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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피구, 메시 다 여기서 나왔다

'전설의 시작'을 알린 역대 U-20 월드컵

17.03.21 13:21최종업데이트17.03.21 14:57
향후 세계 축구를 지배할 샛별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 한국에서 펼쳐지는 샛별들의 축구 전쟁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의 개막이 이제 60일 남았다. U-20 월드컵은 FIFA가 주관하는 대회 중 FIFA 월드컵 다음으로 권위와 비중이 높은 대회일 정도로 큰 대회다.

올 5월 세계 각 국에서 한국으로 모일 축구 유망주들은 미래에 보여줄 놀라운 플레이를 미리 선보인다. 실제로 U-20 월드컵은 수많은 스타들의 등용문이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폴 포그바가 2013년도 터키에서 열린 대회에서 본인의 능력을 과시했다. 비단 포그바뿐만이 아니다. 전설이 될 축구 선수라면 U-20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통과의례였다. U-20 월드컵은 수많은 전설적인 축구선수들의 역사의 서막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1979년 일본 U-20 월드컵)

지난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SK아트리움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조 추첨식'에서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가 나오자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까지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이란 명칭으로 치러졌던 U-20 월드컵은 2회 대회만에 슈퍼스타를 배출한다. 바로 '축구의 신' 디에고 마라도나다. 마라도나는 U-20 대회(당시는 U-19)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다.

U-20 월드컵 이전에 마라도나는 이미 아르헨티나에서 유명인사였다. 마라도나는 1976년 만 15세의 나이로 일찌감치 프로경력을 시작했다. 훗날 세르히오 아구에로(맨체스터 시티)가 데뷔하기 전까지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최연소 프로 데뷔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마라도나는 1977년에는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다. 하지만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못했고 자국의 월드컵 우승은 멀리서 지켜만 봤다.

마라도나는 다음해 열린 U-20 월드컵에서 본인의 능력을 뽐내면서 '어리다'는 이유가 부당했음을 증명한다. 1978년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마라도나를 담기에 청소년 대회는 작았다.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결승전까지 총 여섯 경기를 치르면서 20득점 2실점을 기록하며 6전 전승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이 과정에서 마라도나는 총 여섯 번 상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마라도나는 압도적이었다. 대회 2연패에 도전하는 강팀 소련이 결승전 상대였지만 마라도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2대1로 불안한 리드를 이어가던 후반전 마라도나는 본인의 전매특허인 프리킥으로 소련을 침몰 시킨다. 대회 내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상대를 궤멸 시킨 마라도나는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된다.

이 대회부터 마라도나의 성공신화는 가속도가 붙는다. 1982년 유럽으로 넘어간 마라도나는 FC 바르셀로나를 거쳐 당시 약체였던 SSC 나폴리를 우승으로 인도하는 신화를 썼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U-20 월드컵을 재현하듯이 상대를 농락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마라도나가 소속된 팀은 대부분 마라도나+10명의 하드워커(Hard Worker)로 구성이 되었고 마라도나는 과연 홀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루이스 피구(1991년 포르투갈 U-20 월드컵)

피구는 한국 축구 팬들의 기억 속엔 송종국에게 막혀 눈물을 흘리던 비운의 스타로 남아있지만, 그는 포르투갈 축구의 큰 별 중 하나다.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는 포르투갈 축구의 상징이였고 세계 최고의 측면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포르투갈의 스포르팅 CP에서 만 17세의 나이로 프로경력을 시작한 피구는 이미 UEFA 유럽 U-17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조국에 안긴 초대형 유망주였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 대회에서 처음 U-20 월드컵 우승에 성공한 포르투갈은 2년 뒤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트로피를 거머쥐며 '골든 제너레이션'의 탄생을 알렸다.

훗날 AC 밀란에서 활약하는 후이 코스타와 함께 피구는 어렵지 않게 조국을 우승으로 인도한다. 결승전 상대는 5경기 동안 14골을 상대에게 퍼부은 브라질이었다. 1991년 대회 이전 치뤄진 7번의 대회에서 2번의 우승과 2번의 3위를 기록한 브라질에게 포르투갈은 고전했지만 승부차기 끝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피구를 마라도나처럼 우승의 확실한 주연으로 꼽기는 어렵지만 이 대회를 기점으로 피구는 본격적으로 포르투갈 축구의 중심에 위치한다. 포르투갈에서 경력을 쌓던 피구는 1995년 바르셀로나로 넘어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바르셀로나 팬들의 지지를 한껏 받던 피구는 돌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공분을 샀지만 레알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이어가며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품에 안는다.

어느덧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피구는 유로 2000과 유로 2004에서 포르투갈을 각각 3위와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좌절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참가한 2006 독일 월드컵에선 포르투갈을 준결승까지 인도하며 에우제비오 이후 끊긴 포르투갈 축구 영웅의 계보를 확실하게 이어나갔다. 비록 골든 제너레이션의 중심으로서 포르투갈 국민들이 염원하던 메이저 대회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포르투갈이 다시 세계 축구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피구의 역할이 컸다.

리오넬 메시(2005년 네덜란드 U-20 월드컵)

아직 선수로서의 경력이 끝나지 않은 메시지만 그는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라섰다. 무려 5번이나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웬만한 득점에 관한 기록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호날두와 함께 지난 10년간 세계 축구를 지배하고 있다.

유년 시절에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합류해 실력을 가다듬던 메시는 네덜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고국의 팬들에게 본인의 실력을 선보인다. 시작은 불안했다. 메시가 교체 출장한 미국과의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0대1로 패하고 만다. 하지만 패배는 미국전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6경기에서 메시는 모두 선발 출장해 6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끈다. 메시의 활약 덕에 청소년 월드컵 우승 횟수를 5회로 늘린 아르헨티나는 당시 4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던 브라질을 제치고 청소년 축구의 최강자로 우뚝 선다.

이 대회에 메시가 터뜨린 골의 순도는 매우 높았다. 대회 기간 성공시킨 여섯 골 중 다섯 골을 16강 이후에 터뜨렸다. 아르헨티나가 16강부터 매경기에서 실점을 기록했음에도 16강부터 매경기 득점에 성공한 메시가 아르헨티나의 성공을 이끌었다.

메시는 놀라운 드리블로 8강전 상대였던 스페인을 경기 내내 괴롭혔고 준결승 상대인 브라질은 특유의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으로 침몰시켰다. 결승전에서는 두 번의 패널티킥 기회를 침착하게 모두 성공시켰다. 놀라운 활약을 펼친 메시는 대회 최다 득점자에게 주어지는 상인 골든슈를 수상했고 대회 최우수선수에도 선정이 된다.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회 최우수상을 거머쥔 메시는 마라도나와 함께 유이하게 청소년 월드컵과 성인 월드컵 최우수상을 수상한 선수가 된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바르셀로나 1군 팀에 합류한 메시는 지금까지 500번 넘게 상대의 골망을 흔드며 이미 바르셀로나의 전설이 됐다. 2005년에 아르헨티나 성인 대표팀에도 발탁된 메시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연소 일원으로 참여한다. 이후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3번의 코파 아메리가 준우승, 1번의 월드컵 준우승이란 성적을 받는다. 메시라는 이름값에 준우승은 어울리지 않지만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의 기량을 선보이는 메시로 인해 우승컵은 항상 아르헨티나와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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