요.

배우는 상대방의 감정을 설득시키는 일이잖아요, 감동을 주고. 제가 잘하는 걸 딱 에너지원으로 삼아서 그 감정을 가져가야 하는데 그걸 하면 안 된대…. (힝) 힘들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설마설마'했거든요. 제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긴 대사, 긴 노래 등 그 많은 양을 소화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었어요. '너 이만큼 했는데, 이정도 못하겠어?'하는. 그런데 정작 하루하루 시달리면서 무너지는 저를 봤죠…. 굉장히 벌거벗은, 홀딱 벗은 느낌도 들었어요, 사실. 그런데 또, 그게 '못하겠어요' 하는 힘듦은 아니었어요. 재밌게 힘들었어요. 즐길 수 있는 힘듦? (웃음)"

제루샤의 성장, 임혜영의 성장

▲ 송원근과 임혜영 5월 25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송원근 배우는 임혜영 배우가 '왕고'라고 폭로(?)했다. "아, 송원근 진짜…. (한숨) 제가 절대 '왕고'라는 말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응. 알았어, 누나. 걱정마' 이러더니! 어쩐지 프레스콜 끝날 때까지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이크를 뺐더니! 왕고면 뭐해요…. 맨날 이렇게 놀림 받아요." ⓒ 곽우신


▲ 배우 임혜영의 표정 대극장에서 작품을 할 때는, 본인 스스로 표정을 많이 관리했다고 한다. 더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표정을 통한 감정 표현도 절제했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표정 연기를 해낸다. 임혜영이 이토록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는 배우라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 곽우신


"연출님이나 같이 했던 친구들이, '너에게 제루샤라는 아이의 모습이 분명히 많다'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보는 사람은 많다고 하는데 스스로는…. (웃음) 보통 작품 안에서 시간이 흐르면, 나서서 도와줄 다른 인물도 있고, 그 흐름을 나 혼자 굳이 다 표현하지 않아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 흐름, 그사이에 일어난 많은 일을 제가 다 버텨내야 해요. 사실 저희가 4년 전으로 거슬러 생각했을 때 '그때 뭐 했었더라'라고 생각이 들 정도잖아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 무대에서는 4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지 않고 다 표현하는데, 그 과정에서 내 안에 있는 걸 꺼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꿈에 관한 것이든, 아픔에 관한 것이든 내가 겪었던 종류들이 있어요. 작품을 하면서 내 안에 담은 게 있으면 그걸 꺼내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영화나 다른 작품을 보면서 찾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는, 내 안에 분명히 있어서 '이걸 꺼내면 되겠지'하고 연습을 하면 그것만으로는 모자란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가진 많은 것들을 다 끄집어내고 꽉꽉 채워서 제루샤 에봇을 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진짜 어려웠어요. 처음 만나봤거든요, 이런 작업을."

존 그리어 고아원 출신 제루샤 에봇은 자신의 글솜씨를 눈에 봐둔 후원자 '키다리 아저씨' 제르비스 펜들턴 덕분에 대학에 진학한다.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하고, 여러 경험을 통해 사람과 관계를 맺어간다.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는, 아직 더 채워야 할 공간이 남아 있는 제루샤를 연기하기 위해서 가진 걸 모두 꺼내 여백을 색칠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색칠해야 할 부분에 딱 맞는 물감을 임혜영은 자신이 가졌는지 의심했다. 다행히, 적절한 색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일단 전 고아는 아니지만 (웃음) 대학을 4시간 기차 타고 와서 처음 왔어요. 저도 지방에서 열아홉 살까지 살다가, 스무 살 때 처음 서울에 와봤어요. 그때 강릉에서 서울까지 4시간 이상 걸렸어요, 버스든 기차든. 고속도로도 뚫리기 전이어서.

저는 성악을 했지만, 따로 서울에 와서 뭐 레슨을 받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진짜 운 좋게 대학에 왔는데, 갔더니 다 예술고등학교 출신들이더라고요. 그때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행복했던 시절이지만…. 돌이켜보면 몰랐던 것도 너무 많고, 적응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진짜 순수했고, 당시에는 카르텔이나 병폐, 악습 같은 것도 있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저도 '촌 아이'이다 보니까, '서울 깍쟁이'라는 말이 되게 와 닿았거든요. 강원도 사투리도 못 고쳤었는데, 10대 10 미팅 나갔더니 사투리 쓴다고 사람들이 모두 놀려서 웃고 그랬거든요. 서울말도 빨리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죠. (웃음)

'내가 몰랐던 것들' 부르면서 '처음 들어요'와 같은 가사나 대사를 할 때 그 심정이…. 꽤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제가 다 경험했던 것들이죠."

