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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뮤지컬 기획, 왜 썼는지 모르겠다

[까칠한 관객] 예시부터 잘못된 <이데일리>의 뮤지컬 팬덤 기사 3부작

17.05.11 16:29최종업데이트17.07.2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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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연극·뮤지컬 팬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그 팬덤을 향한 비판의 역사는 짧지 않다. 때로는 비판을 넘어 팬덤 문화 자체를 '후려치는' 경우도 잦았다. 이러한 '후려치기'에 이골이 난 팬덤이지만 최근 또 다시 크게 상처받고 분노할 일이 생겼다. 장병호 <이데일리> 기자의 '뮤지컬 팬덤의 양면'이라는 기획 시리즈 기사 3부작이 문제가 됐다. (관련 기사: [뮤지컬 팬덤의 양면①] '양날의 칼'과 같은 뮤지컬 팬덤)

해당 기사는 뮤지컬 팬덤이 시장을 여태까지 키워오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지만, 문제점 역시 있다는 논조로 전개됐다. 그러나 이 비판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기사 내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핵심적인 몇몇 논지에 대해서만 반박하고자 한다.

[첫째] 기사의 초점은 관객이 아닌 기획사에 맞춰져 있다

장병호 <이데일리> 기자가 작성한 뮤지컬 팬덤 기획 시리즈 기사 3부작 중 첫 번째 기사의 갈무리 이미지. ⓒ 이데일리


해당 기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뮤지컬 팬덤의 장점도 있지만, 이들이 지나치게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기획사들이 휘둘리는 단점도 있다. 때로는 캐스팅이 변경되는 등의 이례적인 일도 발생하지만, 팬덤의 시장 점유율이 높기 때문에 기획사에서는 이를 단순히 무시할 수도 없다. 자칫 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논지는 다소 모순적이다. 뮤지컬 문화의 발전을 곧 뮤지컬 기획사의 발전으로 봐야 할까?

물론 뮤지컬 문화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뮤지컬 기획사 역시 커나가야 한다. 필자는 뮤지컬을 '예술적인 상품' 혹은 '상업 예술'의 범주로 본다. 뮤지컬이 예술의 형태를 지니긴 했지만 예술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능에 비해 상품으로서 지니는 속성도 만만치 않다.

좀 더 관객들의 니즈를 충족하고, 윤리적으로 올바른 작품을 만들며, 그러면서도 재밌는 극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기획사의 의무이다. 자본주의나 소비 사회 등에 대한 비판을 차치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좀 더 소비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 기업의 '의무' 중 하나이다. 그런데 뮤지컬 시장 발전이라는 목표에 기획사의, 기업의 목소리를 키우는 것만이 과연 부합하는 방향일까.

<이데일리>의 기사를 보면, 자칫 '회전문 관객'들이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하도록 기획사의 힘도 커져야 한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소비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을 '발전'으로 지칭할 수 있을까.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상품, 콘텐츠, 예술 그 어떤 것이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갖고 완성도를 높이는 게 발전이 아닐까. 뮤지컬 기획사가 팬덤과의 관계에서 '권력'을 차지하고자 아등바등 하지 않더라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며 소비자를 설득한다면 자연스레 '권위'가 생길 것이다.

소비자의 힘이 강해지면서, 소비자들이 생산자를 견제하는 건 소비자주권운동의 차원에서 봤을 때 오히려 시장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이다. 뮤지컬이라는 상품 역시 판매자와 구매자, 기업과 소비자, 혹은 창작자와 관람객의 상호작용적인 관계 안에서 거래된다. 이 관계에서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내며 생산자에게 어떤 힘을 가하는 걸 '뮤지컬 시장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정의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기업 중심적인 태도 아닐까.

