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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장애 가족'이란 소재를 만날 때

[리뷰] 장애인을 둔 가족의 특별한 나들이 <소풍>

16.04.11 13:48최종업데이트16.04.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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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연극 <소풍>의 포스터. 연극 <소풍>은 장애인을 둔 가족을 다룬 작품이다. ⓒ 아르케


연극 <소풍>은 2015년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하는 '희곡아 솟아라!' 공모전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된 작품으로 당시 '장애를 둘러싼 가족의 붕괴'라는 진부한 소재를 진지하게 탐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풍>은 자폐증 아들 은우, 방황하는 청춘인 고3 딸 은지, 우울증에 위암 판정까지 받은 엄마 정희, 늘 직장 생활에 바쁜 아빠 범석,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가족이지만 멀리 있는 삼촌 부부를 중심으로 특수한 환경에 처한 한 가족사를 평범한 제3자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자폐 아들 은우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던 엄마 정희는 본인이 앓고 있는 우울증과 고3인 딸의 방황, 자식 교육에 대한 남편 범석과의 견해 차이로 인한 갈등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은우의 수학적 능력이 서번트 증후군(자폐증, 정신지체, 발달장애 등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 중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라 굳게 믿고 희망을 꿈꾸던 중 정희는 어느 날 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딸 은지는 오빠 은우에게만 매달리는 엄마가 서운하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도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다. 늘 멀기만 한 삼촌 부부도 기댈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자신이 죽으면 더 이상 은우를 돌봐줄 사람이 없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던 정희는 은우와 마지막 소풍을 떠난다. 아들과 떠난 마지막 소풍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하지만, 구급차를 부르는 일도 할 줄 모르는 아들 은우는 그냥 소리만 지른다. 겨우 주변의 도움으로 정희는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이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정희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은 알 수 없는 평온 상태로 돌아가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은 계속된다. 어느 날 엄마 정희와 아들 은우가 다시 꿈속에서 만나 자신들의 꿈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 은우는 엄마랑 저 멀리 새로운 별로 가서 살고 싶다고 하고 엄마는 그저 아들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이라 말한다. 꿈속이라 그런지 아들은 엄마랑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어쩌면 이 장면은 은우의 죽음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희의 장례식이 끝나고, 가족은 알 수 없는 평온으로 돌아가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은 계속된다. 어느 날 엄마 정희와 아들 은우가 다시 꿈속에서 만나 자신들의 꿈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이 장면은 은우의 죽음을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침착하면서 진정성 있는 화법'의 수작

연출을 맡은 아르케 대표 김승철은 연극 <소풍>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현상들에 대한 본질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 아르케


연극 <소풍>은 장애인을 둔 가정의 아픔과 특수한 상황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장애가 없어도 늘 바쁘고 서먹하고 저녁이 없는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가족과 사회의 모습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이지영 작가의 작품인 <소풍>은 우리 사회의 어느 가정에서도 마주칠 법한 문제들과 균열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그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들과 치매 노인을 둔 한 가정의 이야기를 인물들의 심리 궤적에 따라 차분하게 풀어가는 방식이 놀랍다. 연극 <소풍>은 작가의 치밀한 극적 구성과 살아있는 인물 묘사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연극 <소풍>은 2015년 서울연극인대상 연출상 수상과 2015년 '공연과 이론' 작품상 수상으로 주목을 받은 힘 있고 색깔 있는 김승철 연출의 연극언어로 무게감을 더했다. 연출을 맡은 김승철 창작공동체 아르케 대표는 "한 가정의 붕괴는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인 문제"라며 <소풍> 통해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현상들에 대한 본질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창작공동체 아르케는 그동안 참신한 창작극 발굴 및 정통 번역극을 주로 공연하며 안정적인 평가를 받아오는 동시에 전시를 접목한 다원 예술 및 실험극 등의 시도를 지속하면서 다양한 관객을 확보한 극단으로 성장해 왔다.

한편, 올해 37회를 맞는 서울연극제가 5월 8일까지 35일간 대학로를 비롯한 서울 주요 공연장에서 열린다.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소풍>, 극단 백수광부의 <햄릿아비>,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내 아이에게>, 극단 바바서커스의 <연옥>, 극단 대학로극장의 <장판>, 극단 시선의 <일물>, 극단 한양레파토리의 <잔치>, 극단 앙상블의 <다목리 미상번지> 등 총 8편이 공식 초청작으로 공연된다.

조은경, 이경성, 김성일, 김구택, 이형주, 이유라, 송현섭, 정다정 출연.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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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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