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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세월호 다큐'가 묻는다 "슬픔은 꼭 잊어야 하나?"

[인터뷰] 김광호 EBS PD, <다큐프라임> 만들기까지 어떤 고민 있었나

16.12.17 21:38최종업데이트16.12.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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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노동자들의 감정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어쩌면 그들만의 개인적인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EBS 다큐프라임은 말한다. ⓒ EBS


언제나 개인적이고 또 주관적일 것만 같은 감정이 실제로는 사회적이며 객관적인 산물이라면 어떨까.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사실은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서 파생되며, 그 상황과 환경은 사회경제에서 온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즉 감정 또한 사회적인 결과물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5일부터 총 5부에 걸쳐 방송된 <다큐프라임> '감정시대'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불안, 슬픔, 모멸감, 자책감 등을 탐구해나간다. 세월호에서 탈출한 학생들이 가진 슬픔과 미안함이나 마트 감정노동자들이 진상 손님을 만나면서 마주하는 모멸감, 자살한 남편을 둔 여성들의 자책감, IMF 이후 실직한 가장의 불안까지. 이들의 '감정'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에서 마주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감정시대'는 이를 직접적인 말로 옮기지 않았다. 대신 사회적 결과물에 따라 영향을 받은 이들의 얼굴을 최대한 클로즈업해서 그 감정을 화면에 담았다. 특히 13일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감정을 담은 '스무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 편은 온라인상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는 어떻게 이들의 감정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룰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가능할까. 15일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를 만든 김광호 PD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물었다. (연출: 김광호, 김훈석, 작가: 김미지, 정명)

감정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실직당한 사람은 불안하다. 실직한 아버지는 늘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 EBS


- '감정'이라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는 흔하지 않다. 처음 어떻게 접근을 했는지 궁금하다.
"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인 측면에서 '감정'을 바라보고 다스리는 열풍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감정 다스리기'나 '부정적 감정 버리기' 물론 이런 열풍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이런 접근으로 인해 오히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 막다른 골목?
"내가 내 감정을 다스리면 뭔가 변해야 하는 데 더 불안해지고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그러다가 '아 감정이라는 것이 형성되는 게 나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사회나 환경에서 오는 것이 더 크지 않을까. 그걸 같이 봐야 내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 그 문제의식을 '감정시대'라는 다큐멘터리로 구체화하기까지 한참이 걸렸을 것 같다.
"맞다. 처음에는 '감정'에 관한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감정을 사회나 환경 측면으로 바라보는 건 아직 연구도 자료도 부족하더라. 그래서 차라리 울림을 줄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지금 단계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을 변경하게 됐다."

- 다큐멘터리는 불안, 모멸감, 슬픔, 죄책감과 같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이라 불리는 감정들에 대해 다룬다. 왜일까.
"그런 감정과 직시를 해야 '미래에 이런 부분을 바꿔 나가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감정을 답답해하고 힘들어할까. 불안. 가장 불안을 느끼는 대상이 누굴까. 그러다가 실직을 떠올렸다. 우리가 모두 불안을 느끼지만 이를 더 집약적으로 느끼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가족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못하는 분들 아닐까. 그리고 당신이 이런 부정적인 감정(불안)을 느끼지 않으려면 개인적인 노력만이 아닌 사회적 시스템의 개선 없이는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감정시대' 4부에서는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남편의 자살을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연 이를 이겨낼 수 있을까. '감정시대'는 이에 대한 답변에 접근하려 애쓴다. ⓒ EBS


- '감정시대' 4부는 자살 유가족을 다뤘다.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압박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제적 자살'이 많지 않나. 그 근본에는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부분도 틀림없이 있다. 그것들이 빠져있는 상태에서 자살을 개인에 대한 잘잘못으로 접근하다 보니 더 안으로 숨을 수밖에 없더라. 편견 어린 시선으로 인해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억눌려 있을 수밖에 없는 집단. 내가 가진 편견이 누군가의 감정을 다치게 만들 수 있고 감정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구나.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다."

- 섭외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기획 단계부터 방송을 올리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 부담감을 내려놓아야 방송에 나올 수 있을 텐데 그 점이 가장 힘들었다. 물론 프로그램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목적이고 역할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출연자들도 성장하기를 원했다. 이분들이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사회적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일. 그분들이 지쳐 하시면 기다리고 격려하고. 다행히 출연자 두 분에게서 모두 '감사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두려움, 그리고 버티는 힘

'감정시대' 5부는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 EBS


-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감정은 어떤 생각을 하고 다큐멘터리로 담았나.
"우리는 2년 전 세월호를 이미 다뤘던 적이 있다. 2년 전에는 정말 우리가 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를 담았을 때 출연자분들이 방송을 보고 조금이나마 힘을 얻는 등의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가장 컸다. 재작년에는 한 달 넘게 분향소에 방문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올해는 또 달랐다."

- 다른 두려움이 있었나?
"과연 이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진 않을까 이런 다른 부담감이 다가오더라. 아무래도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용기를 내주셨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관계를 맺으며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담는 방식에 대해 <다큐프라임> 구성원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함께 했다. '슬픔을 꼭 잊어야 해?' '그 슬픔이 어디에서 나왔지?' 부정적 감정들은 이를 통해 배우고 기억하고 개선할 점을 던지는 지표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도 슬픈 사건을 넘어 그것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만나 '이번 작업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 90%가 아닌 그것보다 좀 더 낮은 88~89% 정도의 세상이 됐으면 한다. 그 부분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출연을 설득했다. 슬픔을 잊어야 하는 게 아니고 배우고 깨달아야 하는 거라고. 이는 지금도 떠나간 친구들을 생각하고 아픔을 견뎌내야 하는 생존 학생들이 저희에게 주는 화두라고 본다. 그 슬픔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더 좋은 사회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지, 지표 같은 것이다. 그 생각으로 1년 반(제작 기간)을 견뎠다."

김광호 EBS PD는 누구?

김광호 피디는 오랜 시간 '가족'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피디다. 지난 2005년 생방송 <60분 부모>, <다큐프라임> '마더쇼크' (2011) '오래된 미래, 전통 육아의 비밀'(2012) '파더쇼크'(2013) 9부작 '가족쇼크'(2014)까지 일명 '쇼크시리즈'를 제작했다.

그는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이달의 좋은프로그램상'을 비롯한 남녀평등상 최우수상(마더쇼크), 한국피디대상 작품상(가족쇼크)부터 15차례에 걸쳐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 세월호 감정노동 자살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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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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