▲ 신성록과 임혜영의 '케미스트리' "(신)성록이랑 엄청 친해요. 데뷔 때 처음 만났으니까요. <태양왕>도 같이 했고, <카르멘>도 같이 했고…. (웃음) 그런데 저는 성록이랑 이렇게까지 서로 정서를 나누며 연기하는 게 처음이었어요. 평소에는 서로 엄청 까면서(?) 놀거든요. 그런데 성록이가 '너는 이 작품에 대해서 나랑 진지하게 얘기 좀 해보자'라는 거예요! 어찌나 이번에 저한테 잔소리를 하는지…. (웃음) 옛날에는 제가 장난으로 막 뭐라고 했는데, 이제는 얘가 ‘임혜영, 너 대본 토씨 하나 틀리지 말라고’ (웃음) 내가 제루샤처럼 지금까지 이 아저씨를 성장시켜줬는데…. 근데 성록이 너무 귀엽지 않아요? (신성록의 인스타그램 보여주며) 이거 보셨어요? ('신성록이 그토록 또 하고 싶었다던 공연'이라는 기사 제목 갈무리 사진) 여기에 '그르게요 말이에요'라고 달았어요! (웃음)" ⓒ 곽우신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성장 이야기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관계는 아니다. 제루샤는 제르비스 덕분에 성장하고, 또 제르비스는 그 제루샤를 통해 역시 성장한다. 스스로 프롤레타리아라 생각하고, 온건 사회주의(Fabian Socialism)를 지지하며, 여성에게 참정권을 줘야 한다고 믿는 제루샤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휘두를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게 사랑이 아님을 깨닫고 바뀌는 제르비스도 마찬가지이다. 배우 임혜영에게도 그런 감사한 성장의 경험이 있다.

"스스로 다 했다고 하기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죠. 진짜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그런 도움은 꽤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잘 몰랐어요, 그게 얼마만큼 고마운 것인지. 오히려 이제 다 커서 어른이 됐으니까, 지금에 와서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들이 많아요. 공연이 무르익으면서 다양한 저의 과거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이제는 대학교도 졸업했고, 성악이 아니라 뮤지컬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렸을 때 성악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중학교 3년 동안 성악을 했지만, 고등학교 때 아파서 1년 반 이상을 쉬었거든요. 다시 1년을 해서 서울로 대학을 온 게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피아노 의자 되게 좁잖아요. 저 거기서 되게 잘 잤거든요. (웃음) 자다 일어나서 노래하고, 자다 일어나서 노래하고. 악관절(턱관절)에 무리가 가서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되게 많았어요. 그때 저희 성악 선생님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먼저 도와주셔서 레슨을 받게 됐는데, 그때 선생님이 안 도와주셨더라면….

그래서 제루샤가 아저씨를 만나고 싶고, 아저씨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서 공연을 하면 할수록 와 닿아요. 특히 졸업식에 와달라는 얘기를 했는데 졸업식에 아저씨의 비어 있는 의자를 봤을 때 아픔이 진하게 올라와요. 그래서 그 대사할 때 항상 목이 많이 메죠. 제가 돈을 드리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 앞으로 2천 달러를 더 갚아야 하는데, 저는 그 돈 이상으로 아저씨에게 큰 빚을 졌고, 평생 감사와 존경으로 갚아나갈 거라는 대사…. 그때 몸이 너무 아파요. 울음을 참느라고. 그런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들이 막 나오니까요."

선배, 배우, 임혜영

▲ 임혜영의 기도 "다른 작품을 할 때는, 그 작품에서 어려웠던 부분을 무대에서 잘 소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는 그 깜깜한 객석으로 나가기 전에 문 앞에서 기도해요. '제루샤로 잘 있다가 오게 해주세요'라고. 성록이도 들어가기 전에 자기 최면을 걸더라고요. '성록아, 너 안에 제르비스 다 있다'라고. (웃음)" ⓒ 곽우신


뮤지컬 배우가 된 지, 만으로 10년을 채웠다. 이제는 임혜영보다 선배인 배우들보다, 후배인 배우들이 더 많다. 1982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배우들도 각자 제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고, 임혜영을 롤 모델이자 목표로 삼고 달려가고 있는 이들도 많다. 제루샤 에봇은 대학교 졸업 후 작가가 되었고, 존 그리어 고아원의 후원자가 되어 고아원 운영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려고 한다.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자신만의 기회로 끝내지 않고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는 것이다. 제루샤 에봇처럼, 선배 임혜영은 어떤 선배를 그리고 있을지.

