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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 아닌 속물적인 히어로, '김과장'을 응원하는 이유

17.02.17 17:57최종업데이트17.02.17 17:57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이 때,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영웅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타나서 불합리한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하고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도 뭔가 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직접 나서기엔 세상은 너무 험난하고 삶은 치열하지만, 정의롭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누군가라면 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실 그런 영웅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지금 자신 앞에 닥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힘이다. 물론 역량을 펼칠 환경이 주어지는 것도 중요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주체적인 힘을 무시하고 극복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직접 스스로의 영웅이 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일상에 치인 나머지 그런 에너지를 쏟기에는 너무 지칠 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나마 TV나 영화속 영웅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나도 쉽게 해내는 그들의 능력 속에서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대개 영웅은 출중한 능력을 바탕으로 남들과 다른 강직한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새로운 영웅이 탄생했다.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고 절대 영웅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영웅이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신개념 캐릭터다.

김과장속 김성룡 역을 맡은 남궁민ⓒ kbs


드라마 <김과장>속 김성룡(남궁민 분)의 꿈은 소박(?)하다. 10억을 모아 덴마크로 가는 것. 이유는 덴마크가 부정부패 지수가 가장 낮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한 나라로의 이민을 꿈꾸는 김성룡이 돈을 축적하는 방식은 오히려 부정부패와 가깝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자금을 몰래 빼돌려 돈을 모은다. 그러나 결코 걸릴 정도는 아니다. 야금야금 티가 안날 정도로 몇 년에 걸쳐 모은 돈은 2억 정도다. 그가 회계를 맡은 회사는 한번도 세무조사를 받지 않을만큼 김성룡은 회계의 천재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도 그는 소심하다. 한 탕을 노리지도 않고, 일확천금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약간의 돈을 횡령하는 것이 전부다.

여기서 공감의 포인트가 생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숱한 천재들을 마주한 우리다. 그러나 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도 저 정도밖에 활용을 못하는 캐릭터라니. 몸을 사리고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는 확실히 우리의 삶에 조금더 맞닿아있다. 천재라고 아예 동떨어진 세상에서 온 것같은 느낌을 주기 보다는 불법은 저지르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별 탈없이 사는 것이 목표이고 결국에는 다른 나라로 떠나 안위를 찾으려는 속물근성은 어쩌면 그다지 보기 어려운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비범한 능력을 최대한 평범하게 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정의감 따위가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역시 평소대로 횡령을 하기 위해 입사한 TQ그룹에서 그는 의도치않게 의인義人이 되고야만다. 길바닥에 미끄러져 사람을 구한 것은 그의 이미지를 확정짓는다.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는 영웅대접을 받지만 얼떨떨하기만 하다. 그런 그가 TQ그룹의 비리와 마주치는 것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그런 불합리한 회사에서 '잘리고' 싶다. 그러나 그를 쓰다 버리고 싶어하는 회사는 그를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다니기 싫은 회사에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성룡의 피곤하고 비통한 표정은 폭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폭소는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기에 우스운 것이다.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은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김성룡을 진정한 의인으로 만든다. 김성룡은 무서울 것이 없다. 회사에서 '잘리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제약이 없다. TQ그룹에 있는 불합리함을 마음껏 파헤치고 목소리를 높여도 그는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김성룡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정한 의인으로서 거듭난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유는 그가 천재적인 능력을 지녀서가 아니다. 그저 그가 회사에서 무서워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살던 그가 비범해지는 지점은 그래서 통쾌하다. 김성룡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직장에서 잘려서는 안되는 처지에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희망이 되어주는 것은 오히려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초월한 존재라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삶을 한 번쯤은 꿈꾼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어디서나 당당한 자신을 만나고 싶은 꿈. 평범한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지키고자 했던 평범한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원래 대단했던 주인공들의 활약보다 더욱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의 성공이 곧 평범한 직장인들의 로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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