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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전쟁도 그렇다

[까칠한 관객] 연극 <벙커 트릴로지> 세번째 에피소드 '맥베스'

17.02.17 18:16최종업데이트17.07.24 14:38
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때, 소모품으로 병사들이 전락하던 시절. 더 넓은 개활지를 차지하기 위해 의미없이 치열한 전투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장교가, 우연히 콘월 대대의 지휘를 맡게 되는데….ⓒ 곽우신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연극 <벙커 트릴로지>. 이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 '맥베스'는 제1차 세계대전 영국 군인들이 직접 재현하는 '맥베스' 연극을 극 중 극으로 삽입한다. 이 극 중 극과 벙커 속 군인들의 삶이 묘하게 이어진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아까워진 즈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 벙커 속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한 편의 연극이 열린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이 영국군 부대의 마크 장군은 다른 병사들과 함께 <맥베스>를 연기한다. 그런데 연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마크 장군의 삶이 셰익스피어 <맥베스> 속 '맥베스'와 흡사하다. 실제 이 부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극 중 극 <맥베스>의 사건이 겹치면서 극은 흘러간다.

예컨대 간호사 릴리는 '레이디 맥베스'와 유사점을 띤다. 하지만 그녀는 마크 장군처럼 그 이야기를 계승하지는 않는다. 잠들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레이디 맥베스와 달리, 그녀는 진실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녀는 '살인자'가 되어버린, 마크 장군에 맞서기로 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맥베스'와 <벙커 트릴로지>의 세계 1차 대전 속 마크 장군과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는 흡사하다. 마치 누리꾼 사이에서 유행한 이미지와 문장이 떠오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 그렇게 같은 실수는, 반복됐다.

비단 '맥베스'와 1차 대전뿐이겠는가, 극 속 마크 장군의 태도는 그 인류 역사의 반복성을 보여준다. 마크 장군은 분명 장군이라는 자리에 올라가기 전까지 꽤 훌륭한 인품을 지녔다. 그는 전쟁 속에서 효용성을 위해 무자비하게 희생되고 죽어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했다. 마크와 대비되는 인물인 드레이크 장군은 어땠는가. 드레이크는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릴리 간호사가 가지 못하게 막아서고 자신만을 치료할 것을 부당하게 명령한다. 그 명령을 따르지 않는 릴리에게 '명령 불복종'을 운운하며 협박한다.

마크는 드레이크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그는 드레이크 장군을 죽이고, 드레이크 장군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변했나. 그는 결국 드레이크 장군만큼 잔인한 마크 장군이 될 뿐이다.

전쟁, 그리고 계급에 관하여

희생적이고 따뜻했던 마크, 하지만 전쟁이 거듭되고 계급이 오르면서 그의 성격도 변한다.ⓒ 곽우신


맥베스는 전쟁 속에서도 여전히 작용하는 계급 문제를 함께 비판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본부의 귀족 출신 장교들은 '총알받이'들을 앞에 세워놓고 홍차를 마신다. 앞의 '총알받이' 군인들이 흙탕물을 마셔 설사병에 걸리는 와중에 말이다. 다음과 같은 대사도 있다.

"자네 훈련장과 전쟁터의 차이점을 아나? 실제로 적군은 있다는 것, 실제로 장군은 없다는 것!"

전쟁 속에서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사상이 강조된다. 개개인의 생명이 아닌 승전국과 패전국만이 남고, 승전국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총을 겨눠야 한다. <벙커 트릴로지>는 이런 과정을 '한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 따위로 그려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쟁 속에서,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라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죽을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인물들로 그려냈을 뿐이다.

전쟁을 잠시나마 '경험'하게 되는 관객들

'맥베스'는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보다 더 관객참여적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관객은 전쟁을 관찰하는 걸 넘어서, 일부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곽우신


'맥베스' 에피소드에서는, 배우들이 공연 중에 착용하는 것과 같은 군번줄을 입장하는 관객들에게 나눠준다. 공연이 시작하면 관객들은 그 군번줄을 목에 맨다. 마치 벙커 속 군인이 된 것처럼 무대 위 배우의 대사에 따라 일어서고, 경례한다.

