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사랑은 원래 너저분한 거야" 용기가 되는 말

[세심한 리뷰] 뉴욕 어른들의 갈팡질팡 사랑 이야기 <매기스 플랜>

17.02.09 15:54최종업데이트17.04.18 14:41
1,000
이 글은, 영화의 흥행과 관계없이 매력 충만한 작품들을 열린 감각으로 그러모아 세심하게 해석하는 공감의 기록입니다. [편집자말]

▲ 영화<매기스플랜>매기(그레타거윅)와 존(에단호크)의 설렘 가득한 거리데이트ⓒ 오드


사랑의 이어달리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남녀간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진입하고나서도,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사랑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게 되는 결혼생활을 겪으며 원래의 사랑은 정말로 변질되고 마는 것일까.

자기 인생뿐만 아니라 사랑의 책임을 제도를 통해 요구 받게 되는 어른들도,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이 언제나 한결같을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며 끊임없이 갈등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음 연애상대자를 또 만나게 되는 과정을 면밀히 되짚어 보면, 사랑의 방식이 그 전 연애상대자에게서 받았던 사랑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별의 상처는 새로운 사람으로 인해 잊힐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가슴 아픈 이별의 상처는 잊게 되더라도, 그 사람과 절절하게 사랑했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바로 그 다음 연애에서 스스로에게 들통난 듯 자각하게 될 것이다. 그 전 상대에게서 받았던 사랑이 있다면 다음 연애가 풍족해지리라.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사랑을 주는 법도 알게 된다. 반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가슴앓이 했던 연애의 다음은, 잔인한 사랑사냥꾼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사랑받지 못했던 가슴은, 받고만 싶은 사랑을 갈구하다 이기적인 주인공이 되어 관계를 슬프게 만들어 버린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랑과 이별을 했던 경험의 알맹이에 따라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는 사랑의 책임에 대한 압박에,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가중된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했다. 엉뚱한 매력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의 세계는 '남자는 없되, 아이는 있어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채워져 있다. 대학동창에게 정자 기증을 받아 아이를 낳으려 하지만 그 것 역시 남녀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잘 모르는 순수한 여자 매기. 어떤 사랑의 관계를 시작하는 일이 두렵고, 아이에 대한 책임은 혼자 갖고 싶은 여자 '매기'는 뉴욕의 한 거리를 성큼성큼 지나 관객 앞으로 다가온다.

그렇다할 진한 연애도 못해본 여자 매기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사랑'. 매기는 두려움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경쾌하게 시작한다. 그것이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사실도 잊을 만큼 매기와 존의 사랑은 마치 꿈을 꾸듯 흘러간다.

사랑은 이어달리기

우연히 알게 된 임자 있는 남자 '존'에게 매기가 줄 수 있는 사랑은 처음엔 관심이었다. 그의 출간하지 못한 습작에 가까운 책 내용을 성심성의껏 읽고 코멘트 해줄 수 있는 그녀 매기의 등장은 존의 삶에 변화를 맞이하게 했다. 함께 책 내용을 이야기하며 작게 나누는 일상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게 되는 두 남녀.

결혼생활이 지겨운 남자 존(에단호크)와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여자 매기(그레타거윅)가 사랑하게 되다.ⓒ 오드


유능한 전부인 조젯과의 결혼생활에서 점차 퇴색해가는 낭만과 사랑. 존은 매기를 만나 사랑을 하며 조젯에게서 얻을 수 없던 충분한 배려를 상대에게서 느낀다. 둘 사이 태어난 아이의 양육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매기와 결혼하며 본격적으로 집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존은 별다른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서 주구장창 글만 쓴다. 밖에 나가 돈을 버는 것도 매기, 딸 릴리의 양육도 매기가 전담한다.

너무도 잘난 부인 조젯에게서 자신이 하고픈 일에 대해 인정받기가 힘들었던 유부남 존. 그러던 와중에 새로 만난 이성에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받으며 전적으로 지원받게 된 상황이 존에겐 낙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도 지속되면 사랑을 주기만 하는 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사랑 받고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는 쪽은, 상대의 사랑이 언제쯤 올지 기대하며 아낌없이 사랑을 퍼붓는 쪽의 심경을 쉽게 헤아리지 못한다. 마치 사랑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받는 쪽은 주는 쪽의 마음을 이러 저리 휘게 한다.

일을 하며 어린 딸 릴리를 돌보는 일도 모자라, 전부인 조젯이 바쁜 일정으로 집을 비우게 되면 존과 조젯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의 일상을 돌보는 일도 매기의 몫이다. 이런 웃기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그 역할을 해내는 매기와, 아빠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당연스레 매기에게 떠넘기고 자기 일상을 이어가는 존의 관계는 많이 위태로워 보인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성이지만 자기애 강하고 내심 여린 구석을 주체할 수 없는 전부인 조젯의 푸념과 투정을 여전히 받아주고 있는 남편 존에게 끝내 매기가 던진 말은 참고 있던 봇물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나 달래주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어?"

