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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상처 극복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십시오

[권오윤의 더 리뷰 94]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남자의 변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17.02.17 18:28최종업데이트17.02.17 18:40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사고 방식과 생활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랜 기간 누적된 개인적인 습관과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웬만한 노력으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반복되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며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면, 문제의 원인은 아마도 그의 삶의 방식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케이시 애플렉)도 그런 종류의 인간입니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 노릇을 하며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리는, 사교성이 전혀 없는 무뚝뚝한 태도와 과격한 언행 때문에 여러 주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조'(카일 챈들러)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당장 고향인 맨체스터 - 축구팀으로 유명한 영국 도시가 아니라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작은 바닷가 도시 - 로 향합니다. 도착해 보니 형은 이미 사망한 후였고, 리는 장례식을 치르고 유언장을 확인하는 등의 일을 처리하며 일주일 정도만 고향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형이 유언장을 통해 자신을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지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집니다.

자기 중심적인 주인공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한 장면. 보스턴에서 혼자 살던 리(케이시 애플렉)은 형 조(카일 챈들러)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패트릭을 귀여워했던 리였지만, 두 사람은 좀처럼 어색함을 떨쳐내지 못한다.ⓒ THE 픽쳐스


설정이 이렇기 때문에 성장 이야기의 익숙한 전개 방식과 결말을 예상하기 쉽습니다만, 이 영화는 성장 과정을 극적으로 구성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고향으로 돌아와 내적 고통을 곱씹으며 좌충우돌하는 리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를 차분하게 보여 줍니다.

한창 혈기왕성한 10대 소년 패트릭과 함께 지내는 리의 하루하루는, 그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과 교차되면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원래 말도 잘 하고 친구도 많았던 리의 성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그가 저지른 끔찍한 실수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이 과정에서 드러나지요.

리가 패트릭의 후견인 역할을 맡기로 결정하고 이런 저런 나름의 계획을 세워나가는 것은 '이번에는 꼭 잘해 내고 말겠다'는 마음 속의 다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심과는 달리 일은 자꾸 꼬여만 갑니다. 그 때마다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수 년 동안 지옥같은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들입니다.

리는 영화 속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언제나 자기 기분에 따라 기쁘면 기쁜 대로 즐거워하고, 슬프고 화가 나면 또 그대로 욕하고 싸우는 사람이지요.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어떤 기분일지, 어떤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참혹한 사고를 겪었으면서도 그의 생활 태도는 별로 바뀐 게 없습니다. 다만,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감정이 주체할 수 없는 행복에서 슬픔과 고통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의 삶이 늘 위태롭게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결말부에서도 꿈 속에 나타난 자기 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또 다시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가 영화 말미에 와서야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조카 패트릭의 뜻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더이상 자신의 상처 안에 갇혀서 살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자기 삶의 방식을 바꿔 나가겠다는 선언적인 행동이니까요.

변화의 첫 걸음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한 장면. 리의 전처 랜디(미셸 윌리엄스)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리와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의 참혹한 사고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던 두 사람의 아픔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명장면.ⓒ THE 픽쳐스


케이시 애플렉은 리의 황폐한 삶과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매우 실감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영화 속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거나 앉아 있기만 해도 깊은 절망의 기운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언제 어디서든 절대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어쩌면 동료 스태프에 대한 성추행으로 피소되었던 그의 과거가 오히려 그런 아우라를 강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의 전처 랜디 역할을 맡은 미셸 윌리엄스는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호소력 있는 연기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거리에서 우연히 리를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은, 참혹한 사고 이후 이 부부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의 시간들을 압축해서 보여 준 명장면입니다.

감독 데뷔작 <유 캔 카운트 온 미>(2000)로 국내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바 있는 케네스 로너건은 인물의 감정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있어서 여전히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줍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찍은 정적인 샷들이 교차 편집되면서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인물의 내면에 깊숙히 발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리의 상황에 너무 감정이입하다 보면, '세상에는 극복할 수 없는 고통도 존재한다'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리의 마지막 선택이 일종의 포기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나도 노력해 봤지만, 안 되더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맥락상 리의 결정은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습니다. 날씨가 풀려 형의 시신을 묘지에 묻고 난 리가 패트릭과 함께 공으로 간단한 장난을 치고, 다시금 예전처럼 같이 배를 타고 낚시줄을 드리우는 장면들은 그런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껴안고, 그게 너무 괴롭다며 자기만의 성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은 악순환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절실하게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언제고 똑같은 비극이 찾아 올 테니까요. 이것이 바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주인공 리의 삶이 함축하고 있는 진짜 교훈입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포스터.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극적인 성장 과정보다는,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THE 픽쳐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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