이는 벙커에 들어가면서 전쟁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그 벙커 속 군인이 직접 되어보는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관객들은 자연히 극 속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고, 이는 전쟁의 참혹함을 더욱 체감할 기회가 된다. 이를 통해, <벙커 트릴로지>는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쟁의 부정성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맥베스> 에피소드는 엔딩 부분에서 종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관객들이 배우들과 함께 군번줄을 들고 흔든다. 70분 동안 벙커 속에 머물며 전쟁을 경험했던 관객들은, 정말로 벙커 속의 군인이 되어 전쟁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전쟁 속에서 사라진 '진실'을 생각한다. 이 부분이 <벙커 트릴로지>의 진짜 의의가 드러나는 곳 아닐까.

'Soldier4'라는 이름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와 릴리를 오가는 네 번째 병사. 이 캐릭터의 존재가 반갑다.ⓒ 곽우신


<벙커 트릴로지>의 캐스팅과 관련 정보들이 공개됐을 때, 가장 우려가 됐던 점은 저 극이 '여성'을 어떻게 그려낼까였다. 전쟁 속의 여성이라니, 젠더 감수성 없이 표현할 함정에 빠지기 쉬운 상황 아닌가. 더군다나 남성 배우와 여성 배우의 성비는 3:1이었다.

이 공연에서 감탄했던 사소한 부분 하나는 바로 그 여성 배우를 표기하는 방법이리라. <벙커 트릴로지>는 다양한 에피소드 그리고 그보다 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 탓에 캐스팅 역의 이름을 단지 Soldier1, 2, 3, 4로 표시했다. 여성 배우 역시 'Woman'이나 'Female Soilder' 따위의 표기가 아니라 그대로 'Soldier'라는 방식으로 표기됐다.

<벙커 트릴로지>가 그려낸 전쟁 속의 여성상이 100퍼센트 만족스러웠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원작의 한계, 그 시대적 현실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여성 캐릭터를 세련되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언제나 남성 중심적으로 그려져 온 '전쟁' 서사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번 <벙커 트릴로지>가 보여준 완성도는 훌륭했다. <벙커 트릴로지> 속의 여성 인물들은 관객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선사했다. 그녀들도 전쟁의 피해자였다. 그래서 그녀들도 분명 전쟁에 참여했고, 싸웠다. 그녀들은 전쟁 속의 적들과 싸우기도 했고, 전쟁 그 자체와 싸우기도 했다. 각자의 삶이라는 진실을 살해하고자 하는 전쟁과 말이다.
더 나아가, 전쟁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역사에서 전쟁을 다루는 방식은 참 단조롭다. 전쟁의 참혹함을 나열하지 않는다. 전쟁이 설명되는 건 기껏해야 전쟁의 이름, 그 전쟁의 대표적인 장군과 작전, 전쟁이 이뤄진 정도와 배경 정도이다. 때로 어떤 전쟁은 그 전쟁의 사상자 등에 의해서 기억되고, 그 전쟁의 경제적 손실 같은 액수로 기술되기도 한다. 우린 많은 경우, 전쟁을 요약과 통계로 배운다. 그 전쟁 속의 평범한 사람들, 그들의 삶, '진실'에 대하여 배우지 않는다.

<벙커 트릴로지>는 전쟁 속의 평범한 진실들을 담아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진실들을 담아냈다. 아무리 전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배운다고 해도, 그 전쟁은 결국 일부 사실이 지워지고, 일부 사실은 선택된 '편집된' 이야기일 뿐이었다. <벙커 트릴로지>는 연극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그 전쟁의 진실에 주목했다. 그래서일까, 분명히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허구성을 어느 정도 띤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관객조차도, 이 이야기가 실화일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쟁에서는 진실이 첫 번째 제물이다. 이는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이야기한, <벙커 트릴로지>가 내세우는 문구이다. 전쟁 속에서, 그리고 전쟁을 기록하는 방식 속에서, 전쟁 속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진실은 이미 전쟁에 넘겨졌다. 하지만 <벙커 트릴로지>는 공연을 관람하는 그 행위 자체로부터, 그 진실을 아는 정도 되살려내고,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기에 여전히 전쟁과 전쟁의 위기 속에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벙커 트릴로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서울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개막했던 <벙커 트릴로지>는 긴 대장정을 마치고 오는 19일에 막을 내린다. 곧 막을 내리는 <벙커 트릴로지>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관객들을 만나기를 바라본다. 또 동시에, 언젠간, 전쟁이 없는 시대에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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