바통을 이어 받아 달리듯 관계는 역시나 명확하게 한 줄로 이어지고 있었다. 조젯은 자신보다 이해심 많은 전남편 존에게 여전히 사랑을 갈구했고, 존은, 조젯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매기를 통해 받고 있던 것이다.

"나 없어도 자긴 괜찮잖아."

매기의 슬픈 질문에 대답하는 존의 말엔, 매기의 심경을 진정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의 관계가 이미 고착화된 시점에서 상처가 없는 쪽은 상대의 상처가 어떠한지 가늠할 수 없다. 이미 존과 매기의 결혼생활은 딸 릴리가 없었다면 진즉 끝났어야 할 수준까지 내려온 것이다.

사랑은 원래 너저분한 거야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던 매기에게 갑작스레 펼쳐진 사랑과 결혼은 그녀의 두려움을 다시 송두리째 불러와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이 준 상처는 완벽한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내면에 간직하게 되었다. 점점 이기적인 남자가 되어가는 존을 바라보며 릴리를 사이에 두고 '헤어짐'을 선택하는 일이 매기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영화는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엄마 매기(그레타거윅)와 딸 릴리(아이다로하틴)의 애정깊은 나날ⓒ 오드


결혼을 하지 않고, 정자기증을 받아 아이만을 키우고 싶던 매기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사랑의 늪에 빠져 어른남자까지 키우게 된다. 자신이 아이였을 때, 두 쪽으로 갈라선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쪼개진 관계의 중심에서 아이 매기가 느꼈을 두려움과 상처는, 어른이 되어 급기야 '결혼'이 주는 중압감을 회피하려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상대와의 어긋난 관계 때문이지만, 스스로가 주연인 결혼생활을 망가뜨린 장본인은 결국 자신이 되는 것임을 인정하기 싫은 매기. 결혼에 대한 트라우마를 존과의 사랑으로 극복한 줄 알았으나 그건 아니었다. 꿈을 꾸듯 흘러가던 사랑은, 시간이 지나고 또 결혼이라는 제도에 귀속되며 끝내 아름다움의 빛이 흐려지고 만다. 자신의 부모와 달리 완벽한 결혼을 꿈꾸었고, 딸 릴리를 조각나지 않은 가정에서 키우고 싶던 그녀의 희망은 점차 멀어져만 간다.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매기에게 친구 토니는 나무라듯 말한다.

"사랑은 원래 너저분한 거야! 근데 넌 사랑이 깔끔하다고 생각해."

그렇다.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너저분한 감정들이 뒤섞여 사랑으로 귀결될 수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더 이상 매기에겐 그럴 의지와 희망은 없어 보인다. 존과의 흐트러지는 관계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매기는 끝내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된다.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드는 일

그녀의 상상도 못할 계획은, 배우 에단호크가 맡은 존의 지질한 연기에 힘입어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된다. 조젯과 존이 매기의 계획을 통해 그들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과정은 '헤어짐'을 결정한 매기의 선택에 당위를 부여한다. 너저분한 사랑의 현실을 용납하게 된 매기가 다시 불타오르는 존과 조젯의 사랑을 응원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녀가 사랑을 이어주는 큐피트가 된 분위기로 흘러간다.

매기(그레타거윅)와 조젯(줄리안무어)의 심오한 대화의 내용이 궁금해지는 컷ⓒ 오드


매기의 계획에 갈팡질팡하며 휘청이는 존의 지질한 모습은 완벽한 남자주인공이 여심을 흔드는 여타의 로맨스영화에 비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습다. 자기중심적이던 잘난 여자 조젯이 사랑을 위해 존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모습은 냉철해 보이던 그녀 이미지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다신 누군가의 운명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매기의 절절한 다짐엔 모순이 있다. 그건 동굴 같은 곳에서 혼자 살게 된다면 실현가능한 다짐이다. 살면서 어찌 누군가의 운명에 끼어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그녀가 이미 존과 조젯의 운명 중간으로 빨려 들어갔듯이. 딸 릴리의 운명이 자신의 자궁에서 피어났듯이.

인생은 타인의 삶에 발을 들여놓는 일의 연속이다. 두려움을 떼어놓는 일은 사랑으로 가는 길. 사랑의 이어달리기가 두렵지 않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두려움 많던 매기가 또 다시 누군가의 운명에 끼어들며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설렘은 분명 그녀 다짐에 모순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해볼 만한 것이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진다.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