"같이 하는 (강)지혜랑 저랑 여덟 살 차이 나거든요. 그런데 지혜가 자꾸 저한테 막 '아잉~' 그러고, 윙크하면서 '언니, 언니는 너무 귀여워요!' 그러는데…. (웃음) '야, 언니 놀리냐?' 그러면서 엄청 친구처럼 지내요.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 게 좋아요.

후배 친구들 보면 다 부럽고 예뻐요. 옛날에는 '나는 쟤보다 어쨌든 선배니까 무조건 잘해야 돼' 같은 생각이 있었어요. '난 언니야' '난 선배야' 막 이런 거…. (웃음) 그런데 다 사람이잖아요. 제가 지혜보다 선배지만, 지혜보다 못할 수도 있잖아요. 선배가 되어도, 후배한테 배울 게 분명히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그걸 용납을 못 했어요. 그런데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최)정원 선배와 하면서 진짜 많이 배웠어요.

예를 들면, 여자 배우들은 직접 만지는(화장하는) 경우도 많아서 분장실에 화장품을 많이 두거든요? 그래서 자주 떨어지기도 하는데, 정원 선배님 방에 놀러 갔다가 발판처럼 고정해두는 게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딱 한 마디 '우와 되게 좋네요.'  이랬는데, 다음날 제 분장실 앞에 딱 그걸 깔아놓으셨어요. 그게 뭐라고, 눈물이 막 떨어지더라고요. 그게 저의 진짜 발판이 되었어요.

정원 선배 뵈면, '어쩌면 이렇게 아직도 소녀 같으실까' 하는 게 있어요. 한 마디 한 마디 너무 따뜻하시고…. 선배는 절대 '나 선배야' 이렇게 하시지도 않아요. 친구처럼 편한, 옆집 언니 같은 선배. 존경할 수 있고, 후배가 보기에 배울 수 있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는 그런 선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임혜영이 생각하는 제루샤 "부러워요. 자기 꿈이 있고, 정말 많은 감성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루샤의 표현들, 진짜 제루샤의 편지를 읽으면서 '와' 했어요. 진짜 사랑스럽고 특별한 아이라서, 그 존재만으로도 되게 부럽죠. 이런 애가 배우라면?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어떤 글로 누군가의 큰 위로가 된다는 것, 상대를 배려하고 마음을 쓸 수 있는 거가 너무 부러워요." ⓒ 곽우신


배우 임혜영에게는 어려운 도전이었던 <키다리 아저씨>. 지난 10년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10년을 설계하기에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필모그래피였다. 본인은 여전히 배우 임혜영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그리고 있지만 두렵거나 불안한 미래가 아니라, 불투명하므로 더 기대되고 재미있을 것 같은 미래이다. 탭 댄스와 성악을 모두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고, 가족 뮤지컬에도 도전해보고 싶고…. 대학에 와서 되고 싶은 게 많았던 제루샤처럼, 임혜영도 많은 꿈을 끌어안고 행복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

제루샤 에봇이 성장케 한 건 제르비스 펜들턴 만이 아니었다. 제루샤를 연기한 임혜영도 제루샤 덕분에 위로받고, 성장했다. 신인 때만큼의 신선함이나 넘치는 에너지는 없어도 무대를 끌고 가는 안정감을 갖게 됐다. 둘 다 쥐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으니까" 괜찮다. '라이징 스타' '떠오르는 샛별'이라는 꼬리표를 너무나 떼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 배우가 됐다. 항상 따라다니는 안티 팬이 무서웠던 적도 있다. 지금은 그 중 한 사람의 평가라도 바꿀 수 있는 연기와 노래를 추구한다. 그의 위로와 성장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 객석에까지 흘러 들어가 관객을 따뜻하게 비춘다.

"전체 긴 여정의 마지막까지 오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잖아요. 아름답지 않나요? 관객분들께서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셨으면, 긴 여정의 아름다운 기운을 그대로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작은 것 혹은 사소한 것에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많이 사라진 요즘이잖아요. '행복의 비밀' 가사를 보면 뭐 하나 빼놓을 게 하나도 없거든요! <키다리 아저씨>가 노래하는 것들을 많이 기억하셨다가, 실제로 자기 삶을 살아갈 때 스스로 다독일 수 있으셨으면, <키다리 아저씨>가 그런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 임혜영이 제루샤에게 배운 것 "진짜 부려야 될 욕심이랑, 부리지 말아야 할 욕심을 분간하는 법을 선명하게 알게 된 것 같아요. 머리로는 알지만, 항상 마음으로 싸우잖아요. 근데 머리에서 마음으로 많이 내려온 것 같아요. 제루샤를 하면서 진짜 내가 욕심을 갖고 해야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배웠어요." ⓒ 곽우신



임혜영 임루샤 제루샤 키다리아저씨 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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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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