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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버린'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아버지가 된다는 건...

[직썰리뷰] 울버린의 마지막 <엑스맨> 시리즈 <로건>... 신화와 신파 사이에서

17.03.20 17:46최종업데이트17.03.20 17:46
술에 취해 차 안에서 잠든 한 사내가 보인다. 겉으로는 늙고 힘 빠진 듯한. 그러나, 불량해 보이는 청년 네댓 명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자 단호해지는 사내.

주먹에선 날카로운 칼날(혹은, 손톱)이 튀어나오고, 자연치유 능력을 갖췄기에 날아오는 총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차량을 훔치려던 범죄자들의 팔다리가 잘리는 참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 인근 조그만 마을에서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사내'에 대한 설명은 길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엑스맨> 시리즈의 영웅 중 한 명이니까. 이름하여 울버린(로건). 거부하지 못할 숙명과 고통, 분노와 우울증 속을 살아온 돌연변이다.

세칭 '슈퍼영웅' 이야기를 다루는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은 '개인적 고뇌'와 '인간적 방황'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중성과 오락성을 얻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쏟아부은 천문학적 수준의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단순'해지고 '즉물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자본주의의 한계인 동시에 감각적 쾌락을 지향하는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신화가 된 사내, '신파적 상황'에 처하다

<로건>에선 '혈연간의 끌림'이라는 코드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엑스맨> 시리즈는 만화책에 등장하는 슈퍼영웅들을 소재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할리우드 시리즈 영화 중 하나다.

거기서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로건(휴 잭맨 분)이 일생일대의 곤경에 처한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희귀한 상황을 접한 것이다. 단순히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힘만으론 해결이 어려운 복합적인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딸로 추정되는 조그만 여자아이(로라·다프네 킨 분)가 눈앞에 나타나면서 시작되는데….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한 <로건>은 전작들을 통해 이미 신화(神話)가 된 슈퍼영웅이 처한 '신파적 상황'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하자니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소녀가 걱정되고, 정말 자신의 딸인지 확신할 수도 없는 소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니 또 다른 고민과 문젯거리가 몰려온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

취향의 문제겠지만, 개인적으론 공감의 고민 없이 허술한 이유와 설득력만으로 마구잡이 폭력을 휘두르는 액션 영화나 오락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변사가 대사를 읊어대는 무성영화를 보는 듯 낯간지럽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로건>은 이전 <엑스맨> 시리즈들과 구별되는 미덕을 가졌다.

보통의 액션영화와는 다른 매력, 하지만 흠결도...

영화 <로건>에서 '로라'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준 다프네 킨.ⓒ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의 초반. 로건은 스스로에 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방식의 삶이 과연 옳은 것인가?" 혹은, "누가 있어 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라는 식의 실존적 고뇌다. 통상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선 만나기 힘든 풍경.

또한, 사회성을 전혀 갖추지 못한 순진한 꼬마에서 자신에게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인간병기로 훈련된 악랄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로라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위태위태한 둘 사이를 지탱해주는 '혈연 간의 끌림'이라는 코드 역시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로건>의 후반부.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슈퍼영웅의 본질적 고뇌에 맞춰져 있던 카메라의 포커스는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으로 옮겨간다. 연출의 집중력을 이어가기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뒷심이 부족해 보인다.

또 하나. 갈등을 거듭하던 로건과 로라 사이가 급작스레 좋아지게 되는 이유가 불분명하거나 다소 억지스럽다. 하지만, 이 대목에선 반론도 있었다. 로라와 비슷한 또래인 아홉 살 딸을 키우는 후배가 말했다. 자기도 <로건>을 봤단다.

"딸과의 갈등을 영원히 안고 가는 아버지는 세상에 없어요. 그게 로건이건, 울버린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왜냐고요? 자식이란 나로 인해 생겨난 존재잖아요. 어떤 상황에서건 이해하고 보살펴야죠."

진짜 그런가? 딸이건 아들이건 자식을 낳아 키워본 적이 없는 필자는 앞으로도 위와 같은 후배의 단정적 언사에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경험의 부재로 인한 패배(?)이기에 조금 서글프다.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로건>의 포스터.ⓒ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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