[둘째] 팬덤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해당 기사는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아닌 일반 관객을 가리키는 말이 곧 '머글'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뮤지컬 팬덤과 '머글'을 구분 짓는 문화가 배타성을 야기하고, 그 배타성이 뮤지컬 시장의 발전을 일부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어디서부터 회전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뮤지컬 팬덤 내에서도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질문이다. 뮤지컬 마니아라고 해서 무조건 회전문을 도는 것도 아니다. 뮤지컬 팬덤이 곧 회전문 관객은 아니며, 회전문을 돌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구도 이들을 '머글'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뮤지컬 팬덤은 특정 작품에 대한 팬덤이라기 보다, 그 장르 자체에 대한 포괄적인 '팬질'이다. 회전문 관객과 머글에 대한 기자의 이분법은 다소 자의적이며, 명확하지도 않다. 되려 기자 스스로가 '회전문 관객'과 '머글'의 배타적, 이분법적 관계를 재생산한 셈이다.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하기 어렵지만, 기자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작성해야 하지 않았나 아쉬움이 남는다. 

[셋째] 예시가 틀렸다

▲ 볼프강 모차르트의 이수 EMK뮤지컬컴퍼니가 공개한 2016 <모차르트!> 이수의 프로필 이미지. 가수 이수는 지난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인공인 볼프강 모차르트에 쿼드로 캐스팅되었다가 팬들의 반발로 취소됐다. ⓒ EMK뮤지컬컴퍼니


잠시 성 매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성 매매는 여성의 성이 주로 착취당하는 행태이다. 만약 그 성 판매자가 어린 여성일 경우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어리기 때문에, 권력 관계나 사회적인 측면에서 더 소외 되었던 존재가 착취를 당한 것이다. 미성년자 성 매매는 그것이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지난 뮤지컬 <모차르트!>에 가수 이수가 캐스팅 됐던 것을 뮤지컬 팬덤이 반대한 게 과연 어떤 맥락이었는지 해당 기사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우선, 뮤지컬 팬덤은 그 이전부터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연예인이 자숙 후 복귀하는 무대로 뮤지컬을 택하는 데 넌더리가 나 있던 상태였다. 그렇게 복귀를 시도한 이들 중 완성도가 높은 무대를 보여준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나 가수일 지라도, 뮤지컬은 연기와 노래가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장르라는 점에서 완성도 있는 무대를 펼치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애정하는 하나의 장르가, 누군가에게는 손쉬운 '복귀 수단'이 된다는 게 기분 좋을리 없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이수 캐스팅에 대한 반발은 거기서 우선 물꼬를 틔었다.

심지어 <모차르트!>에는 아역 배우가 출연한다. 이수는 '미성년자' 성 매매를 저질렀던 이였다. 기획사인 EMK뮤지컬컴퍼니는 논란 초반, 팬들의 문제제기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이며 문제가 더욱 커졌다. 관객들의 비판을 묵살하고, 이수의 캐스팅을 강행한다 한들, 과연 극장에 앉은 관객들이 얼마나 공연에 집중할 수 있을까. '같은 소비를 하더라도 좀 더 도덕적일 수 있는 소비를 하고자 함'은, 소비자의 덕목 중 하나이다.

그런 의의를 배제한 채 '관람객이 목소리를 내서 캐스팅 변경이라는 이례가 발생했고, 이런 점이 우려스럽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그리고 그 맥락에서 이 예시를 든 기사는 과연 타당한가.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뮤지컬 기획사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은 핑계라는 점이다. 기사 내에도 나오듯, 관람객들의 작품을 보는 눈은 높다. 뮤지컬 팬덤은 비판적인 소비자가 될 잠재성을 충분히 지닌 이들이고, 뮤지컬 기획사와 얼마든지 발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정말 기획사가 잘 만든 작품이 있다면, 관람객들은 커뮤니티를 통해서 입 소문을 내고, 열심히 '영업'하며 누구보다 흥행을 위해 노력한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들이, 팬덤에 의해 발굴되고 소개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관객들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좋은 작품을 다양하게 만들 것'이다. 관람객의 비판이 없었더라면, 뮤지컬 시장 작품들의 다양성은 지금만큼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객들은 언제나 다양하되 윤리적이고, 재밌기도 한 작품에 목말라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제발, 좋은 작품을 만들어라. 그게 시장 발전을 이룰 가장 빠르고 쉬운 조건이다.

뮤지컬 팬덤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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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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