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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상이고 누가 돌연변이인가, 이 영화는 묻는다

[<돌연변이> 이천희 인터뷰] "주변에서 많은 관객 기대하지 않고 찍는 게 아니냐 묻는다"... 이 배우가 저예산 영화를 선택하는 까닭

15.10.27 14:34최종업데이트15.10.2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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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남영동 1985>,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그리고 영화 <돌연변이>까지…. 배우 이천희가 쌓아 가고 있는 필모그래피는 '흥행'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 역시 관객 수를 생각한다. 다만, 최우선으로 두지 않을 뿐이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우선 기준은 '행복'이다. ⓒ 이정민


이천희의 영화 선택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3년의 출연작만 봐도 알 수 있다. <바비>(2012), <남영동 1985>(2012),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 등 모두 중소 규모의 저예산 영화다.

이 행보에 올해 한 편을 더했다. 박보영, 이광수와 함께한 영화 <돌연변이>에서 그는 인턴 카메라 기자 상원 역을 맡았다.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천희는 "주변에서 나보고 많은 관객이 들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고 찍는 게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라며 웃었다. 멋쩍게 웃었지만, 그는 당당했다.

많은 배우가 작품 선택 기준으로 꼽는 시나리오를 물론 무시할 수 없다. 이야기의 재미는 기본으로 하고, 이천희는 "관객 수를 기대하는 건 모든 영화인이 같은 마음이지만, 그게 최우선이 아닐 뿐"이라면서 "작품을 찍을 때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 배우의 예사롭지 않은 작품 선택

영화 <바비>에 출연했던 이천희. 예능에 출연하며 순박한 이미지가 형성됐지만, 이 영화에서 악역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이 꽤 넓다는 것을 증명했다. ⓒ (주)미로비젼

<돌연변이> 역시 거기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순제작비 10억 원 미만의 작품에 내로라하는 청춘스타인 박보영, 이광수가 참여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고 그는 추측했다. 최근 시사회에서 박보영이 "청춘의 아픔을 공감하고 대변할 수 있는 통로가 이 같은 작품"이라고 말한 게 그 증거다.

상원은 제약 회사의 비윤리적 태도로 생선 인간이 된 박구(이광수 분)를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보살핀다. 여기에 자칭 파워 블로거지만 실상은 '키보드 워리어'인 주진(박보영 분)이 가세하며 이야기의 입체감이 생겼다. 세 인물 모두 세상에서 '루저'라 비웃는 사회 부적응자다. 영화는 이들의 시선으로 오히려 세상을 비웃었다. 이 루저들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천희(맨 오른쪽)는 영화 <남영동 1985>에도 출연했다.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충실히 캐릭터를 소화했다.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선배들 사이에서도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 (주)엣나인필름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는 청춘의 심정을 100%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나 역시 신인 때 치열하게 오디션을 보며 작품을 따낸 적 있다. 모델 활동을 할 땐 디자이너분들이 '내 무대에 서는 걸 영광인 줄 알라'며 열악한 처우를 당연시하기도 했다. 열정 페이지(상대방의 열정을 이용해 그가 들인 노력과 시간을 합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행동-기자 주).

근데 열정 페이의 진짜 문제는 단순히 일한 만큼 돈을 못 받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빠져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구조에 있다. 그 안에서 무조건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 청춘들은 속으로 여러 감정을 품고 있을 거다.

이 사회의 젊은이들이라면 대부분 그걸 느낄 거다. 사회는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고. 과연 상원이 정말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 그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라고 난 생각했다. 순수하고 평범한 친구인데 주변 시선에 스스로 주눅이 든 거다. 그러다 박구를 만나며 자기가 하고 싶었던 걸 깨달아가는 거고."

"이 작품 끝낸 후 날 돌아보게 됐다... 왜 연기를 시작했을까?"

영화 <돌연변이>의 한 장면. 8kg짜리 탈을 쓰고 박구 역을 연기한 배우 이광수, 이천희가 맡은 상원은 그 박구를 가장 근거리에서 '관찰'한다. 상원의 시선을 통해, 관객은 생선인간과 인간 중 누가 진짜 돌연변이인지 고민하게 된다. ⓒ 영화사 우상


작품의 설정 자체가 낯설다는 건 이광수가 생선 탈을 쓸 때부터 알아봤단다. 실제로 8kg에 달하는 탈을 쓰고 연기해야 했던 이광수를 곁에 두고 이천희는 "영화에선 박구가 돌연변이가 됐지만, 사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돌연변이라고 보는 게 이 영화의 시선"이라고 설명했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탈이라 이광수는 분장 스태프들과 수차례 동선을 확인해가며 연기했다.

"눈을 못 보고 연기하는 거라 감정 연기가 서로 가능할지 의심했는데 광수씨가 몸으로 다 표현하더라. 리액션을 잘한 거지. 늘 움츠려 있고 미안해하는 박구 캐릭터를 잘 관찰하는 게 상원의 임무였다. 이상하게 변했다지만, 박구는 결국 보통을 상징하고 초심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찾아가는데 그게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작품을 끝낸 후 날 돌아보게 됐다. 왜 연기를 시작했을까. 최고 시청률? 혹은 천만 관객 영화를 하려고? 분명 그건 아니었다. 그냥 내 역할을 고민하고 내면을 표현하고 싶어서였지. 예전엔 그저 내가 맡은 역할을 어떻게 표현하나 그 차원의 고민이었는데, <돌연변이>를 통해 내가 살면서 잃어버린 게 뭔지 생각했다.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이 자기가 정말 바라는 게 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한다면 성공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천희는 이 작품을 현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고발의 관점만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는 제40회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당시를 전하며 "만약 한국 사회만 비판한 거였으면 외국 관객분들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많은 외국인이 공감해줬다"고 말했다. 영화가 품은 더 넓은 의미를 강조한 셈이다.

이천희가 정의하는 <돌연변이>는 '보통' 즉 정상성에 대한 영화였다. 그는 사람이 살면서 공존이 아닌 경쟁 구도로 가는 순간 '돌연변이'가 시작된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누구를 이기려고, 또 조금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는 순간부터 변하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분명 보통으로 사는 게 쉽진 않은 거 같다.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닌 지구에 사는 모든 인간의 문제라고 본다. 짠하고 씁쓸한 일이다.

어쩌면 나 역시 보통의 삶은 아니다. 아마 연기자의 길을 택하면서부터일 거다. 그렇다면 연기자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의 작품이 잘 된다고 배 아파하지 말고, 팬 미팅 등으로 돈만 벌 생각하지 말고, 굳이 남다르게 살려고 자신을 옥죄지 말고,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지."

보통의 사람, 그리고 보통의 작품. 이천희는 그렇게 툭 던지듯 말했다.

배우 이천희를 만났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는 영화 <돌연변이>를 통해 모처럼 청춘의 대명사가 됐다. 마냥 발랄하거나 유쾌한 청춘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안고 있을 아픔을 너무 무겁지 않게 표현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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